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정래의 역사관과 민족관
조정래는 자신의 편향되어 있는 친북사관을 버리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문인으로서 역사의 심판자로 역사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남아 있겠다고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그는 자신이 역사의 심판자이자 문단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어야 할 이유를 “권력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조정래가 말하고 있는 편향된 역사관과 민족관 그리고 사상에 대한 분석은 조정래 작가의 말에서 찾아진다. 이 내용은 매일경제뉴스 2004년 1월 29일자로 보도된 내용이다.
1) 조정래가 말하는 진실의 의미
“작가는 글로써 지켜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모든 권력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마련이죠. 문학인에게는 이런 오류를 감시ㆍ감독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있습니다. 신성한 책무를 버리고 정치에 가담하는 일은 평생 없을 겁니다."
조정래가 말하는 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필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작가를 비판할 때에는 어떤 의도와 어떤 목적으로 글을 썼느냐 하는 점을 첫 번째로 살핀다. 작가란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글을 쓰게 되어 있고 작가의 시각이 좌로 편향되어 있으면 좌익 사상의 글이 나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글의 내용에 담겨 있는 작가의 사상은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가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조정래의 작품에서는 미군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본색이 나온다. 이 증오와 혐오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증오이며 동시에 미국과 동맹하여 반공정책을 펼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증오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조정래의 글에서는 좌우 수평추가 정확하게 중앙에 있는 진실은 나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리인가? 조정래의 양심에는 이역만리까지 들어 와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준 유엔군 15만 명의 목숨은 다만 침략군으로서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란 것인가. 고마움도 모르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혐오와 증오를 남발하고 있는 조정래에게 김일성과 북괴군은 오히려 해방전사로 포장된다. 미군의 죽음은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 깽판을 치다 죽은 것에 불과하다.
조정래의 시각이 왜 이렇게 비뚤어졌는가? 그는 어린 시절 겪은 6.25 때에 자신의 집으로 미군이 군화발로 들어와 총부리를 들이대는 통에 심히 놀라고 두려웠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물론 그것이 중대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자신보다 7살 많은 빨치산 박현채를 스승과 같이 존경하고, 자신보다 2살 많은 남민전 출신의 간첩이었던 임헌영과 호형 호제하면서 함께 어울렸던 일을 무엇으로 말할 것인가?
초록은 동색이다. 박현채의 중심에는 신앙과 같이 김일성이 있었다. 박현채는 김일성을 그로 표현하며 그를 위해 준비해야 하고 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방법은 박현채가 김경추(가명)에게 주었던 “세 단계의 싸움에 주는 격문”에 있다. 그를 위해 합리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투쟁하고 동양의 사상인 중용으로 처신해야 할 것을 지령했다. 세 단계의 싸움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당시와 연결해 보면 책과 문서 그리고 비라 등을 통해 남한의 국민들을 선동하는 책략을 사용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현채는 공자의 중용을 동양의 중용으로 말했다. 이 의도적인 용어 사용에는 오직 김일성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존경심을 바치지 않는다는 박현채의 충성심의 표현법이다. 조정래는 박현채의 지령에 따라서 책을 통해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가는 길을 닦았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진실이란 있을 수 없다.
2) 조정래의 근황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아름다운재단 100인 발기인, 친일파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인데요. 특히 친일파사전 편찬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국민모금을 통해 일주일 만에 5억 원을 모았어요. 총 3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나머지 25억 원은 국민발기인을 모집해 모을 예정입니다. 편찬은 실무자들이 일을 거의 마쳤지만 (친일파사전을)책으로 만드는 기금을 모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조정래의 동선을 보면 그의 사상적 궤적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파악이 된다. 참여정부 시절 참여연대는 좌파들이 청와대에 진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통로였다. 한국경제는 유석춘 연대교수의 분석을 보도했다. 참여연대 출신 150명이 공직에 진출했다는 내용이다.
1994년 창립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자리 잡은 참여연대의 전·현직 임원 416명(전체 531명 중 직업 정보가 확인된 인물) 중 36.1%에 이르는 150명이 청와대와 정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 등 313개의 정부관련 직책을 맡았었거나 현재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22개(7%) 자리에 불과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113개(36.1%),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158개(50.5%)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드러 났다.이 같은 사실은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 12년간 참여연대의 전직 공동대표, 감사, 사무처장, 정책위원, 운영위원, 집행위원 등을 지낸 임원 531명의 정부기관 진출 현황을 분석한 '참여연대 보고서'에서 확인 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연대 출신이 맡은 313개 직책 중 57.5%에 달하는 180개는 참여연대 활동 이후에 진출이 이뤄진 경우였다. 참여연대에서의 임원활동이 공직진출의 발판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경제, 유창재 기자, 2006.9.2.10:21)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변호사는 민주화 운동, 간첩전력자를 변호했던 소위 민주화 운동 민권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박원순 변호사와의 연결은 임헌영의 역사문제연구소를 통해 이뤄졌다. 임헌영은 “그 울음의 의미를 우리는 안다” (코리아포커스-전집발간위 공동기획) 박현채와 나 ⑦에서 1986년 박원순 변호사와 원경스님, 이호웅 의원을 비롯한 몇이서 역사문제연구소를 하자는 권유를 받고 박현채와 상의 끝에 역사문제연구소를 창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임헌영은 저명인사들을 대폭 자문위원으로 추대했으며 한길사를 통해 역사기행과 심포지움을 통해 리영희, 박현채, 김진균, 임헌영, 조정래로 연결되는 좌파 문인의 사상지도가 만들어진다. 임헌영은 “1988년 한길사는 월간 <사회와 사상>을 창간했는데 그 편집위원에는 강만길, 고은, 김진균, 박현채, 이영희(이 때는 이렇게 표기했음), 임헌영이었다. 회의 때마다 박(박현채) 선생은 나(임헌영)에게 문학예술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친 언급과 기획을 강요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3) 서정주 등 친일파 문인들에 대한 시각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용서'는 잘못한 자가 속죄할 때 이뤄지는 것이죠.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역사의 비판대 위에 서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선배들이 잘못한 모든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돼야지요."
-엄격히 말하면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느냐는 항변도 있을 법한데요.
"그런 논리는 바로 친일파들의 자기변명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에 들어 온 일본인은 80만 명인데 이들에게 빌붙은 친일파가 160만 명이에요. 바로 이들 때문에 36년이라는 식민지배가 있었던 겁니다. 이들 외에는 친일파가 없어요. 무기를 든 적극적인 독립투사, 군자금을 지원한 소극적인 독립투사, 일제에 징용된 정신대나 징용 노동자 등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끝없이 부른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친일파입니까."
조정래는 용서와 속죄를 하나의 등식으로 말한다. 속죄가 있어야 용서가 된다는 말이다.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역사의 비판대 앞에 세워서 비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렇다면 이미 죽은 친일자들에 대한 비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비판은 학문적인 비판과 촌철살인적인 비판, 이 둘로 나뉜다. 조정래가 말하는 비판은 후자이다. 즉 이름을 죽이는 것이다. 뛰어난 업적 혹은 빛나는 업적을 남겨 이름이 높았던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과거를 파서 죽이는 것이다. 이 사람이 과거에 친일파였습니다라는 명단 발표로 단숨에 업적을 희석시키고 명예를 죽이는 촌철살인이지 업적의 공과 과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조정래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이 한 일이 바로 촌철살인이다.
4)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
"민족주의를 폐쇄적 공격적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건 히틀러의 민족주의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게르만을 제일로 취급하고 다른 민족을 탄압 했지요. 우선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논리를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모두 세계에서 강대국이라 불리는 제국주의 국가들 아닙니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를 경제ㆍ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런 시각을 심어놓은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일어선 제3세계 국가들이 저항하면 안 되니까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개방적, 공생적 건설적인 신민족주의입니다. 우리가 통일에 동의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 민족주의뿐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와 히틀러의 민족주의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데 연결을 시키고 있는가. 한국이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던가? 아하 있구나. 김일성이가 전쟁을 일으켰구나. 그래서 지금 히틀러의 민족주의 운운하면서 김일성을 변호하고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라고 했는데 그 우리란 누구,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겠다.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개방적 공생적 건설적인 신민주주의라니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자주성이 없고 독립되지 못한 민족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뭐를 방어하고 개방적이며 공생적이고 건설적인 신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방어해야 한다는 뜻인가? 개방을 말하는데 이건 어디를 겨냥한 말인가. 북한에 남한을 개방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공생을 해야 하는 것이고 건설적으로 퍼 주는 것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통일로 가자는 말이 아니던가. 같은 민족이라 동질감이 있다니 그래서 민족주의를 말한다? 그렇다면 결국은 임헌영의 말과 박현채의 말과 본질은 같다는 말이 아닌가. 다만 이리저리 비틀고 꽈배기를 만들어 놓아서 이게 뭔가 하는 쪽으로 위장하고 있음이 아닌가. 같은 민족이라 동질감이 생기다니 그래서 박현채는 빨치산이 되어 동족에게 총을 겨누었던가. 그것이 조정래가 말하는 동질감이며 민족주의인가.
5)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의식은 저항(혁명이론)
"역사정신이란 치열한 시기에 솟아올랐다가 잦아들 듯, 물이 솟아올랐다 다시 잠복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그런 위기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역사정신이) 다시 응집돼서 솟아오를 것으로 봅니다. 지금 표피만 보고 요즘 젊은이들이 치열하지 않다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지금보다 10년 전에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때 도 대학생들은 힘껏 저항했습니다. 돈 받고 표를 찍는 이는 노인들이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역사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의식 있는 저항세력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리랑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읽을 이유가 없죠.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된 아리랑을 보면 표지가 너덜너덜합니다. 그들은 그걸 읽으면서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의식이 깨어난다는 말은 의식화가 되어 친북자가 만들어져 나온다는 뜻이다. 6.25의 역사를 남침으로 보느냐 북침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식이 달라진다. 조정래는 친일자를 숙청하기 위한 해방군으로 북한군을 묘사하고 있다. 남침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대체 빨갱이들 외에 북한군을 해방군으로 보는 자가 남한에 누가 있느냐.
조정래는 자신이 쓴 태백산맥의 의도를 명확히 해 주고 있다. 의식화용으로 저술했다는 뜻이다. 의식화된 박현채의 빨치산 줄기들이 총이 없으니 각목과 화염병을 들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것이 민족주의이다. 민족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항하라. 조정래는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다.
과연 조정래 따위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표하여 민족을 운운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만큼 따라 주는 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정래의 말이나 글에서는 단 한 번도 애국과 애족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친북자의 전형이다. 이 점을 명백히 보아야 한다.
6)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 가치
"물론 인류의 행복, 평화는 우리 모두의 이상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와 행복이 보장되려면 일단 각 단위 민족의 다양성이 인정돼야 합니다. 맹목적인 세계화가 위험한 것은 이것이 강대국의 논리, 강대국의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세계의 언어는 강대국의 몇 가지로 통일될 겁니다. 지구상의 수천 가지 아름다운 언어들이 말살되고 없어지는 거죠. 우리가 세계를 여행하는 건 다른 민족의 다양성을 보기 위한 겁니다. 이 획일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9ㆍ11테러를 겨냥해) 20세기를 문화의 세기라 치장했던 인류에게 2001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래도 세계화를 부르짖는다면 21세기에도 이런 비극이 계속될 겁니다. 작위적인 세계화, 강압적인 무역개방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께서 '탐욕이 너를 망칠 것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대국도 그들의 편의만을 위해 약소국을 개방시키고 강압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도 정치인, 기업인들은 계속 강대국의 논리를 답습해 세계화를 추진할 것으로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게 우리 문인들의 임무, 조정래의 임무입니다."
조정래가 앞에서 말한 "방어적"에 대한 의미가 어떤 의미로 채용되었는지 여기 강대국의 논리를 말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조정래가 말하는 강대국의 논리는 세계화로 보고 세계화란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강대국의 논리로 보고 있다. 무역을 통해 이뤄지는 통상을 착취로 보고 있는 조정래의 내면에는 북한으로 가득 차 있다. 조정래에 의하면 북한과 김정일은 우리의 동포이자 우리의 형제라는 개념이다. 6.25를 도발하고 450만명이나 되는 인명이 처참하게 죽었으며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발생시킨 김일성을 아버지쯤으로 보고 있는 조정래의 시각이 뚜렷하게 보이는 대목이다. 조정래에 의하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은 세계화 논리로 한국을 착취하는 적이다. 그래서 미군이 철수를 해야 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깨뜨려야 하고 북한과 친교를 해야 한다. 이것이 조정래의 내면의 시각이다. 그런데 바로 아래에서 말하는 조정래의 통일론은 이율배반적인 이중성을 드러낸다.
7) 조정래의 통일론
"민족의 대과제이지만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대결과 갈등 속에서 50년 세월을 살면서도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화해와 통일로 큰 방향을 잡은 상황입니다. 부산 아시안게임 때 300명이 넘는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먹이고 재운 것 같은 일들이 작은 통일 아니겠어요? 유니 버시아드 대회, 올림픽의 단일기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게임 때 2등 하는 것보다 민족의 협력을 알리는 게 작가와 언론의 몫입니다.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전쟁통일도 안됩니다. 50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50년은 왜 기다리지 못합니까. 대명제임을 기억하고 노력하면서 기다립시다. 삼국시대가 있었듯 분단시대가 있었음을 훗날 기록하면 됩니다."
통일이 아니었나? 앞으로도 50년 이상은 넉넉히 기다릴 수 있다니 앞으로 50년 이후면 조정래가 살아 있을 시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눈으로 보지도 못할 통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시안 게임에서 선수 300명을 데려다가 먹이고 재우고 한 것이 작은 통일이라는 조정래의 말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자신은 통일과 무관하지만 북한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것이 작은 통일이기 때문에 자꾸 퍼주기를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통일이 된단다. 그러면 퍼주기는 국가에게 맡기고 조정래 자신은 무엇을 하려는가. 글을 쓰고 있겠단다. 북한에게 자꾸 퍼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쓰고 있겠단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황석영이 북한에게 버림을 받았는가를 다시 한 번 새김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황석영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자들, 즉 조정래와 같은 부류들은 북한에서는 쓸모가 없는 반동 부르주아에 불과하다. 저들은 ‘위대한 지도자 동무의 위엄에 눌려 무서워서 북한에 퍼주기를 해야 한다고 말로만 지껄였던 자들’로 말한다.
뿐만 아니다. 통일을 자신의 사후쯤에 가서 되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내심에는 통일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심이 품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전쟁통일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일면 무척이나 북한을 측은히 여기고 남한에 대해서는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본질로 들어가면 다르다. 조정래는 남한에서 이룬 베스트셀러작가라는 명예와 분단조국의 상처를 모질게 후벼 파서 이룩한 부를 지키며 누리고 싶을 뿐이다.
8) 조정래의 문학 위기론에 대한 항변
"(그런 시각에)동의하지 않아요. 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지난 60~70년 간 수없이 나왔습니다. 라디오, 영화, 흑백TV, 컬러TV, 컴퓨터ㆍ인터넷이 나올 때마다 계속된 얘기예요. 하지만 문학의 위기보다 TV가 나왔을 때 같은 영상매체인 영화의 위기가 더 컸다는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다시 TV를 압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매체는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은 여러 매체를 공유하지 하나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다른 매체의 등장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면서 내용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일궈 왔어요. 18~19세기 문학의 독주시대에 비해 오늘날 독자는 숫자도 많고 계층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60년대만 해도 10만부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100만부가 넘어야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인터넷이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 있지만 언어가 있는 한 문학은 존재할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가가 더욱 정진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지 독자가 없다는 핑계를 대선 안 됩니다."
여기에서 조정래는 자신이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 작가임을 각인시킨다. 자기와 같이 성공한 작가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자랑으로 들린다. 조정래의 글을 읽고 의식화된 청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단조국의 상처를 깊이 쑤셔대며 생살을 도려내며 현 정부가 일제의 잔재이며 심판 받아야 할 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호의호식하고 있단다. 호의호식은 대물림 되고 있고 이들에게 붙은 자들이 정치인이 되어 수족노릇을 하고 있는 소굴이 정부이기 때문에 저항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항이 없는 젊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동해왔다.
조정래, 임헌영이 붙어 있는 박현채 라인은 리영희를 비롯해 김대중과 노무현까지 연결되어 있다. 교수급의 학자들은 학교와 학문으로 좌파들을 양산해 내고 문단에서는 조정래, 임헌영 등이 좌파를 양산해 내고 있다. 김대중 이후의 세상은 좌파들의 천국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좌파들이 학계와 문학계의 상좌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에 한국의 문단은 위기를 넘어 사멸상태까지 내몰렸다. 실제로 대학에서의 인문학과는 상당수가 폐과되었고 현재에도 폐과가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조정래는 작품이 문제이며 작가들의 책임이라고 물타기를 하고 있다. 문단의 실태를 보라. 이데올로기나 상업적인 의도가 없는 순수문학을 하는 순수작가의 경우 경제적 자립도가 제로에 가깝다. 이들에게 있어서 10년 세월이면 다 굶어죽었던지 아니면 아내를 직장에 내보내고 간간이 용돈과 원고지 값을 얻어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안 되면 필을 꺾어 버리고 작가의 길을 떠났다. 그런데도 작가 탓이며 작품 탓인가?
애국심과 조국애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조정래와 같이 분단조국의 상처를 후벼파는 작품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것은 아비의 아랫도리를 들추어 후비는 것이며 어미의 치마를 들추고 치부를 으깨는 짓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조정래는 어린 시절에 미군이 군화발로 방안까지 쳐들어 왔기 때문에 한이 맺혔다고 하지만, 내 부친의 말씀에 의하면 인민군에 부역을 했던 보도연맹자들은 죽창을 들고 죽창의 끝에 지주의 머리를 꿰어 들고 다녔다고 했다. 그 지주의 자식들이 부역했던 자들과 인민군에 대한 원한은 얼마나 되겠는가. 현재 50대 이하의 연령에 속한 작가들은 먼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50 후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민군에 의해 형과 누나를 잃은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이름 앞에서면 가슴에 물기가 촉촉해지는 여린 가슴으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모진 작품을 쓸 수 없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 천성이 모질게 악랄한 자만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조정래가 전투적으로 써내려간 태백산맥을 보면 이것은 김일성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헌사만 없을 뿐, 김일성과 박현채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간파해 낼 수 있다.
9) 조정래의 경제관
"대선관련 비자금은 기업의 돈이 아닙니다. 이 돈은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것이죠. 껌을 만드는 회사라면 부정한 돈을 정치권에 주는 만큼 소비자들의 껌은 얇아지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져 수천억 원이라는 돈이 생기는 거죠. 기업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이런 비자금을 주는 겁니다. 정치인이 요구해서 줬다기보다 자발적으로 주는 경우가 많아요. 기업이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을 때 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되고 부가 제대로 분배되는 사회가 오는 겁니다. 기업을 존중하고 신임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죠. 우리가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기업 활동과 관련해서는 본받을 미덕도 많습니다. 빌 게이츠가 재산의 반을, 조지 소로스도 수입 중 30% 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합니다. 기업인에 대한 존경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건 국가ㆍ기업의 역할 도 있었지만 국민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국민의 노력에 대해 기업의 사회 환원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정경유착'의 반세기 역사는 결코 인간다운 역사가 아닙니다."
열개의 변 중에서 단 하나 이 내용만 제대로 풀이가 되어졌다. 그러나 이 말도 내용을 좀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가 나온다.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것이라는 풀이가 그것이다. 껌의 얇기가 줄어들었다면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 작아진 것이지 노동자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만약 노동자의 몫이 비자금 안에 들어 있다면 마땅히 경영주의 몫도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 노동자의 몫만 거기에 들어 있는가. 월급을 주지 않고 비자금을 만들어 냈다는 말인가?
이 사람의 말과 글은 늘 이런 식이다. 반드시 편을 가른다. 편을 가르고는 약자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약자들을 충동하여 사업가나 정부와 맞서서 싸우게 만든다. 저항논리가 이 사람의 뼈골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통해 저항논리가 튀어 나오게 되어 있다.
10) 조정래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변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도 나왔으니 언젠가는 문학상도 받게 되겠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작품의 번역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독자들에게서 너무 많은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미 노벨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민족작가회에서 6.25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분단문학으로 규정하여 별칭을 붙여 주고 있는 이면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숭상하는 좌파 성향자들의 토양이 있다. 그리고 좌파 정권에서는 이들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은과 조정래의 작품은 선정되지 못했다. 이 문제로 인해 민족문학작가회는 서둘러 간판을 내리고 한국작가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러나 이웃 일본은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냈다.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1994년 이후부터 일본은 경제동물이라는 별명에서 벗어났다. 이에 더하여 일본의 대표적 3대 문화라 할 수 있는 만화, 게임, 스시를 각각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수출했다. 해외에 수출된 문화산업이 견인차가 되어 일본의 10년 동안 이어진 경제침체를 단숨에 끌어 올렸다. 이제 일본은 경제동물이 아니라 문화국민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문화국민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노벨문학상 2회 수상에 있다.
노벨수상자는 1968년과 1994년에 각각 배출되었으며 1968년에 받은 노벨문학상은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Yasunari Kawabata) 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전통적인 일본의 아름다움 속에서 자기의 감성을 닦아 독자적인 문학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6년 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오에 겐자부로의 고향인 산골마을에서 100년 전에 일어난 민란을 소재로 채택하였는데 작가가 유년시절에 고향 마을의 할머니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특히 작품 속에는 조선인을 다룬 내용도 나온다. 마을의 자립을 부르짖으며 조선인 기업가에게 지배를 받아 온 마을의 힘을 결집하여 마을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는 인물을 잘 묘사하여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의 두 개의 작품을 보면 한국의 문단이 노벨문학상과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내용에는 한국 문단의 좌파들이 숭상하고 있는 소위 분단문학 따위의 소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조정래의 작품이 아무리 대작이라고 떠벌려도 해외에서는 좌익사상이 담겨져 있는 조정래의 작품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제부터는 독자들의 몫이다. 한국이 노벨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에게 주목해야 하고 정부는 좌파 작가회와 좌파 문인에게 지원하고 있는 지원금을 돌이켜 순수문학 작가들에게로 돌려야 한다. 수출기업들은 일본이 경제동물이라는 별명을 떼어낸 이유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에 있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한국의 작가들에게 투자개념으로 지원과 배려를 해 준다면 얼마 못가서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 근거는 5000년 역사를 가진 선비문학에서 유전된 한국인의 유전자에서 찾아진다. 한국인은 이야기를 좋아 하는 수다문화가 있으며 이는 세계 최고의 문학성을 타고 났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한 인구가 4800만 명인데 각 개인의 사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남한에 살면서 북한을 찬양하는 친북파가 있는가 하면, 6.25 동란을 일으킨 전범으로 김일성부자를 지목하는 반공주의자들도 있다. 이 경우 친북주의자들은 왜 자신이 친북주의자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 설명에는 역사적, 문화적인 근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마땅하다.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자신의 사상적 근거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어야 주적인 북한을 비호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친북자들은 다만 단군의 자손이며 배달의 민족이기 때문에 한 형제라는 동포애를 주장하는 것으로 근거 제시의 책임에서 빠져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까? 북한이 6.25 동란을 일으켜 적화통일을 획책한 역사적 사건은, 한 핏줄이니 동포애니 등은 나약한 반편들의 우스꽝스런 감상일 뿐이라고 웅변한다. 여기에 북한은 남한의 햇볕정책을 조롱하여 선군정책을 펼치며 결국은 핵실험까지 해치웠다. 그 동안 북한은 남한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지속하면서 팀스피리드 훈련을 계속한다면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언을 해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난 이후, 남한 불바다론은 핵폭탄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전면적인 경고였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북을 주장하는 좌파들은 김정일에 의한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엄연한 역사적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친북과 반공은 사상과 가치관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친북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북한에 거주하면서 친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체적으로 이들의 특징을 보면 남한의 친북주의자들은 주체사상에 오염되어 있는 자들이며 6.25 동란의 역사적 사실마저 부인한다. 반면 북한의 친남자들은 6.25 동란의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자들과 자유를 갈구하는 자들이다.
작가 현기영은 그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제주4.3 사건과 그 이후에 대하여 조명하고 있다. 사건의 결과로 인해 ‘숟가락은 위로 들리고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있다고 말함으로 이 비극이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한다. 물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말해진다. 현 작가는 제주 4.3 사건의 원인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제주의 남로당원들이 무장하고 정부와 맞서 벌인 전투였다는 사실을 비켜간다. 다만 무장폭동을 일으켰던 남로당원들이 열세에 몰려 한라산 속으로 도망하여 암굴 속에 은신하고 있다가 주살 당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남아있던 남로당의 가족들이 경찰과 군부에 의해 연행되고 일부는 남로당원에게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 보복을 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 책에서 폭동을 일으켰던 남로당원들이 경찰과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정부군을 학살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굴속에 숨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힘없고 가련한 동물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들 작가들의 수평을 놓아버린 동정심이 어디에서 출처된 동정심인지를 알고 싶다. 작가의 절친한 친구 혹은 가족이 남로당원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동정심이 유발된 것인지 아니면 주체사상에 당한 것인지를 알고 싶다. 단순히 친북사상을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 문단, 특히 한국의 인문학이 사멸되어 가고 있는 이면에는 좌파들이 문단을 점령하고 난 이후부터 급속히 쇠락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가치를 조명해 주는 학문이기 때문에 좌익 혹은 우익으로 편향될 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개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주의 색채를 띈 작품이 나오게 되어 있다. 1990년까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했고 공동체 지상주의를 지향하며 공평한 세상을 펼칠 때에 유토피아를 이루는 것으로 찬양했다. 구라파의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던 카톨릭 문화나 기독교 문화는 거부당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공산주의 사상으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가치를 부여해왔다. 결국1991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에 공산주의가 멸망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규명된 원인은 인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공산주의 체제로 억압하며 제한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제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유경쟁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학습하고 있다. 세계 시장과 자국에서 살아남는 노하우를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 중에 많은 여성들은 과거 일본과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외국 여성들의 경우 대개가 공산주의를 했던 국가 출신자들이다. 한국과 일본은 전쟁에 패한 패전국이었다는 원인이 있었으나 이들 공산국가들은 스스로 몰락했다. 내전을 통해 공산화 되고 난 이후 세계 시장에서 외면을 당한 결과이다.
세계는 공산주의를 하면 멸망당한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는데 한국에서는 2대에 걸쳐 친북대통령이 권좌에 앉는 것을 시작으로 공산주의자들과 친북자들이 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 좌파들이 한국의 각계각층을 점령한 결과 좌파적 성향자들이 개혁적 인물이라는 이름으로 우대를 받은 반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 그들의 작품은 냉대를 받고 사멸 위기까지 내 몰렸다.
이제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좌우 수평을 맞추어 주는 일이며,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가치를 되찾아 주는 일이다. 인문학을 부흥시키는 것은 물론이며 좌파 성향자들에 의해 눌려 있던 각계각층의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여 제자리를 찾아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은 너무 길었다. 이미 좌파 세상의 10년 세월 동안에 유능한 보수주의 인물들은 10년이라는 세월을 분루를 흘리며 보내야 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김정일의 식탁을 배불려 주는 일이라면 세금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의 철학의 대가로 엄청난 과태료 부담만 짊어지고 말았다. 친북좌파 세상에서 잃어버린 10년 세월은 어떻게 보상해 주어야 하나? 잃어버린 10년 세월을 뒤로 돌려주어야 한다. 공직 진출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보수주의자 인재를 골고루 등용을 해 주어야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밝히는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이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밝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 사상을 외롭게 지켜낸 분들의 잃어버린 10년 세월에 대한 보상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상해 주어야 한다.
[조정래의 맥놀이 사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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