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맥놀이 사상

조정래의 맥놀이 사상

도제조 안형식 2009. 6. 30. 23:14

조정래의 맥놀이 사상


서론


조정래의 맥놀이 사상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에 조정래의 사상의 줄기가 빨치산 출신인 박현채와 연결되어 있으며 간첩 출신의 임헌영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내면을 들여다보니 박현채를 숭모하는 임헌영이 박현채에게 조직을 만들어 주었고 조정래는 이들을 대변해 주는 형태였다.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니 그 이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까지 나오게 되니 대략적인 사상적 지도가 만들어졌다. 대략적인 사상적 지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사상적 계보의 줄기가 어떻게 퍼져 나간 것이며 그 연결고리의 핵심은 누구인가가 궁금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궤적을 염두에 두고 근현대사를 파고 들어가 보면서 연결고리를 찾는 일에 열중했다. 역사는 중대한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중대한 사건에는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고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연결고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 특히 사상문제에 관한한 주인공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는 선후배 관계의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기 보다는 사상과 뜻이 맞는 사람들로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결되어 있는 연결고리는 광주를 중심한 전라도라는 지역색깔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연결고리는 대체 어떤 줄기로 뻗어나간 것일까.


줄기는 3개의 줄기로 뻗어나가며 넝쿨을 뻗쳤다. 김대중을 중심한 정계, 박현채를 중심한 경제 및 학계, 임헌영과 조정래를 중심한 문학계로 구분되는 3개의 줄기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뻗어나간 줄기는 친북세력의 갈래를 서로 연결해 주는 중요한 고리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 고리가 뜻밖에도 박현채의 추모사에서 찾아졌다. 그것은 조정래가 박현채를 태백산맥의 주인공으로 차입하는 과정의 배경에서 튀어 나온 몇 가지의 정보였다. 이 정보에서 김대중,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가 말하고 있는 "민족론"과 "평화론"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들은 민족론을 말하면서 그 근거를 1929년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 두고 있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광주학생운동은 민족론의 뿌리이며,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며, 친북사상의 발전으로서의 중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광주학생운동이 어떻게 좌파의 온상이며 뿌리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김대중의 궤적과 무관치 않다. 김대중의 궤적을 살펴보면 평화은행, 평화방송, 천주교 정의실천사제단, 문익환 목사, 박현채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연결되어 있는 좌파사상의 고리가 발견된다. 이들 각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개인은 그들이 속해 있는 사상적 노선이 맞는 단체와 연결되어져 있고 내밀한 인맥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고리는 현재 수많은 세포분열을 일으켜 마치 줄기세포를 입증할 검증물인 테마토마 전단계인 콜로이 상태까지 분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의 출발과 좌파운동의 전력을 살펴보자. 


김대중은 일제시대, 작문에 능하여 담임교사에게 추천되어 총독의 상을 받고 고등학교 전액 장학생으로 1943년에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도요타 다이주로 창씨개명을 하고는 총독에게 받은 상을 근거로 목포해운에 취업했다. 1945년 8.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이 되자, 입사한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은 김대중에게 사장은 회사를 맡기고 떠났는데 김대중은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일약 목포의 3대 재벌이 되었다. 이어 목포신문사를 운영하고 1954년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낙선 이후, 해운회사를 처분하고 서울에 상경한 김대중은 잡지 《태양》을 발행하면서 웅변학원을 운영했고, 1955년 10월에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사상계》에 노동문제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정계진출의 꿈을 키웠다. 


정치에 뜻을 둔 김대중은 광주학생운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정의하고, 동학과 연결시켰다. 동학을 혁명으로 정의하고 동학의 조직적 체계를 벤치마킹하여 자신의 정치적 사조직을 민주화 운동이며 동학 혁명사상에 뿌리를 둔 것으로 포장했다. 그리하여 동학판 민주화 운동의 녹두장군이 되어 뜻을 같이 하는 무리들을 이끌고 민주화 운동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김대중과 정치적 혹은 이념적으로 뜻을 같이 하는 무리들이 도매금으로 민주화 인사가 되었다.


김대중은 노무현 정권 시절에 와서야 자신의 숙원이었던 내란음모죄 전력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었다. 20여년 만에 무죄 선고(2004.01.29)를 받아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대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져 있는 김일성 부자에 대한 찬양과 국정원을 동원하여 5억 달러를 바치고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사건은 역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다. 북한은 그 돈으로 핵무장을 했고 김대중은 이를 근거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박현채와 강정구, 조정래 등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남발하며 김일성을 대변해 주고 있었으나 제한하지 않았다. 겨우 검찰에서 송두율을 기소했으나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천정배는 소위 강정구 사건 (육이오는  통일전쟁 운운) 관련하여 검찰에 헌법과 법률의 규정을 강조하며 불구속 처리하라고 지휘를 내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를 불러 왔다.


1980년대 당시, 조정래가 민족작가라는 보호막 속에서 펼치고 있는 조정래의 맥놀이 사상이 가져올 파괴력의 정도에 대해 예견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대한 파괴와 전통적인 가치관의 붕괴와 인문학의 사멸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라는 직관도 없었다. 사상에 대한 논리와 이론도 아직 여물지 못한 시기였기에 김대중이 이끄는 민주화 운동이 지식이며 마치 애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었다.   


방치하고 있는 사이에 이들 좌파 문인들은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치고 나가며 부쩍 커져 버렸고 결국 좌파 정권을 수립하는 사태까지 만들어냈다. 20년 전 5.18 사태가 벌어지고 난 뒤에 탄력을 받은 민주화 운동은 10년 후에 좌파 정권 10년의 세월을 탄생시켰다. 탄생된 좌파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노조로 연결시켜 교수노조까지 탄생시켰다. 5.18을 성역화 시켜 주었으며 좌파들에 대한 사상 세탁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이 일에 앞장을 선 학자들은 서울대와 동국대 그리고 성공회대 출신의 교수들이었다. 심지어 간첩출신의 한낱 과거사진상조사위원이 현역 육군대장을 문초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소위 보수주의자들은 두 눈을 멀쩡히 뜨고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현재 친북 좌파들은 빨치산 출신의 박현채 전집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에 있다. 그 이유는 친북좌파들의 결집에 있다. 박현채의 이름과 사상을 널리 전파하여 더 많은 친북좌파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박현채는 마르크스의 경제논리를 민족자급경제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위장을 시켰다. 마르크스의 경제논리는 1991년 끝장이 난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현채의 경제논리가 끝장이 나지 않은 이유는 현재 북한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좌파 정권이 북한의 김정일을 먹여 살리면서 박현채의 민족자급경제의 논리를 근거로 채택했다. 여기에서 햇볕정책이 나왔고 대북포용정책이 나왔다.


이제 이들은 박현채 전집을 발간하는 것으로 친북좌파들의 명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멸망하여 존재자체가 없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경제론이 박현채 추종자들에 의해 부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오염된 혁명전사들로 인해 세계역사 이래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발생했다. 박현채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혁명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던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10대에 스스로 빨치산에 입대하여 조국과 민족을 향해 총을 겨누고 쏘았던 자이다. 한국의 역사상 가장 악랄한 이적자 중의 한 명이다. 이런 자를 추종하고 있는 세력들이야 말로 친일자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다.


공산주의의 경제론은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공동체주의이다. 이들은 자본 경제를 탐욕에 의한 악한 경제이며 착취세력들인 지주로 보고 이들이 축적한 재산과 자본에는 자신들의 땀과 피가 들어 있음으로 그것을 빼앗아 공평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것이 혁명과업이며, 이들이 내놓지 않음으로 무력으로 제압을 해서 빼앗자고 하는 것이 혁명이론이다. 공산주의의 혁명이론에 도취된 공산주의 독재자들로 인해 동족 간에 자행된 학살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의 수는 세계2차 대전으로 인해 희생된 전체 희생자의 숫자 보다 더 많다. 


2차 대전 중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것이 역사상 가장 참혹한 기록으로 남아 있기는 하나, 공산주의로 인한 학살은 그보다 더 많다. 예를 들면, 소련의 스탈린이 2000만 명을 학살한 것과 캄보디아의 폴포트가 당시 인구의 1/3인 200만 명을 학살한 것 등이다. 중국의 모택동은 무려 7700만 명을 학살했다.


특히 폴포트는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 공무원, 교수,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은 무조건 처형했다. 크메르 루주는 총알을 아끼기 위해 사람들을 구덩이에 생매장 시키고 우물에 넣기도 했다. 국제경기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운동선수 2천 명도 학살당했다. 크메르 루주에 의해 캄보디아의 중산층, 상류층 지식인 층은 대부분 살해됐고, 수많은 양민들이 농업과 건설 현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특히 캄보디아 내 800명의 의사 중 760명, 그리고 545명의 판사 중 541명이 살해될 정도로 크메르 루즈의 지식인 혐오증은 극한을 치달았다. 이때의 대학살로 캄보디아는 국가 기반이 궤멸됐고, 이때의 상태에서 회복되기 위해 캄보디아는 여러 세대를 인내해야 했다.


중국의 모택동에 의해 학살된 중국인의 숫자는 7700만 명에 달한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정치과학자인 럼멜(R. J. Rummel)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 모택동(Mao Tse-Tung) 공포 정권 하에서 살해된 사람의 수는 7700만 명 이상이었다고 World Net Daily는 보도하였다. 럼멜은 초기에 이 수치의 반 정도인 3800만 명으로 평가했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로서 기네스 북에 오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고의적인 살인은 중국의 수천만의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게 했던 정책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히틀러(Hitler)와 스탈린(Stalin)이 살해한 숫자를 넘어 선다는 것이다. 모택동 정권 하의 데모사이드(democide, 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시민학살)는 1,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1900년부터 1987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들에서 죽은 전사자들의 두 배를 넘는 수치이다. 20 세기에 세계 각 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1억7400만 명의 희생자들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자 정권(Marxist regimes) 하에서 죽은 사람들의 수는 1억4800만 명이었다. 이것은 전쟁으로 죽은 3410만 명의 4배에 해당한다. 


북한의 김일성이 남침하여 벌인 6.25 사변을 통해 남북한 합쳐 522만 명이 희생되었다. 1950년 당시 북한지역 인구는 1200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그 가운데 1/4 정도가 북한을 떠나 월남하였다. 남한의 인구는 1949년 정부에 의해 실시된 전국인구조사에서 남한인구 2천16만6천758명으로 집계되었다. 남한의 인적 손실은 모두 230만여 명에 달하였고, 북한의 인적 손실은 292만여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야후 백과사전)


만약 6.25 전쟁에서 남한이 패하고 북한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적어도 피의 숙청으로 인해 500만 명 이상은 학살을 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캄보디아를 비롯해 라오스, 베트남 등 공산화된 이후의 전례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월간 조선의 편집장인 조갑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부모 세대가 가장 아름다운 반면, 대한민국에 감사하지 않고, 700만 학살자 김정일을 미워하지 않고, 애완견이 죽으면 눈물을 흘려도, 오늘도 굶어죽고 맞아죽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해선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극우니, 수구꼴통이나 하고 빈정대는 그런 사람들이 가장 추하다"라고 주례사를 통해 말했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위험한 악의 덩어리로 보는 이유는 위의 학살당한 학살자의 수치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그렇다면 현재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간첩이나 이들의 숙주가 되어 있는 친북좌파들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적화통일을 이뤄 김정일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종목표이다. 이 말은 남한인 1/5을 학살하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동안 조정래의 문학에 대해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덮어 두고 있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 보면 내 작품을 써내는 일이 중요하지 잘 나가고 있는 조정래의 문학을 비판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자 명단사전을 발간한다는 소식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하고 6.25사변에서 전공을 세운 무공자들까지 친일자로 몰아 한꺼번에 무찔러 버리는 데에는 분노와 함께 정의감이 되살아났다. 마치 민중들 앞에서 처형 전에 인민재판을 하듯 심판자로 심판대에 서 있는 임헌영과 조정래를 보고 있자니 착잡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이들은 역사와 시대 앞에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어야 했다.


비판 작업에 들어가기 전 조정래의 문학을 살펴보았다. 각 출판사에 소개되어 있는 조정래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서이다. 그런데 조정래의 작품에 매달려 있는 리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학생도 있었고 주부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처형해야 마땅한 독재자로 증오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군은 오랑캐로 북한인민군은 해방 전사로까지 묘사되어 있는 리뷰의 글들을 보고 참아낼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연구를 하는 중에 조정래가 뿌려 놓은 사상의 독, 친북의 독,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는 독을 발견하고 나서 비판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간단하게 논문 정도의 분량으로 처리하여 월간지에 특집으로 내는 정도로 가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박현채 전집이 출간되고 있고 임헌영은 평론을 조정래는 소설을 통제하는 위치까지 부상하여 대한민국의 문단이 이들의 수중에 떨어지기 일보직전까지 와 있다는 현실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먼저는 조정래요,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임헌영이요, 다음은 박현채이다.


친북좌파의 문학적 사상에 대한 궤적


“인간의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스러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진정한 문학, 참된 문학은 역사를 변혁시키고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남은 생애를 살고자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고는 했다. 당신은 사상적으로 성분적으로 무슨 주의자냐고. 굳이 그렇게 분류하고 싶다면, 정의와 진실을 실현시키고자 하니까 진보주의자고, 민족적 자존을 지키고자 하니까 민족주의자고, 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 없이 예술 창작을 하고자 하니까 자유주의자이다. 그러나 이런 분류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문학을 섬기며 남은 생애를 흠 없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서러운 역사의 땅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며 글을 쓰다가 갈 예술가일 뿐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소설을 쓸 것이다.”(조정래)


조정래 작가는 그가 추앙하던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도했을 때에 필을 꺾었어야 했다. "한강”이라는 작품을 내 놓고 자신의 작품으로 분단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따위의 말로 필을 꺾지 않은 이유를 정당화시키려는 시도는 구접스러울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장을 받으며 친북을 주장한 세분의 위대한 친북작가들(조정래, 임헌영, 황석영)은 1991년 공산주의의 쇠망과 더불어 필을 놓아야 했다. 이들이 분단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치 시대를 구원해 주는 구원자처럼 존경받으며 신춘문예공모를 비롯한 권위 있는 공모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 한국의 인문학은 사멸위기까지 내어 몰리고 말았다. 결국 이 말은 문단의 지도자격으로 부상한 이들 3인에 의해 한국의 문단과 인문학이 사멸되었다는 뜻이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한국 문단의 이단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소위 분단문학작품을 팔아 부르주아가 된 위대한 독설가인 조정래 작가는 한국 인문학의 사멸 원인의 첫 번째 원인자이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단행하고 난 뒤에 조정래 작가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평양으로 간 300인 중에 한국 문인의 대표격으로 참석했다. 김정일에 의해 사상과 출신성분까지 일일이 분석되어 O.K 싸인을 받아야만 참석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조정래 작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위에서 분단문학을 팔아 치부하고 남북정상회담에 참석까지 했던 확실한 친북주의자의면서도 마치 시대를 대변한 숭고한 문학가로 대한민국에 이름을 남기려 한다.


나는 대한민국 전체를 기만하고 한국 문단의 작가들을 우롱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를 비판하고 끊어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가지고 있다. 조정래 작가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남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친북주의자가 되어 있는가. 또 한국의 모든 민주화 운동에는 북한의 김정일을 추종하는 불온세력들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진 마당에 마치 자신의 작품이 민주화 운동의 초석이라도 된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의 행보는 도무지 참아낼 수가 없다. 이에 조정래의 사상을 분석 비판하고 친일파 명단을 임의 선정하여 “박정희 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와 민족작가회(현 한국작가회로 변신)에 조정래가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면밀히 추적하여 비판하려고 한다.


먼저는 조정래의 사상분석을 통해 조정래의 사상이 어디에서 출처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는 조정래의 작품에 함의되고 있는 조정래의 정신에 대해 분석하여 특정화 할 예정이다. 그 다음으로는 조정래의 사상과 정신이 한국 문단과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집중 조명하고 석의하여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할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