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부활 긴 겨울잠에서 깬 나목 위에 초록이 덮히고 사흘 잠에서 깬 그리스도의 몸에도 초록이 입히어 긴 겨울 차마의 울부짖음과 군상들의 피곤한 외침을 뒤로 하고 나목 위에 꽃 망울이 슬몃 돋아 나왔다. 스올의 음산한 부르짖과 불에 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하며 살아서는 썩은 창질의 고름냄새처럼 .. 아침이슬·시 모음 2010.04.05
우렁각시 우렁각시 안형식 밤에만 나타나 각시가 되어 만리장성을 구만리나 쌓았는데 날이 밝으면 연기처럼 사라져 고마운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임에게 표현할 살뜰한 마음도 표현할 길이 없는 낮에는... 낮에는 우렁이가 되어 물만 먹고 살다가 밤이면 안개처럼 다시 나타나 뭘 먹고 사니 뭘 입고 사니 뭘 .. 아침이슬·시 모음 2010.03.02
神 신 우리는 가끔, 그것도 너무나 가끔 내 철학에 도전을 받는다. 머리 깎고 훈련소에 입대한 훈련병처럼 상식도 지식도 판단도 버릴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것은 슬픔을 처리하는 방법이며 혹은 실연의 아픔에 대한 뒤처리이며 잘못된 만남이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이기도 .. 아침이슬·시 모음 2009.09.23
소쩍이 우는 밤 소쩍이 우는 밤 소쩍이 들고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소. 하늘은 어두침침하고 잿빛구름이 가득 덮고 있는 태풍이 지나간 하늘을 바라보았소. 눈길을 거두어 내리니 시름에 겨워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가여운 이들이 숨을 쉬고 있는 땅이 보이오. 불 꺼진 병원의 창가 아래 벤치에는 설움에 겨.. 아침이슬·시 모음 2009.09.23
능금씨앗 능금 씨앗 하늘 바람을 타고 흘러내린 능금나무 씨앗 하나이 내 심장에 살폿 담겨 싹을 틔웠구나 작은 날의 작고 어여쁜 꿈 하나 둘 나래를 펼 때 가지를 뻗어 잎을 만들어냈구나 잘 자라주렴 기도하는 마음 돌보는 손으로 물을 주고 손길을 주었어 이제 잎이 무성하게 자라났구나 네 몸으로 작은 그늘.. 아침이슬·시 모음 2009.09.23
해금이 울어 예는 밤 해금이 울어 예는 밤 해금이 할퀴는 밤, 잠을 놓쳤습니다. 대금이 못 다한 말을 쏟아 놓습니다. 시린 겨울을 이겨낸 기나긴 겨울 밤 이야기입니다. 피아노는 세월을 노래합니다. 흰 건반이 달리며 세월을 붙잡아 놓습니다. 밤은 깊어갑니다.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동백이 피어나는 언덕 조그만 흙집 이.. 아침이슬·시 모음 2009.08.17
가끔 우리는 자주 193. 가끔 우리는 자주 가끔 우리는 자주 내가 몇 점 짜리인지 묻고 싶어진다. 어느 날 불현듯 묻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내 다시 물어보고 싶어진다. 큰 것도 못되는 아주 작은 것을 해놓고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한다. 찌게의 간을 봐 달라거나 뒤 꼭지에 흰머리가 몇 개나 있냐는 등 .. 아침이슬·시 모음 2009.06.19
은반위의 세레나데 은반 위의 세레나데 (은반의 여왕 김연아에게 바치는 노래) 1. 발끝 아래 얼음은 꽃으로 피어나고 튕겨져 오른 너는 나비어라. 끊어질듯 이어지는 한줄기 백선 곡선을 그린다. 커브를 그린다. 아르를 그린다. 그리고 멈춘다. 높이 튀어 올라 몸 비틀어 사뿐 회전하고 나비처럼 사뿐 내려앉았다 천사가 .. 아침이슬·시 모음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