제7장 통일론에 대한 회통
제7장 통일론에 대한 회통
과연 통일로 가는 길은 햇볕정책, 대북포용정책 등으로 이뤄진 물질적 지원의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는가? 학자적 양심이나 종교적 양심자들은 아니 한국의 사상가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답을 내어 놓을 것인가?
남북 간에 물질과 선수들이 오고 가는 교류가 없다고 해도 문화적 소통은 가능하다. 그 소통이 바로 비평이다. 남과 북의 언어를 하나의 묶어 내는 작업. 언어의 뜻을 하나로 묶어 내는 작업.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작업은 비록 남북이 각각의 국가로 독립되어 동독과 서독과 같은 체제로 간다고 해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이기에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고 해도, 문화적 언어적 소통이 가능해진다.
남측에서 통일론을 제기한다면 북측도 마찬가지로 통일론을 제기하고 있을 터이다. 통일을 이루는 각각의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비평은 두 방식에 가교를 놓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비판과 비판이 맞불을 놓게 되면 양쪽 다 소실되지만, 비판을 비평으로 응수하게 된다면 적어도 완충이 되어 충격이 약화되게 되어 있다. 결국 비판이 비평으로 돌아서게 되어 비평과 비평이 만나게 되면 그 때에 자연스러운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서독은 동독의 비판을 비평으로 응수했고 동독의 비판이 비평으로 돌아서기까지 인내하며 참아 주었다. 참고 인내해 주는 시기에 들어간 직, 간접비용을 통일비용이라고 했다. 서독이 동독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동독인의 방문 시에 방문체제비용을 직접지원해 준 일과 동독인의 방문이 있는 가정을 통해 생필품 등을 지원해 줄 수 있도록 간접지원해 준 일은 통일비용이었다. 이로 인해 동독정부는 서독에 왕래하는 동독인을 제어하지 않았고 상호방문도 허용해 주었다. 적어도 서로가 왕래할 수 있을 때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지원해 주는 것이 통일비용이지 서로가 왕래할 수 없는데 어찌 이것을 통일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몸으로 왕래 할 수 없다면 글이라도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 간의 소통은, 언어로 충분하며 대화가 중단되었다고 해도 문화적 소통의 수단인 책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책으로 소통되어질 때에 가장 중요한 근거는 사실이다. 사실에 기반을 둔 신뢰가 있다면 책으로 소통되어지는 문화비평은 가장 중대하고 효율적인 소통의 수단이 된다.
1. 통일론 비평에 있어서 첫째 고통, “의미의 문제”
1) 해석의 의미
동일 사건 혹은 역사에 대하여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화적 접근양식과 문학적 접근양식은 차이가 있다. 역사는 동일 사건에 대하여 한 마디로 압축하고 있는 반면 문화는 사건을 통해 영감을 얻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양식으로 표현된다. 이 양식은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문학의 각각의 영역을 가진 고유한 양식이다. 예술의 양식에서 고대이냐 현대이냐 미래냐의 시간대로 구분되고 구분에 따라 건축은 건축의 갈래대로 음악은 음악의 갈래대로 문학은 문학의 갈래대로 각각의 영역 안에서 고유한 형태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표현된 문화의 양식은 다시 각각의 영역에 특정의 고유지번을 달고 역사물로 다시 저장된다. 저장되기 전, 각각의 영역 권 안에 이미 저장되어 있던 역사는 다시 꺼내져 해부되어지고 옳고 그름의 평가와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에 대한 비판을 거친다. 비판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해당 학문의 발전을 위한 근거로의 비평 과정을 통해 학문적 논리로 세워진다.
이렇듯 문화와 역사는 하나의 라인선상에서 반복되어지기 때문에 문화와 역사는 하나의 줄기 안에서 다양성을 가진다. 따라서 역사를 비평함에는 문화의 코드로 접근하게 되고 문화를 비판함에는 역사의 코드로 접근하게 되어 있다. 이는 비평하려는 하나의 가지가 어떤 줄기에서 파생되었는지를 먼저 규명해 주어야 하는데 그 줄기는 역사로, 가지는 문화로 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문화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여기에서는 분석으로 말하며 분석 후에는 해석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비평과 평가는 문학의 영역에서 해석되어지는데 비평가는 역사와 그 시대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코드를 추적하여 분석하고 해석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동일 역사 혹은 동일 문화에 대한 평가 임에도 불구하고 해석자의 입장에 따라 각각 달리 해석되어지기도 하고 일치되기도 한다. 이는 해석자의 접근방식이나 성향과 비판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는 이야기인데 예를 들어 설명해본다면 이데올로기를 들 수 있겠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석은 좌파적 해석과 우파적 해석으로 대립하게 되는데 좌파적 해석은 현실적 비판을 통해 행동의 근거로 삼고 우파적 해석은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학문의 근거로 삼는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좌파적 해석은 마르크스 이론이며 우파적 해석은 만하임 이론이다.
진보주의자와 한총련이 견지하고 있는 마르크스(K.Max, 1818.5.5~1883.3.14)는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존재성을 독립적 존재로 인식하면서 현실의 삶에 대한 불만 (그것이 계급적 사회에서 파생되는 것이라고 인식하면서 내재된 불만)을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의 논리로 해석했다. 만하임(K.Mannheim, 1893.3.27~1947.1.9)은 이데올로기를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기와 다른 정치적, 학문적, 사상적 성향에 대한 변증으로 보며 학문적(지식사회학)인 입장으로 해석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우파적 해석의 만하임 주의를 견지한다.1)
이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놓고 투쟁의 논리로 해석한 마르크스의 해석과 학문적 변증의 논리로 해석한 만하임의 해석은 각각 다를 수밖에 없고 적용되는 범위도 각각 다르게 나온다. 이는 역사와 문화를 해석함에 있어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면 이는 “문화”가 복잡한 언어로 코드화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비평가는 분석된 자료를 해석함에 있어 자신의 시각과 취향에 따른 자신의 해석 원칙이 있다. 전통적인 해석의 입장과 자신의 경험과 철학에서 나온 해석의 범주가 원리로 세워져 있다. 이 원리를 적용하여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평가하게 된다.
먼저 원해석이냐 재해석이냐의 문제가 살펴져야 하고 여기에 용어와 시차를 어떻게 적용하여 해석할 것이냐? 또 어떤 각도에서 접근 할 것이냐? 하는 범위를 정한다. 이는 시공간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용어해설의 문제와 밀접한데 후대에서 그 시대와 문화에 대한 평가는 시공간의 차이를 어떻게 적용하여 해석하는가의 문제가 필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와 문학의 관계는 수직적인지 아니면 수평적인지도 추밀하게 따져져야 한다.
그 시대를 평가하려면 당대의 역사의 흐름과 문화권이 추적되어야 하고 어떤 장르의 문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는가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비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예로 들면, 먼저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에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어떤 가치와 위치를 점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세익스피어 시대에는 무대 예술인 오페라가 성행한 시대로 음악과 희곡이 대접을 받았고 시적인 표현과 풍자극이 성행했다. 이 시대의 역사는 중세기 말엽으로 아직 기독교는 체계를 갖추지 못했음으로 기독교 문화는 문화권을 형성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교황과 국왕의 충돌이 빈번하고 카톨릭 국가에서 기독교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톨릭국가와 기독교국가 간의 전쟁도 빈번했다. 종교적 정신적으로 불안한 대중들은 위안거리가 필요했으며 세익스피어 적인 풍자극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었다. 따라서 이 시대는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독교문화는 영향력이 미미해서 중세의 문화권에 종속되어져 있는 한 갈래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평의 각도는 첫째로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오페라 극의 번성을 주도했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둘째로 카톨릭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충돌이 당시의 지성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에 대해 각도를 맞춰야 한다.
이를 다시 펼치면 위대한 문호 세익스피어가 탄생된 배경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카톨릭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충돌에서 오는 정신적 공백의 시기였다. 따라서 정신적 공백에 대해 갈증을 느낀 당시의 지성인들은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서 보상 받았기 때문에 세익스피어의 작품과 오페라 극이 번창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논증은 두 가지로 전개되어야 한다. 먼저는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당시 영국인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살펴져야 하고, 다음으로는 당대 지성인의 정신적인 공황의 원인인 중세문화와 기독교문화가 살펴져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논증이 되면 세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영향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이를 그대로 가지고 남북통일론에 접근해 보자. 먼저 남과 북의 현재의 문화적인 차이가 따져져야 한다. 문화란 경제까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의 실상과 북한의 실상이 어느 정도의 격차가 있는지 수치로 나오게 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따지면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30년 정도의 차이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것이 경제적인 차이만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정신문화까지 포함된 것인지를 살피기 위해 최초로 남과 북이 합작하여 만든 “사육신”을 놓고 평해 보자.
KBS에서 제작비를 대고 북한에서 북한의 배우들로 “사육신”이 제작되었다. 이를 KBS에서 방영했다. 첫 방송에서조차 시청률은 10%가 나오지 못했다. 사육신은 회를 거듭하면서 시청률은 5%대로 추락했고 심지어 3%까지 내려갔다. 원인은 뚜렷했다. 문화적인 양식의 차이는 최소 10년에서 최고 30년의 격차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스토리 양식, 디자인 양식, 극의 전개 속도, 스크린 적응력 등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배우들이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뺀다면, 중국의 변두리 소수민족의 방송국의 드라마 정도로 볼 수밖에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육신”을 본 시청자들은 남과 북의 통일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만약 현 시점에서 통일이 된다면 문화적인 격차를 도무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시 분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원인은 사상에 있다. 공산주의 사상만 해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인데 거기에 주체사상을 혼합하여 인간의 사고의 틀을 한쪽을 막아 놓았다. 인간의 뇌는 “예”, “아니오”를 기반으로 사리를 판단하게 되어 있고 사리 판단이 되지 않으면, 유보하는 형태로 뒤로 미루고 나중에 판단을 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여기에서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유보하는 형태의 중간으로 고정이 되면 정신적인 장애자가 된다. 즉 주체사상이라는 세뇌작업을 통해 정신적 장애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인간은 “예”와 “아니오”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되어 있고 예면 예에 대하여 아니면 아니오에 대하여 설명을 통해 논증을 하게 되어 있다. 이 때 설명을 통해 논증을 하는 과정에서 창의성 혹은 창의력이 나온다. 만약에 “예”나, “아니오”만 표현되고 설명을 통한 논증을 하지 못하게 되면 창의력은 막히게 된다. 공산주의의 혁명이론은 당의 명령에 대하여 “예”만 하게 되어 있다. 이는 학문의 기본적인 입장과 반대의 입장을 뜻한다. 모든 학문은 “왜?” 혹은 “아니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주체사상까지 첨해졌다면 인격체가 아니라 길들여진 노예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인은 동독인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독일의 통일모형이 한국의 통일모형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통일독일은 어쩔 수 없는 통일을 이룬 사례로 인용될 뿐, 성공적인 통일의 사례로 인용되지 않는다. 이는 높은 곳에 있는 저수지와 낮은 곳에 있는 저수지를 하나로 합한 것과 같이 서독인이 동독인을 책임져 주어야 하는 형태의 통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독인이 누렸던 부와 문화는 동독인에게 흡수당하고, 동독인은 통일이 되면 즉각 서독인과 같은 부와 문화를 누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현실의 부작용으로 인해 양쪽이 다 피곤해진 상태이다. 서독은 동독을 위해 10년간 무려 10조 달러를 쏟아 부었으나 동독의 발전은 요원하고 동독의 요구만 거세지는 현실에서 고민 중이다. 지난 10년 간, 서독의 경제성장은 1% 미만이었다. 결국은 사상의 문제이지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2) 철학의 의미
역사가 인류와 함께 굴려간 시간의 수레바퀴에는 그 시대의 문화라는 수레바퀴의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고 그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의 언어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역사는 역사의 기록 안에 그 시대의 정신적 유산을 축적시키며 다음 세대를 향한다. 후대는 전시대가 남겨놓은 수레바퀴의 자국을 추적하며 그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추출하여 해석하고 평가한다. 기록에 남겨진 정신적 유산에 대하여 해석하고 비평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추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유추하는 작업은 철학이며 철학은 기본적으로 유추의 작업을 철학의 요소로 포함하고 있음으로 정신문화를 해석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철학이 도입되어야 한다. 철학은 그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추출하고 애매모호한 내용이나 끊김이 있는 부분에 대하여 유추라는 과정을 통해 연결해 주어 평가와 해석을 용이하게 한다.
역사 이래로 그 시대를 특정하기 위해 남겨진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끄집어내어 정당한 평가를 하기 위해 문학은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 지난 과거 역사의 허와 실 그리고 그 시대의 정신을 이끈 정치가들의 치적에 대한 판단까지 비판하고 비평해야 하는 문학의 입장에서 이 고민은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는 고민이었다.
비판과 비평에 들어가기에 앞서 문학은 어떤 각도에서 어떤 접근방식으로 함축되어 있는 문화의 코드에 접근하여 해석하느냐를 놓고 심히 고민한다. 역사의 기록에 남겨져 있는 사료와 인용된 자료, 그리고 인용된 자료에서 일차적으로 해석된 부분을 해석의 자료로 삼을 때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인용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어떤 한계에서 경계점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정해 주어야만 한다. 이렇듯 고민하면서 해석해 놓은 해석은 다시 비판과 비평이라는 과정을 통해 검증하게 마련이고 검증을 역사의 심판이라 칭한다. 역사의 심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사상의 결과에 대한 심판이며 검증된 자료를 토대로 심판된다.
이 심판은 그 시대 인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해결하며 살았는가를 따지는 작업이다. 쓸데없는 일에 고민을 하고 엉뚱한 짓을 벌였는지 아니면, 시대의 어려움 혹은 국가나 사회의 어려움에서 지성인들이 마땅히 고민해야 할 일을 해왔는지를 따지는 일이다.
만약 지도층은 쾌락적인 삶을 살았는데 구성원들은 피폐한 삶을 살았다면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할 것이며, 어려운 시대에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고민하는 지도자들 가운데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낸 영웅이 탄생했다면 그 영웅에 대한 평가와 찬사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
철학의 의미를 불러들이는 것은 지도자의 통치철학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으로 남북한 통치자의 통치철학을 따지는 작업이다.
3) 통일에 대비하여 문화 비평 작업은 활발해야
역사의 심판에서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무엇보다 사상문제이다. 사상은 곧 생각의 틀이기 때문에 정신의 유산을 남긴 그 시대의 문화를 비평하는 우선적인 근거가 된다.
사상 면에서 대한민국은 마지막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됨으로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최후의 분단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만큼 국가적인 특성과 문화권이 통일국가에 비하여 어지럽고 건강하지 못한 정신과 문화가 남겨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용이하다. 남과 북에서 제각각의 역사와 문화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성장하고 발전했을 것이며 50여년이 지나가는 어간에 남에서 북을 바라보는 시각과 북에서 남을 바라보는 시각에 현저한 차이가 생겼을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용어사용의 차이가 크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용어의 차이가 크다면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도 크게 벌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북에서 망명한 황장엽에 의하면 북한은 이데올로기를 혁명적 행동의 근거논리로 접근하여 김일성 부자에 대한 주체사상의 근거로 삼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했다. 반면 사상에서 자유로운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를 상대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학문적 논리근거로 접근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용어 하나를 두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과 공산주의국가인 북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이는 정신의 근거인 사상(생각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상적 대립으로 맞서고 있는 남과 북의 가치관 차이와 문화권 차이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통일이 되고 난 뒤에 포용될 만하며 한 국가의 사상으로 용해 가능한 것인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고 난 후에 상당한 진통을 겪었으며 현재도 겪고 있다는 독일 사회비평가의 비평을 보고 있으며 과거 서독이 누렸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가 상당부분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통일 후에 미칠 경제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비평과 비판 만 있을 뿐, 어디에서도 양쪽 문화권의 차이에 대한 비평과 비판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통일 후에 오히려 더욱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문화의 차이는 향후 삶의 전반에 미쳐질 영향이 크기 때문에 가장 주목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문화 비평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밝혀준다.
생각의 틀로 굳어진 경우(이를 사상으로 말한다) 그 생각의 틀은 도무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6.25를 통한 경험으로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남한에서의 마지막 미전향자의 경우와 납북인사들의 탈북에서 보듯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관한한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고향은 지번을 가지고 있으나 생각의 고향인 사상은 지번이 없는 정신의 고향이다.
문학에 대한 비평은, 새로운 책으로 출판되어 주목을 끌게 되면 어김없이 비평가들의 글로 비평되어 해석된다. 하지만 문화에 관한 비평 특히 통일에 대비한 비평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남과 북의 각각의 사상근저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비평이 접근되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남한의 정신적 문화권의 흐름에 대한 비평이라도 있어야 한다. 곧 6.25 이후에 대한민국을 주도한 정신적 조류는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특징에 대하여 규정해 주어야 한다. 학문적 깊은 고찰의 비평수준까지 도달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단순해석이라도 있어 주어야 한다. 단순해석이 깊은 고찰에 대한 도전이 되어 질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비평이란 일정한 논문형태를 갖춘 소고 이상의 형태로 나와야 한다. 비평이란 해당 학문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기도 하거니와 해당 전문가의 언어를 해석하며 평가하는 작업이다. 비판이 학문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라면 비평은 학문을 세우는 작업이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권에 대한 비평은 반드시 있어야 할 작업이며 후대를 위해 활발히 작업되어야 한다.
2. 통일론 비평에 있어서 두 번째 고통, “방식의 문제”
한국인은 감정과 기분에 우선되는 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따라서 한국인은 경마, 오락, 도박 등의 사행성 문화와 한탕주의에 빠져들 확률이 가장 높다. 또 여기에는 6.25 동란과 각종 격변기에서 발생된 충격파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울화 혹은 화도 한몫했다.
남한의 경우 경제대란으로 불리는 IMF 환란을 거치면서 무너진 가치관도 한몫 거들었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의 시대를 이끌던 건강한 정신세계는 사라져 버리고 오직 물질만능과 성공지상주의가 한국을 견인하면서 한탕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한탕주의에서 생겨난 대박이라는 신조어가 한국인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인의 덕목으로 말해지던 절제된 미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돈이 차지했다. 그리하여 돈을 가진 자들은 돈의 장점에 맛이 들었고 돈을 가지지 못한 자는 돈을 가지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 돈 앞에서는 정이고 권위이고 윤리이고 도덕이고 정신적 가치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사상까지도 팔아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정도라면 통일 후의 한국을 이끌어 나갈 정신이 온전한 정신이 될 것이냐는 의문과 염려가 생긴다.
통일론에 접근하는 비평의 방식 중에 가장 위험한 방식이 한풀이적 접근이나 동정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를 통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 친북자들은 6.25 동란의 원인을 친일파에 대한 척결을 들며 인민군을 해방군으로 묘사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북한과 친북 학자들은 6.25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한풀이적 접근이나 동포애를 빌미로 동정적인 접근을 시도해 왔다.
1) 한풀이 문학으로는 접촉점 없어
한국인의 정신문화에 대하여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 1부를 恨의 모닥불로 출발하며 ‘한의 문화’로 정의하고 있다. 조정래 작가의 분석에 의하면 일제치하 36년은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소원의 한을 품게 했고 해방 후 민주주의를 놓고 소련적 민주주의(공산주의)로 가느냐? 미국적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로 가느냐? 의 선택을 놓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다. 이 혼란의 와중에 6.25 동란을 겪게 되면서 한국인의 중심에 한의 문화가 생성되었다고 말한다.
왜 분단이 되었는가? 사상으로 보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소련적 해석과 미국적 해석이 각각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북측의 소련식 해석을 따르는 좌파지도자들과 남측의 미국적 해석을 따르는 우측지도자들 간의 간극으로 인하여 해결 불가능의 대립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간헐적인 소모전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지도자와 달리 국민의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북한에 살고 있으면서 남한의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를 흠모하는 국민의 수는 남한에 살면서 이데올로기의 혁명적 공산주의 사상을 흠모하는 국민의 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이는 6.25 전쟁이 터지고 난 뒤에 북한에 살고 있던 국민이 대거 남한으로 피난 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서는 오히려 남한에서 북으로 넘어가지 못한 소위 빨치산들의 인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작가의 작업에 의해 탄생되어진 문학작품은 작품으로 이해하겠다는 경계점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이 타인의 사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상이라면 그리고 그 사상이 분단국가의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문제가 되는 사상을 담았다면 귀추가 어찌 될지에 대한 예측은 하고 썼을 터이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작품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에서 기초 독서 권장작품으로 추천되어 있다는 사실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작품으로만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태백산맥에 붙어 있는 비평가들의 비평은 조정래 작가에 대한 찬양일색으로서 과연 이 작품에 대하여 정당한 비평이 있었는지에 대해 심히 의구심이 일어난다. 한 발 양보하여 그것이 출판사의 베스트 셀러물을 만들기 위한 의도적 작업이었다고 해도 비판되지 않은 작품에 대한 평가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들어 방송사들의 드라마를 보면 문학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오직 상업주의에 일조를 하는 정도로서 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어난다. 근친상간이 존재하고 성폭력이 조장되어지고 아버지의 존재는 희화되어지고 조소거리로 분장되어진 채로 왜곡된 내용이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다. 이는 곧 전통적인 가치관의 형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아버지 문화가 붕괴되었다는 말이 되겠는데 아버지 문화란 최소한의 권위를 말한다.
권위가 무너졌다는 말은 권위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말이겠는데 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공지상주의이며 경제이다. 성공을 하면 돈이 따라오기 때문에 성공지상주의는 물질만능주의를 말한다. 물질만능주의가 고착되면 정신세계는 사멸되게 되어 있다. 성공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가정에 도입되어 성공한 아버지는 존경을 받았고 성공하지 못하거나 혹은 직장에서 밀리거나 등의 이유로 도태된 아버지는 즉시 존경심을 잃었다. 생산의 능력이 있는 아버지는 존경을 받고 생산의 능력이 없는 아버지는 가장의 권위까지 잃어버리고 자식과 같은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정 안에서 자식과 소비를 경쟁해야 하는 한낱 소비자에 불과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조정래 작가가 규정한대로 한국인은 한을 가진 시대의 문화인이라는 정의가 맞는 말인가? 그래서 그 한을 풀기 위해 한국인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학이 스크린과 만나면서 순수문학에 대한 경계점은 와해되어 버리고 오직 경제논리에 따라 문인의 정체성마저 허물어진 듯 보인다.
2) 순수문학시대, 정신으로 돌아가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순수시대가 있었다.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고집스런 문인선배들은 자신의 원고를 월간 문예지 이상이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판하는 출판사 외에는 원고도 주지 않았다. 문화촌의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빨간 벽돌집에 살던 얼마 전에 타계하신 박화목 선생은 순수문학파 문인의 정의를, 상업적 의도로 사용하는 일간지나 주간지 등에 투고하지 않고 월간 문예지 이상에 투고를 하는 문인으로 한정했다. 선생은 물질과 담을 쌓고 오직 문학의 발전과 후배문인들을 위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깊이 있는 글을 고집스럽게 써내는 순수문인을 존경한다 했으며 순수문인의 선봉으로 소설가 한수산, 박경리, 황순원 선생 정도를 꼽으며 순수문학의 경계와 지평을 국한했다.
문화권은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가 굴러간 대로의 자취가 고스란히 문화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권을 살피면 그 시대의 정신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철학, 건축, 예술, 문학의 양식은 시대적 삶의 양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그 시대의 정신이 추구한대로의 흔적이 결과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대의 결과물인 문화권을 살피면 그 시대의 정신이 나오게 되어 있고 시대의 정신은 언어로 표현되어 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역사는 문화를 통해 말해 왔고 문학은 이를 설명해 준다는 뜻이다.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되는 일체의 것들은 문학의 갈래를 가지게 되어 있다. 문학의 갈래 속에 포함되어 있는 비평은 그 시대의 정신이 현재에서 과거를 어떻게 보았고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으며 어떤 유행을 만들어 냈는가에 대한 정신의 기조를 살피는 작업으로 말해진다. 과연 그 시대의 정신이 어떤 유행을 작품으로 남겼는가를 살피고 그 시대의 정신을 추출해내는 작업까지 비평이 할 일이다.
한국인은 비판과 비난에는 강하나 비평을 통해 남겨 놓은 업적은 약하다. 특히 문화권에서 비판과 비난에는 강하나 비평을 남기지 못해 그 업적이 사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대목이다.
외국의 경우 비판과 비평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비판과 비평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비평에서는 비판을 찾을 수 있으나 비판에서는 비평을 찾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의 논문을 제외한 모든 비판은 비난으로 흐른다.
비판은 비판에서 그쳐야 한다. 비판이 비판에서 머물지 않고 비난으로 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이 억지성을 띠기 때문이다. 비판은 했으나 논거가 부족하고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열악한 비판일수록 그 속에는 억지주장이 많이 들어가 있다. 비판이 비평으로 가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식을 채용해야 하게 되어 있다. 비평이란 결과물까지 예측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빈틈을 보이게 되면 여지없이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공격을 피하는 길은 공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고 확실한 논거와 방증을 통해 결과의 예측에 대한 오차를 줄이는 길 밖에 없다. 순수성이다.
3. 통일론 비평에 있어서 세 번째 고통, “문화 비평정신”
역사는 시공간에 영웅이 살아간 자취의 기록이다. 영웅이 살다 간 자취는 시대의 영웅과 함께 했던 정신의 산물이 문화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시대의 영웅들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위대한 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을 사모하는 대중이 함께하여 시대의 역사가 탄생되었다.
문화는 영웅의 탄생과 죽음까지 어떤 정신의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주변 언저리의 이야기까지 상세히 남겨 놓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주인공이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의 우선순위는 어떤 순위를 가졌는지, 그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가치관이었는지에 대하여 상세한 정보를 남겨 놓았다. 이 정보는 통전적으로 굵직한 역사의 사실에 대한 궁금증 보다 극히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더욱 세밀한 정보를 담기 마련이다. 문화가 없던 시절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던 하와는 선악과에 대한 궁금증을 입으로 해결하고 말았다. 하지만 문화의 시대에서조차 입으로 해결해 버린다면 큰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등, 하굣길에 ‘베아트리체’라는 간판과 마주친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은 꼭 마주친다. 세월이 흐르고 이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 그 간판과 이별을 했다.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인데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특별활동 시간에는 독후감 발표가 있다. 좋아하게 된 여학생이 ‘베아트리체의 사랑과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단테의 <신곡>에 대한 독후감을 발표했다. 여학생이 낭랑한 목소리로 독후감을 읽고 있는 동안에 이 남학생의 머리에는 ‘베아트리체’라는 낯익은 이름이 빙빙 돌았다. 하여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인터넷에서 ‘베아트리체’를 검색하여 보니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당장에 단테의 신곡을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다. 주문해 놓고 단테와 베아트리체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열심히 뒤져 보았다. 이제 이 학생도 독후감 시간에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독후감을 발표할 참이다. 이 학생이 인터넷에서 찾아 본 베아트리체 항목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로, 1288년 이전에 시모네 디 발디의 아내가 되었으나 1290년에 요절하였다. 단테는 9세 때(1274) 한 살 아래인 그녀와 만나 사랑과 찬미의 감정을 품게 되고, 9년 후에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 그녀의 정중한 인사를 받자 지극한 행복을 느꼈으며, 그 후로는 영원한 여성으로 그의 마음속에 살아남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시성(詩聖) 단테의 생애를 통하여 사랑과 시혼(詩魂)의 원천이 되었던 여성이다.”
이렇게 해서 그 남학생은 베아트리체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하지만 미흡하다. 베아트리체는 어떤 여인이었는지는 알았는데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단테가 살았던 시대의 생활상과 가치관까지 폭넓게 살펴보게 되었다. 여기까지에서, 자연스럽게 그 시대는 누구의 통치 시대였는지, 그 시대의 음악과 건축물 등 상징성이 있는 문화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가 살펴졌다. 단테의 <신곡>이라는 문학은 그 시대의 가치관과 문화권을 설명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학이 그 시대의 문화권을 설명하고 있다고 해서 문학과 문화가 하나라고 보지는 않는다. 문학과 건축물은 서로가 다른 이야기이다. 문학과 음악도 역시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렇듯 서로 다른 양식의 두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하여 비평을 불러와야 한다. “고딕건축물의 양식과 바로크건축물에 대한 약식의 비평”,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과 바로크 시대의 음악 양식의 비평”등으로 비평을 하는 경우에 문화와 문학 사이에 비평이라는 다리가 놓아지고 문화와 문학이 서로 연결점을 갖는다. 따라서 문화와 문학은 비평으로 연결되어진다. 문화에 비평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비평은 시대 혹은 언어가 다르거나 장르가 서로 다른 문화권을 하나로 묶어 내는 작업이다. 고대문학과 현대문학의 차이를 비평한다면 고대문학과 현대문학의 비교를 통해 고대문학과 현대문학의 차이에 대한 이해의 가교(架橋)가 생긴다. 이것이 문화비평정신이다.
만약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비판한다면, 남한과 북한은 서로의 단점만이 부각된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비평하게 된다면, 남한과 북한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작년에 남북의 문화를 교류한다는 목적으로 ‘평양의 8.15 축전’에 남측의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또 ‘남북 스포츠 교류’라는 미명하에 한반도기를 앞세우며 북측의 응원단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이는 문화 교류가 아니라 정치적인 교류일 뿐이다.
문화의 교류란 서로 다른 문화양식을 가진 차이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위한 목적을 가질 때에는 반드시 비평을 필요로 한다. 비평은 연결에 있어 필연적이라는 좌소를 가진다.
비평의 자료는 사실이어야 하며 구체적이어야 한다. 비판은 사실에 대한 단순비교의 차원이나 비평은 사실의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의 차이까지 평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충분한 자료의 사실이 필요하며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인 교류 정도로는 남북한의 문화적인 괴리에 대하여 평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한다. 북한의 막혀있는 언로와 문화작품이 공개되지 않는 이상 북한문화에 대한 비평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 문화에 대한 비평은 작품을 시료로 하게 되어 있다. 공산주의 사상이나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은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나 있으며 사상에 대한 평은 비판으로 머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사상에 대한 평은 이원론적인 흑백논리로 귀착이 되기 마련이다. 이미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원론적인 흑백논리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데 이를 평하는 것은 논쟁밖에 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거듭 3번 이상 듣게 되면 욕으로 들리게 되어 있다. 사상에 대한 논쟁은 목숨까지 걸게 되어 있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작업이나 비평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난 뒤에 이 작품이 어떻게 탄생되었으며 그 가치가 얼마나 되며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따지는 작업이다. 비평의 영역에서 정치와 경제는 제외된다. 정치와 경제는 비판의 대상이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와 경제는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통치자 혹은 정책자가 있다. 통치자 혹은 정책자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평가하는 것이 기본이다.
비평은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간접적인 평가이다. 작품은 불변하며 불변하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평가를 할 수 있다. 변하는 것에 대하여는 평하고 논할 가치가 없다. 변하는 것은 그 때 그 때 비판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문화 혹 문학적 비평은 드러나 있는 불변한 작품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사실적이며 구체적이어야 하고 양쪽을 화해시킨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문화비평정신이다.
4. 월드컵 경기에서도 드러내는 “한풀이적 감정”
2006년 6월 월드컵 경기는 전 세계인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았다. 월드컵 본선에 오른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명암은 뚜렷이 갈렸고 본선에 오른 국가의 월드컵 경기는 국가적인 자긍심까지 더해졌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랐던 전력이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2006년 월드컵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공을 들였다. 지상파방송 3사는 대대적인 응원과 최고 수준의 중계를 약속하며 방송의 대부분을 월드컵 중계에 집중했다. 시청자들은 일방적인 방송3사의 월드컵 중계채용으로 체널 선택권마저 박탈당했다. 마치 온 지구상에 월드컵만 존재하는 형국으로 월드컵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한국의 미래를 결할 수 있는 FTA 협상마저 월드컵 중계에 가려 슬며시 밀려 났다.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시청 앞 광장이나 월드컵 경기장 등으로 몰려 밤샘 응원을 했다. 아니 전 국토가 응원 장으로 변했다. 한판의 응원전이 끝난 후에는 신문지상과 인터넷을 통해 응원전후의 풍경이 보도되었다. 보도 내용은 각종 성범죄와 실종된 시민의식에 대한 고발내용이었다.
외신의 보도는 시청 앞 광장과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응원 모습과 길거리와 아파트에서 응원하는 한국인의 응원을 보도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애국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월드컵 경기 응원을 애국심으로 포장하여 과대열기를 애국심의 발로로 이해하는 또 다른 한국의 문화라고 표현하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덧붙여 응원 후의 무질서를 지적하며 월드컵을 빙자한 비뚤어진 애국심이 또 다른 한국의 새로운 문화를 생산했다고 꼬집었다. 월드컵을 응원하는 응원자들 사이에는 무엇이든지 다 용서가 되고 허용이 되기 때문에 한국의 경찰들은 이 기간 중에 상당히 바쁜 업무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정주부와 과년한 딸들이 가정을 이탈하여 밤새 소리 질러 가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밤을 새우고 와도 월드컵 때문에 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었다. 이 기간 중에 방송권을 사지 못한 북한은 남한 당국에 요청하여 북한에 전파를 송출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적어도 월드컵 기간 중에는 전파를 통하여 남북한의 시각이 통일이 되어 월드컵을 시청했다.
외국인이 이해를 못하고 한국의 새로운 문화권으로 소개한 한국의 월드컵문화는 한국인의 감정과 동적인 요소와 결합하며 기왕의 스포츠 문화권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실제생활의 영역이 와해될 만큼 강력한 마취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으며 그것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역사상 이처럼 강력하고 한국인을 미치게 만들며 한 덩어리로 결속할 수 있도록 만든 문화는 없었다. 이는 그만큼 부작용도 클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는데, 중국과 한국전의 결과에서 나타난 공한증이라는 페닉 현상이 그것이다.
다행히 중국은 공한증에 대하여 여러 각도의 문화적 비평을 통해 공한증을 바로 잡았고 페닉현상도 사라졌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과의 경기를 앞에 두면 여전히 공한증의 망령이 되살아난다고 보도했다. 공한증을 불러 일으켰던 과거의 월드컵 대결이 생각나면서 잠시 동안 페닉현상이 일어나는 현상은 여전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의 공한증과 페닉현상을 진정시킨 비평은 좌우를 구분하여 중심을 잡아 주는 무게 중심과 같은 역할을 잘해 주었다.
한국의 문학은 정적인 요소에 우선되어 있으며 이성은 그 다음의 자리에 있다. 그 중 대표작품을 꼽으라 하면 서슴없이 태백산맥과 조정래 작가를 들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으나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이란 감정의 최종점이며 이성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감정의 휴화산이다. 그야말로 분노라는 마그마의 용틀임만 있으면 폭발해 버릴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는 감정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한이란 이성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 다만 환경이라는 조건이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의 1부를 한의 모닥불로 출발하면서 ‘한’의 중심에는 전쟁이 있고 전쟁의 중심에는 남북의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조정래 작가는 일제치하의 맺힌 한을 북한에서는 혁명적인 방식으로 풀어 주었는데, 남한은 오히려 친일세력을 지도층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펼침으로 민의 한이 그대로 남아 ‘한의 불씨’가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한의 모닥불을 지핀다.
작가의 양심에 의하면 친일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국민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던 자들이 바뀐 세상에서 심판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진정한 해방이란 과거의 한을 푸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다.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 법이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바뀐 세상에서 약삭빠른 처세로 다시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그 자손들에게까지 대물림 되는 세상이라면 정의가 어디에 있는가. 이는 진정한 해방이 아니다.
작가는 속이 뒤집혀 혁명적인 해방을 꿈꾼다. 북한이면 어떻고 남한이면 어떤가.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보고 싶다. 진정한 해방은 과거의 한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으로 ‘한의 모닥불’을 지피며 매운 연기를 피워 올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민족주의는 일제에 기대어 동족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아 호의호식했던 민족의 역도들에 대해 북한식의 응징이 정의의 칼로 대변된다. 적어도 감정의 뿌리에 맺혀 있는 한을 납득할 만한 수준까지는 처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맺힌 한이 풀리겠는가. 한 시대가 종결되고 새 시대를 받아 들어야 한다면 과거의 불의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해결하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민족의 가슴에 남은 한을 풀지 않고서는 새 시대를 향할 수 없다.
조정래는 다시 북한의 모럴과 남한의 모럴 사이에서 갈등하며 6.25를 해석한다. 6.25는 과거의 한을 털고 가자는 김일성의 모럴과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이니 과거가 어찌 되었던 현재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가자는 이승만의 모럴이 충돌한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인 보다 일본인에게 충성심을 인정받기 위해 더 악랄한 일본인으로 변신했던 친일파들에 의한 고초와 한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미국에서 편히 살았던 이승만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국내사정에 문외한인 이승만에게 있어서 인텔리와 부자는 쓸모 있는 사람이다. 김일성은 사상의 문제에 대하여 우선순위를 두고 친일사상을 숙청의 대상자로 삼았다. 반면 한국의 현실에 취약한 이승만은 자신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능력자를 선호했다.
따라서 남한에서는 친일파들에게 입은 한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민중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았고 사상을 중시한 김일성은 친일파들을 가차 없이 처단함으로 민중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을 풀어 주었다. 남로당들에게 김일성이 지지를 받았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 맺힌 한을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은 북으로부터 뻗어내려 지리산에서 끝난다. 태백산맥의 특징을 통해 지리산이 남로당과 빨치산의 종점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태백산맥의 흐름이 끝나는 곳에 전라도가 있고 전라도민은 곡창지대와 염전을 가지고 있다는 지리적인 특성이 있다. 지리적인 특성이 원인이 되어 전라도는 항상 착취의 일번지에 해당되었다. 거대한 곡창지대는 남북한을 먹여 살리는 일등공신이었으나 동시에 찬탈의 표적이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제나 전라도민은 착취를 당하는 쪽이었고 빼앗기지 않기 위한 항거도 빈발했다. 왜구의 침략과 항거, 동학의 발생 등 항거의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정권의 표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전라도민의 불행이었다. 특히 전라도는 먹거리가 풍족해서 먹는 인심이 다른 지역과 남다르다. 남한 전체를 통 털어 가장 작은 생활비로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텃세도 남다른데 이는 타지에서 온 타 지역민들에게서 언제나 좋은 꼴을 못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제당시 공출의 정도는 악랄하며 비극적이었다. 일제의 악랄함과 비극적인 착취의 정도는 곡창지대인 전라도지방에서 가장 크고 빈번히 나타났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전라도의 인심마저 완전히 바꾸어 놓을 정도로 극심한 공출에 땅까지 빼앗긴 채 고향을 등지고 도시에서 막일을 하는 동안에 뼈에 사무친 한은 얼마나 되었을까 능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세상이 바뀌면 정부에서 자신들의 한을 풀어줄 줄 알았다가 막상 세상이 바뀌었을 때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 친일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세상을 살기가 싫을 정도였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미루어 충분히 짐작이 간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한이 흐르고 있다.
한국 문학이 정적인 요소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면 월드컵이나 스포츠 문화는 동적인 동시에 과학적 요소를 담보하고 있다. 양자 사이의 교류는 정적인 요소와 함께 동적인 요소가 비등하나 동기가 주어지면 양자가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 현상이 월드컵 응원이며 월드컵 응원 중에는 무엇이든지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감정으로 표출되었다. 과연 월드컵 응원 중에는 무리한 행동이라도 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어야 할까. 한 사람의 무리한 행동이 집단 안에서 일어난다면 집단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는 감정이라면 이는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감정이 통제되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월드컵 응원열기로 터져 나왔다.
월드컵 경기 응원에 참여한 남녀의 성비는 오히려 주부를 포함한 여성이 더 많았다는 보도가 나왔고 월드컵 응원에 대한 언저리 뉴스에는 여성인권운동가들이 나와서 명절과 집안일에 쌓인 스트레스를 합법적으로 풀기 위한 행태로 풀었다. 그리고 수많은 말들이 16강 탈락과 더불어 수면 아래로 꺼져 내렸다. 그 동안 월드컵 문화에 대한 정식비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화와 문학은 정신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되어져 있다. 문화와 문학의 범주는 똑 같이 양자를 포함한다. 문화 속에 문학이 있고 문학 속에 문화가 있다. 이는 문화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문학이 사용되어지며 문학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문화가 사용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와 문학은 양자 간에 비평을 통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측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듯 보인다. 문학이나 문화의 좌우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은 비평이다. 오직 비평을 통해서 좌우 중심무게를 잡아 줄 수 있다. 당장에 월드컵 문화의 중심을 바로 잡아 주어야 비이성적인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통일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남북이 각각 분단된 채로 각각 성장하고 고유한 형체를 가진 문화양식으로 굳어져 있다. 남과 북의 언어체계가 다른 만큼 문화양식의 차이는 현저하다. 이를 잡아 주어야 할 책임이 비평에 있다. 북측의 문화양식은 공개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비평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해도 남측에서는 각 장르의 문화권에 대한 비평자료를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남북한의 간극을 그만큼 줄여줄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중요성을 갖는다.
남북통일에 대한 대비는 정치권만의 영역이 아니며 광의적으로는 한반도라는 동일문명의 틀 안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비평되어야 한다. 북한이 보는 월드컵 문화에 대한 비평과 남한이 보는 월드컵 문화에 대한 비평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를 두어도 남한과 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언어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충분히 접근될 수 있다. 즉 공감하는 부분이 같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통일을 대비하여 남한의 문화권에 대한 체계적인 비평을 자료로 남겨 두는 작업과 그에 걸 맞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1) 세계철학대사전, “만하임” 항목, (서울:교육출판공사, 1980, 중판),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