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맥놀이 사상

제2장 거룩한 심판자, 조정래

도제조 안형식 2009. 8. 15. 12:39

제2장 거룩한 심판자, 조정래

(조정래의 작품에 담겨 있는 불온사상에 대한 비평)


조정래는 친일자들에 대한 심판과 독재자에 대한 심판에 지번을 두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오만한 심판자로 등장한다. 조정래에 의하면 친일자는 역적이다. 그는 6.25 사변의 발생을 친일과거사를 정돈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부득이한 전쟁으로 묘사한다. 태백산맥을 통해 등장하는 북한의 인민군은 오히려 친일과거사를 정돈해 주기 위해 나타난 해방 전사들이며 이들과 맞서서 싸운 국방군은 무능한 독재자 이승만의 졸개들로 묘사된다. 미군은 한국인을 능멸하며 만행도 서슴지 않는 잔악한 오랑캐로 등장한다. 조정래에 의하면 미군은 강간도 서슴지 않는 털북숭이 짐승들이며 하체가 큰 동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조정래는 남한체제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태백산맥을 통해 염상구와 염상진을 대조하여 우회적으로 부정할 뿐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이유는 박현채가 김경추(가명)에게 써 주었던  “세 단계의 싸움에 주는 격문”을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정면으로 부딪치지 말고 지혜롭게 지하로 숨어 들어 때가 될 때까지 공작하라는 명령이다. 조정래는 박현채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 김경추는 이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감추어 두었다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비로소 꺼냈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정래 임헌영 박현채 김대중이 하나의 라인이며 김정일 찬양자라는 점이 선명해진다. 


조정래는 자신의 작품인 태백산맥을 통해 6.25 전쟁사에서 미군이 얼마나 잔학하게 한국인을 학살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신랄하게 비난한다. 남의 전쟁에 개입하여 죄 없는 국민을 학살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강정구의 맥아더 장군 동상 끌어 내리기와 한홍구의 김일성 찬양이나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찬양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으로 가지고 적국인 북한을 찬양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급이단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박정희 대통령 죽이기”에 몰두되어 있으며 그 맥락의 최고봉은 노무현이며 그 이상은 김대중이다.


1. 거룩한 심판자


대한민국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남한사상이냐 북한사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채로 태어난다. 응애 하고 울 겨를도 없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사상의 자유 중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이냐 북한적 공산주의를 선택할 것이냐를 종용 받는다. 남한의 헌법에 의하면 사상의 선택권이 있고 북한의 헌법에 의하면 사상의 선택권이 없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태어나는 어린이는 북한적 공산주의자로 탄생하고 남한에서 태어나는 어린아이들은 사상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이 성장하여 각각 피아간으로 휴전선에서 대치할 때 전투력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선택의 자유가 있는 쪽과 선택의 자유가 없는 쪽의 사상적 정신적 전투력의 차이는 따져 볼 필요조차 없다. 여기에 대고 강정구, 한홍구, 홍세화, 박노자가 말하는 병영자유와 모병제 운운은, 대한민국이 무장해제를 하고 그대로 김정일에게 항복하고 한국을 바치자는 말과 동일하다.   


사상은 생각의 틀이다. 때문에 사상으로 굳어지면 거기에서 나오는 생각도 동일한 생각만 나온다. 이는 발상의 차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사상의 문제는 창의력 더 나아가 창조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유민주주의의 발상은 시장경제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경쟁에서의 우월을 점하기 위한 창의성과 창조력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공산주의 원리에서는 충성도와 사상이 중요한 평가 대상이며 창의성과 창조력은 경계대상이다. 따라서 발상의 차이는 양 체제에서 차원을 달리하여 나타난다. 


사상과 충성도로 통치를 했던 구소련은 충성도에 따른 보상을 해 줄 수 없는 처지에 떨어지자 그대로 멸망하고 말았다. 경제적 파탄에 의한 멸망이다. 사상이나 충성도가 돈을 벌어 주지 못하더라는 결론을 남기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상이 돈이 되고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도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친북작가들은 떼돈을 벌었고 순수작가들은 거지가 되었다. 북한은 남한에 대하여 오기와 땡깡을 부리면 자동적으로 돈이 들어온다. 이것 때문에 공산주의의 맹주인 소련은 무너졌어도 공산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한 북한은 무너지지 않고 배겨낼 수 있었다. 오직 한국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요상하고 흉측하기 이를 데 없는 현상이다.


이로 볼 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사상에 대하여 무식한 자들이 많이 있으며 공산주의를 지식의 하나로 알고 있는 무지한 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을 동포로 여기고 있는 감상주의자들의 어이없는 감상도 한몫을 하고 있다. 박현채의 책을 자신의 책으로 출판한 김대중과 같은 사기꾼이 아직까지도 대우를 받고 있는 터에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는가.


김대중과 김대중 라인에 있는 친북자들이 민주화 운동을 운운하는 것은 친북사상을 민주화 운동으로 위장한 것에 불과할 뿐, 친북과 민주화 운동과는 관련성이 없으며 본질이 다르다. 촛불시위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촛불시위의 성격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시위로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광우병대책위원회라는 것이 간섭하게 되면서 반미와 미군철수, 국보법 폐지 운동자인 한상열, 오종렬이 개입했다. 한상열과 오종렬 만이 아니다. 이들이 있는 현장에는 이들과 뜻을 같이 하는 승려들이 항상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시위가 직업인 전문 시위꾼들이다. 이들이 개입하면 반드시 판이 커지고 종래에는 분신자가 나오며 폭력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들이다. 국가의 역사적 비극인 "분단"을 근거로 시위를 벌여 먹고 사는 자들이 있으니 이상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현재 남한 내에서 활동하는 친북자들은 대개 이런 전형으로 먹고 산다.


진정 이들이 남북통일을 원하는 자들일까? 그렇다면 어떤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가? 연방제 통일과 같은 정치적 통일인가, 아니면 경제에 의한 흡수 통일인가, 국민에 의한 문화적 통일인가? 과연 이들이 추구한다는 통일의 정체는 무엇인가? 또  이들이 시위를 주도해서 먹고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생활비를 대주는 자들은 누구일까?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1) 성향과 사상의 연관성


사상은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은 자신의 정체성인 가치관과 생각에 따라 사물에 접근하는 시각에서 편향성을 가지게 되어 있다. 이 편향성이 성향이다. 사상으로 발전되기 전의 성향은 좌우 이념에 대한 친밀도를 가지게 되어 있으며 친밀도에 따라 방향타를 갖게 된다. 이 방향에 따라 사상이 결정된다. 


비판적인 성향은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문제의식이 발생하면 답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에 사상적인 좌우 구분 없이 공산주의 사상의 독이 들어 있는 서적 등을 탐독할 경우 공산주의 이념을 답으로 채택하여 공산주의로 가게 되어 있다. 반대로 포지티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낙관적으로 보게 되어 있고 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식조차 발생하지 않는다.


사상은 대상자의 접근하는 시각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근본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로 분류된다. 여기에도 상, 중, 하 라는 격이 있다. 하 질은 회색분자이며 중도를 표방하는데, 자신의 목적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 수있는 박쥐와 같은 경계인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사상을 분류하는 통상적인 분류방식에서 한참 벗어난다.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단순논리로 아군이냐 적군이냐 둘 중의 하나로만 분류하게 되어 있다. 북한 공산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북한에 의하면 남한은 주적이고 미군은 주적에 대한 연합군이기 때문에 동등한 주적이다. 따라서 현재 남한의 친북자들이 말하고 있는 동포애란, 감상일 뿐이며 현실이 아닌 이상에 불과하다. 


저들은 남과 북이 갈라지기 이전, 형제들에게 총을 쏘며 탱크로 짓밟으며 도발해 왔다. 북괴군에 점령당한 곳의 지주들은 친일파라는 죄목을 붙여 처형당했고 재산은 몰수당했다. 곧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친일파라는 죄목을 붙여 처형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몰수한 재산을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는 일에 투입했고 김일성 부자는 바쳐진 재물로 호의호식해 왔다. 곧 김일성이 도발한6.25 전쟁은 해방이나 친일파 청산이라는 말을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적으로는 김일성이 남북한을 통치하여 제왕으로 군림하기 위해 도발한 전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뜻이다. 힘이 없고 나약한 국민들과 김일성의 추종세력들은 총과 대포를 앞세운 김일성에게 농락과 능욕을 당하며 죽어갔을 뿐이다. 공산주의를 찬양한 자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기름과 피를 짜서 김일성 부자에게 바치고 죽을 때는 김일성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등신 중의 상등신일 뿐이다.


단언 하건데 대한민국의 역사 상, 김일성 부자 보다 더 호의호식하고 절대 권력을 누린 독재자는 없었다. 김일성 부자에게 충성하면 충성도와 업적에 따라 영웅이라는 칭호와 함께 즉시 보상이 따랐다. 북한 공산당은 이를 대대적으로 호도하며 충성심을 유발시켰다.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심이 입증되면 남북한을 따지지 않고 남녀노유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여 선전물로 삼았다. 김일성 부자는 당 간부에 대해 최고로 대우해 주며 충성꾼으로 만들어 놓고 이들을 통해 통치해 왔다. 불평자는 즉시 숙청시켰다.


2) 자유민주주의의 이단자 조정래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김일성 부자를 향한 변함없는 충성과 찬양을 목적하고 쓰여진 작품이다. 여기에서 그는 두 갈래로 접근한다. 한 가지는 친일파 숙청이며 다른 한 가지는 박정희 숙청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은 김일성 부자가 가지고 있었던 목적과 일치하며 동시에 박현채의 목적이기도 했다. 조정래는 스스로에게 사명감을 부여하고 김일성 부자와 박현채를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중에 임헌영을 통해 박현채에게 소개되었다. 박현채를 만난 조정래는 박현채를 태백산맥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임헌영이 조정래를 박현채에게 소개해 주기 전에 임헌영과 박현채는 사전 교감이 있었고 조정래의 사상을 확인하고 난 연후에 박현채가 조정래의 방문을 수락했다. 이후부터 조정래의 지리산 산행에 박현채가 동행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태백산맥 2권에 등장하는 소년 빨치산 문화부장 조원제는 박현채를 모델로 한 것으로 조정래는 박현채의 동의를 얻어 실명 사용을 원했으나 박현채의 만류로 조원제라는 이름으로 치환시켰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집필 중 이 대목이 가장 힘들었노라고 했다. (조정래, 박현채 추모집, "아 박현채", 박현채 추모집) 


조정래가 수집한 자료들은 한결같이 미군과 국군이 전쟁시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에 대한 자료들과 빨치산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자료 일색이다. 태백산맥에는 단 한 건도 미군과 국군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죽어갔으며 얼만큼 희생했는가가 나오지 않는다. 취합된 자료들은 조정래의 목적에 따라 이리 저리 편집되고 조율되어 마치 역사적 자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


역사적 자료가 말하고 증명된 사료들이 증거해 주고 있는데 그 이상 뭐가 필요하냐 라는 태도로 그는 빨치산을 영웅으로 그려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자신의 목적은 발속에 감추고 마치 그 자료들이 말하고 있는 듯 위장했다. 그 양태가 이솝우화에 나오는 밀가루 칠한 늑대와 같다.   


미국에도 조정래와 똑 같은 문제아가 있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 덴 브라운이다. 덴 브라운은 기독교를 죽이기 위해 1년 동안 1만 5000개의 자료를 수집하고 2년 동안 공들여 “다빈치 코드”를 써 냈다. 가장 효과적으로 기독교를 죽이기 위해 공들여 썼다는 이야기이다. 덴 브라운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근저를 죽이기 위해 그 작품을 썼다. 그것은 미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문제를 일으켜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한 상업적 목적까지 가미가 된 작품이다. 이로써 덴 브라운은 미국의 이단자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많은 자료의 양을 자랑하며, 많은 자료를 사용하여 썼다는 것을 자랑처럼 떠벌리고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창작이 아니다. 창작물은 말 그대로 창작하는 것이다. 남의 책이나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하여 자신의 말로 꾸민 것은 의도가 있는 편집이지 창작이 아니라는 뜻이다.


조정래는 대한민국의 이단이다. 친북사상을 위장하기 위해 민족을 말하고 있으나 황석영의 경우와 같이 북한에서도 결코 환영을 받을 수 없는 북한의 이단자이며 동시에 남한의 이단자이다. 소설가에 대한 남한의 인식은 배고프면서도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나, 북한에서의 인식은 등 따시고 배부른 부르주아의 글 나부랭이쯤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북한의 어휘와 의미는 남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와 의미와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남북한의 용어가 서로 다른 이유는 북한의 문학이 죽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북한의 언어가 살벌하며 유려하지 못하고 선동적인 구호성의 언어로 변질된 것은 북한의 문학이 김일성 부자의 체제변호와 체제선전용으로 전용되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의 인민이 김일성 부자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뜻과도 함께 간다. 문학의 지평은 그 시대를 그대로 비쳐 주는 거울과 같아서 문학이 죽었다면 국민의 정신이 죽었다는 뜻과 같다. 북한의 정신은 죽었다. 


남한에서도 현재의 북한과 같이 문학이 죽었던 때가 있었다. 일제치하이다. 일제치하에서 문인들이 동원되어 징용과 징집을 선동한 때가 있었다. 선동하지 않으면 징용하겠다고 하는 데야 어쩔 도리가 있는가.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는데 일단 살고 보자 할 수밖에 더 있었겠나.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이것을 가지고 왈가불가 할 이유는 없다. 이야기 해 봐야 서로가 누추해지고 비참해지는 이야기이다.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겨 노예와 다름없는 식민이 되었는데 어쩔 것인가. 전쟁에서 졌으면 장수들은 처형을 당하고 국민들은 전리품이 되어 노예가 된다. 노예가 어찌 사람인가. 그것을 들추는 인간들이 불쌍할 뿐이다. 무슨 목적으로 그리하는지 모르나 애비의 치부를 들춰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조상의 치부가 보이면 그것을 가려 주는 것이 예의이다. 고개를 돌려 안 보는 것은 보통사람이며, 깜짝 놀라 담요로 가려주는 것은 선한사람이며, 그것을 보고 깔깔거리는 것은 누추한 자이다.


김일성이 친일파를 숙청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친일파 숙청을 명분으로 남한을 침략하기 위한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과거 일본이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내달라는말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자신의 계획 대로 6.25 사변을 일으켜 남침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패배에 가까운 휴전을 하고 말았다. 김일성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전 후에도 친일파를 악랄하게 숙청해야 한다는 말을 거듭 주창해야 했다. 이렇듯 동족상잔의 원흉이며 패배자에 불과한 김일성의 누추함이 역사에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친북주의자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대체 알 길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겨우 친북주의자인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 등이 작품 속에 풀어 놓은 사상의 독에 당한 것이 문제 아닌가. 그것도 제 돈으로 그 책들을 사서 읽고 당한 것이라면 얼마나 억울한가. 또 이렇게 당해서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친북을 외치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는 자들 또한 억울하고 괴롭고 슬프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다. 겨우 박현채 같은 빨치산과 임헌영 같은 간첩 전력자들 몇과 또 이들에게 녹아져 있는 조정래, 황석영, 박노자, 한홍구 같은 친북주의자 몇의 논리에 맞지 않는 글에 맥도 못 추고 정신과 사상과 영혼을 강도 당해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노무현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이 뼈가 시리게 아프다. 어쩌면 이토록 좌우 수평의 구별조차 못하고 있는 것인가.


친북좌파들이 지식으로 포장하고 있는 모든 글은 사상의 독에 불과하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내 조국이 비리 집단의 온상이며 사악한 친일자들의 독무대이며 현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근로가 저들의 배만 불려 주는 헛된 일로 느껴진다. 이에 더하여 공산주의야 말로 근로자를 위한 것이며 공산주의를 하는 것이 진리라고 믿어진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를 하고 있는 북한이 위대해 보이고 북한이 가난한 것은 진리를 위해 치루는 거룩한 희생이라고까지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김일성 부자가 위대해 보인다. 그런 북한과 김일성 부자와 맞선 박정희와 반공정권은 오직 독재정권이며 자신들의 배만 잔뜩 불리고 처세술에 능한 카멜레온과 같은 친일자들을 돕는 정권으로 인식하게 되어 있다. 문제의 시각에서 문제의 사상이 나오고 문제의 사상에서 확 뒤집어 엎어버리자는 혁명이론이 나온다.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 박노자, 한홍구의 글을 읽고 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일이 이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 박노자, 한홍구의 책에 대해 정상적으로 비판을 한 책이나 글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간신히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비판한 글을 읽어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것도 월간조선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조갑제 등 보수주의의 원단이라고 인정받는 필봉들은 저들의 책이나 글 속에 들어 있는 사상의 독을 분석해 내고 비판하기 보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욕하는 자는 빨간 놈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렇게 갈 일이 아니다.


모든 책에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풀어 놓은 사상이 들어 있다. 그 사상이 독인지 약인지를 분별해 내고 그것이 독이라면 집중적으로 비판해서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혀주고 널리 알려 경계하고 끊어내 주어야 한다. 그런 작업은 기자의 본성으로 접근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사상가들이 해 주어야 할 일이며 아야 소리도 하지 못하도록 바른 잣대(canon)를 들이대고 정확히 측정하여 판단해 주고 그것을 근거로 끊어내야 한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문단에는 이런 작업이 없었다. 이런 작업은 전문가에게 있어서는 간단한 작업이다. 이단연구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문단에서 사상적 이단자인 친북자들이 대작을 내놓고 문단을 접수할 수 있었던 원인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써내지 못하는 대작이라는 이유 때문에 찬사에 급급했을 뿐, 그 대작이라는 작품에 배설되어 있는 사상의 독을 분석해 내고 비판해 내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먹고 살기에 급급한 가난한 선후배로 형성되어 있는 문단의 특성상 왕따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심을 잃을 일을 할 돈키호테가 어디에 있겠는가. 장편소설 한 권을 내놓는 작업에도 몇 년씩 걸리는 판국에 한꺼번에 수십권의 대작을 내 놓은 문단 선배의 작품에는 기가 질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문단 스스로에서 사상의 독을 분별해 주지 못하는 동안, 친북세력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하고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대작들을 읽어야 한다는 통념을 세웠다.


이 통념은 바벨탑과 같아서 사방 천리에서도 보이는 높은 탑으로 그 탑의 맨 위에는 김일성의 동상에 세워져 있으나 아래에서 위로 올려 보는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그 탑 이상이거나 수평이 맞을 정도는 되어야 보인다. 그렇다면 조정래 등이 쌓아 올린 바벨탑의 김일성 동상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정도의 식견을 가진 지식인이 대한민국 안에는 없다는 뜻인가? 그래서 송두율, 강정구, 박노자, 한홍구 등이 대학을 유린하고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 황석영 등이 문단을 유린하고 김대중, 노무현이 청와대를 유린하고 임동원, 정동영, 이종석, 이재정 등이 통일부를 유린하도록 방치된 것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일제치하에서 36년간 죽을 고생을 했고 김일성의 6.25 남침으로 450만 명의 국민이 죽었고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을 발생시키면서까지 피로 지킨 대한민국이 아닌가.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한 좌파 역적 김대중의 공작으로부터 불과 20년 세월, 김대중으로부터 시작된 좌파 정권 10년 세월에 대한민국 안에서 6.25를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까지 생겨났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갈 데까지 다 간 것이며 이제 깨질 일만 남았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문단은 이미 민족문화작가회(현 한국작가회)에 실권이 다 넘어갔고 간판 밖에 안 남았다.


조정래의 문학은 세 차례의 변신을 통해 점프하고 있다. 먼저는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을 특정하면 ‘한풀이 문학’으로 특정되는데 여기에서 친일파를 숙청하기 위해 남한을 침략한 해방 전사들인 인민군과 빨치산들을 모아 놓고 한의 모닥불을 지핀다.


다음으로는 아리랑인데, 아리랑에서는 김제출신의 농민들이 군산에서 만주, 브라디보스톡까지 가야 했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의 디아스포라가 되어 버린 한국인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배설해 놓고 울분을 토한다. 거기에는 만주까지 쳐 들어온 일본군과 맞서 싸운 독립군들의 후손들이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밀려들어가서 그곳에 정착을 하고 뼈 마디를 땅에 뭍은 후손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들이 녹아져 있다.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원혼들이 조정래가 피워 놓은 한의 모닥불 중심으로 너울춤을 추는 형국이다. 그래서 아리랑을 “맥놀이 문학”으로 구분했다. 주) 조정래의 의도 있는 영혼의 파장과 일제에 의해 디아스포라가 되어 버린 디아스포라들의 영혼의 파장이 맥놀이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맥놀이’를 영혼의 춤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조정래가 추고 있는 영혼의 춤사위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디아스포라들의 영혼의 춤사위가 서로 얽혀 맥놀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다음은 한강이다. 한강은 1959년 이후의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월북한 아버지의 자식들이 겪어 나가는 과정을 썼다. 4.19, 5.16, 10월 유신과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까지에서 조정래는 단절을 말한다. 그래서 “단절문학”으로 특정했다.


조정래는 아리랑을 쓰고 있는 중에 자신이 신봉하는 공산주의가 1991년 무너지고 안병직 교수 등이 공산주의를 버리고 뉴라이트로 전환하자 “한강” (단절문학 혹은 분단문학)을 내놓고 자신과 자신의 문학을 변호한다. 자신의 작품인 한강을 통해 이제는 분단시대의 종말을 고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작가의 말로 남긴다. 이 말은 시쳇말로 꼬리를 내렸다는 뜻이다. 한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부르주아가 되었으니 이제 자신이 획득한 재산과 명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것들을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정래는 여전히 거룩한 심판자이며 숭고한 문학인이자 예술가로 남아서 대한민국의 정치권에 간섭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조정래 문학의 특질을 한 줄로 요약하면, 문제에서 출발하여 문제를 키우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문제를 끌어안고 허탈해하며 분노하는 군상들이다. 일제로 인해 수탈당한 한과 반공정권에 의해 한을 품고 분노하는 전라도 군중들을 이끌고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 앞에 세운다. 그리고 마음껏 침을 뱉으라고 외친다. 이 특질은 조정래가 의도하고 배설해 놓은 독이다. 그래서 조정래 작품의 키워드는 허탈, 분노, 좌절 이다. 조정래의 작품을 읽으면 반드시 친일파들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주하게 되어 있다. 친일파들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주하고 나면 북한의 김일성 부자의 독재가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고 6.25 남침이 이유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어 있다.


조정래 문학의 방향은 한풀이에서 출발하여 맥놀이로 한바탕 먹고 마시며 뛰어 놀고 난 뒤에 분단문학으로 전이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귀착역이 분단문학이다. 조정래는 분단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자신의 문학을 변호했다. 이어서 문단과 여론에서 찬사를 보내며 조정래의 분단문학을 제멋대로 해설해 주자, 충분히 변호되었다고 간파한 조정래는 “글 감옥”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서 문단의 어른으로 좌정한다. 북한과 남한의 골육상잔이라는 소재를 채용하여 작품화하여 돈도 벌고 베스트셀러작가라는 명예도 얻었으니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나는 조정래가 자신의 작품에 분단문학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이 어찌 분단문학인가? 단절문학이 아닌가. 조정래는 그의 작품 ‘한강’에서 먼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 편을 만들고 그 편으로 보수주의를 치며 친북주의를 주장한다. 이것으로 인해 전라도와 경상도가 단절된다.


다음으로 그는 전라도민이 경상도인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무시를 당하며 차별을 받았다고 선동한다. 경부고속도로를 보라는 게다.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한국의 근대화에서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경부고속도로라? 웃기지 말라. 똑같은 세금을 내고 있으면서도 제 고향인 경상도민을 우대한 정책에서 나왔고 상대적으로 전라도민은 차별을 받은 흔적일 뿐이라고 선동한다. 여기에서부터 한국 근대화의 동력인 경부고속도로가 조정래에 의해 부정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은 오히려 전라도민들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 조정래로 인해 전라도와 경상도는 완전히 단절되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룩한 새마을 운동을 비롯 경제 업적은 경상도민들에게만 유익이 가는 정책으로 비난을 받는다. 이 비난은 5.18 사태로 이어지면서 군부독재와 함께 경상도 대통령들이 수난을 겪는다. 조정래에 의해 오직 김대중 전 대통령 만이 진실된 대통령이며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칭송을 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저만큼 밀쳐졌다.   


그동안 조정래의 사상적 지번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는 많았다. 그러나 유명인사가 된 조정래의 사상적 지번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들은 거절당했다. 조정래를 취재하려면 굵직한 직함을 가진 대기자 정도는 되어야 인터뷰를 할 수 있다. 그간 기자들은 조정래의 사상의 지번을 확인하고 싶어서 수차례 질문을 했으나 그 때마다 조정래는 위에서 인용한 말 그대로 자신을 포장했다.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 당신은 사상적으로 성분적으로 무슨 주의자냐고. 굳이 그렇게 분류하고 싶다면, 정의와 진실을 실현시키고자 하니까 진보주의자고, 민족적 자존을 지키고자 하니까 민족주의자고, 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 없이 예술 창작을 하고자 하니까 자유주의자이다. 그러나 이런 분류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문학을 섬기며 남은 생애를 흠 없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서러운 역사의 땅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며 글을 쓰다가 갈 예술가일 뿐이다.” (조정래)


아주 포장을 잘했다. 거룩한 문학가요 예술가로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앞서가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로 불러 달란다. 자신은 북한 민족까지도 아우르면서 사랑하는 통 큰 민족주의자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창작을 하고 있는 예술가이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음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친북사상을 주입시켜 놓은 작품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단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있지 자신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단다. 이토록 좋은 세상에서 마음껏 예술가로 살도록 간섭하지 말란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을 쓰겠단다.


위의 말에서 조정래는 진보주의자의 정의를 “정의와 진실”로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가? 조정래가 말하는 정의란 친일파 숙청을 말한다. 진실이란 이승만 정권이 미국정과 함께 남한을 통치하면서 친일파를 숙청하고 못하고 오히려 저들을 옹호한 역사가 진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수품 장사를 하는 자들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군수품을 빼돌려 민간에 팔아서 돈을 버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6.25 전쟁 후에 남대문 시장에는 빼돌린 미군의 P.X 물품이 넘쳐났는데 없는 것이 없었다. 있는 자는 이것을 사서 입고 먹었다. 이승만 정권의 농림부 장관이었던 죽산 조봉암은 미군 P.X를 통해 시거를 구입해서 피웠다고 전해진다. 당시 미제라면 우는 어린아이도 울음을 그칠 정도로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없는 자는 미군이 먹다 남긴 짬밥(잔반)을 싼값에 사서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고 살았다. 조정래도 전쟁의 참사를 소재로 작품을 발표하여 상당한 돈을 벌었다. 미국은 6.25 전쟁에서는 목숨을 바치며 남한을 지켜 주었고 전후에는 구제품과 의약품 그리고 고아원을 세워 죽어가는 한국인의 생명을 구원해 주었다.


한 번 쯤은 물어 보고 싶다. 조정래 당신 같으면 당신이 저주하는 미군과 같이 남의 나라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었는가? 하고 말이다. 또 그토록 북한의 김일성을 흠모하고 심중에 두고 있는 위대한 지도자요, 영도자라면 지금이라도 전 재산을 정리하여 북한에 가서 충성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북한의 어린이들과 북한 인민들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구원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왜 남한에서 당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부르주아로, 그토록 저주하는 미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남한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가? 예술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면해지는가? 예술가라면 주적인 북한을 마음 놓고 찬양해도 된다는 뜻인가?


2. 김정일에 대한 조정래의 충성심


조정래는 2004년과 2007년에 평양을 다녀왔다. 2004년 방북은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개원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조정래는 후원 회원 자격으로 방북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변형윤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 리영희 한양대 명예 교수, 소설가 조정래씨,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임현진 서울대 교수, 한용외 삼성문화재단 사장, 박영훈 SK 고문,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과 함께 다녀왔다. 2007년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의 문화인 대표자격으로 방북단원에 포함되어 방북했었다.


조정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독재자라는 것과 일본군 출신이었다는 것에 대한 증오심이다. 그런 그가 대를 이은 독재자 김정일에 대해 존경심을 더하여 경외심까지 드러냈다. MBC 백분 토론의 손석희 진행자와의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손석희 / 진행 : 잘 아시는 것처럼,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녀오시느라고. 그 사이에 우리 언론에서 많은 부분을 다뤘는데요. 예를 들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 등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많이 표한 바 있어요. 왜냐 하면 첫날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래도 2000년 당시의 활기찼던 모습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해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직접 보시니까 어떤 것 같았습니까?


조정래 / 소설가 : 건강 문제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그 분하고 두 번 악수를 했는데 마지막 백화원 초대소에서 악수를 할 때 저를 ‘태백산맥’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피곤했던 표정이 밝게 변해서 잡았던 손을 더 힘주어 잡는데 제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이 강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건강은 목소리와 악력, 손아귀 힘으로 대개 구분하고 있는데요. 목소리도 초대소 큰 홀이 꽝꽝 울릴 정도로 높고, 술도 포도주를 끝없이 계속 마시는 엄청난 주량을 과시하는, 건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쪽 언론도 조금 조심해줘야 되는 게 상대방이 서로 할 이야기를 가지고 마음을 합하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정상회담인데 신속한 보도는 좋지만 ... 마치 회담을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해방하는 것처럼 그렇게 상대방 감정을 거슬리게 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이 한 버스에 3명이 탔는데 그 사람이 만나면 매일 하루 지난 다음부터 이야기를 합니다. 신문이 왜 이 모양이냐, 우리 회담하지 말라는 것이냐, 이렇게 모독할 수 있느냐, 이렇게 항의를 하는데 제가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손석희 / 진행 : 또 우리는 언론이 좀 자유롭게 쓰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다 라고...


조정래 / 소설가 : 자유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자유입니다. 자유는 방임이 아닙니다. 그 기본도 모르고 언론이 무슨 일을 합니까?


손석희 / 진행 : 아무튼 언론보도에 대해서 섭섭한 점이 많이 있으셨던...


조정래 / 소설가 : 섭섭한 게 아니고요. 입장이 난처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어버립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죠. 나라 망치는 것이죠. 나라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간 사람들을 뒤에서 망치는 짓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3.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저항의식(혁명이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제제일주의로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에 우려를 보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환경훼손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고, 남북문제에 관한 접근방식 역시 동포애적 관점이 아닌 실용·경제주의로 전환될 가능성이 보인다. 교육정책마저 자본에 맡기겠다는 태도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질중심주의와 경제제일주의 탓에 사람들의 삶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문학은 이에 저항할 것이다."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특이한 점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가치론적 개념 즉 이데올로기로 말했다는 점이다. 도종환이 말하고 있는 가치론적 개념 안에는 이데올로기적 혁명이론이 근저에 깔려 있다.


“세상은 다민족·다문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민족'이란 가치론적 개념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기는 20~30년 전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식민지와 분단체험을 거치며 우리에겐 민족이란 개념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족주의의 범위가 그 당시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넓어졌고, 이를 담아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문인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 민족이란 단어 때문에 '극좌단체가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는 것도 문제였다. '소수의 재야문인단체'라는 이미지를 털고, 명실상부 한국의 문학인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인권과 평화, 자유와 통일, 환경 문제 등에서 우리 단체가 견지해온 태도는 바뀐 이름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도종환)


사실상 좌파문인들의 온상이었던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간판을 바꿔 달은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 극우 혹은 극좌 세력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부담을 먼저 말했다. 이는 고은 시인과 조정래, 황석영 등의 좌파들의 작품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에서 탈락했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간판을 바꿔 달고 인권과 평화, 자유와 통일, 환경 문제 등으로 보수정권에 저항하는 단체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간판까지 바꿔달며 변신을 시도한 배경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일을 해 놓았기에 서둘러 간판까지 바꿔 달았는가? 이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저간의 사정을 알려면 인혁당 사건부터 더듬어 살펴보는 것이 좋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터졌다. 1965년 1월 20일 선거공판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도예종, 양춘우는 각각 징역 3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나머지 11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하여 검찰은 불복, 항소심을 제기하였고, 그 해 5월 29일 열린 항소심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선고를 내리고, 도예종. 양춘우 외에도 박현채를 비롯한 6명에게 징역 1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1차 인혁당 사건이 발생한 후 10년이 흐른 74년 4월,'2차 인혁당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수사하면서 배후ㆍ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민청학련 1천24명이 연루된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에서 2백53명이 구속 송치되었다. 이 가운데 인혁당 관련자 21명,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백80여명이 긴급조치 4호,국가보안법,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 등의 죄명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다.1975년 2월 이철,김지하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대부분 감형 또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국방부는 재판이 종료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은 1979년 적발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南民戰) 사건’ 등 두 차례의 공안사건 연루전력을 지닌 인물이다.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 등이 월북해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통제를 받아왔고, 공산혁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할 것을 모의했었다.이들은 공산혁명 성공시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를 준비했는데, 이 깃발은 74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도예종 등 8명이 입던 옷으로 만든 것이었다.


인혁당 사건 이후 일단의 좌파 문인들은 반공정권의 눈을 피해 지하에 숨어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반면 김대중과 문익환, 백기완 등 재야인사로 포장한 좌파들은 한총련 등 대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시위대로 앞세워 배후에서 시위를 주동했다. 문익환, 황석영, 임수경 등은 방북하여 김일성 찬양과 충성맹세로 반공정부를 농락했고 이로 인해 민주화 운동은 친북운동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문학작품을 통해 친북을 해왔던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 등 친북작가들은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한 친북세력들에게 정신적인 자양분을 공급해 왔고 영광스럽게도 김일성을 위한 중간 숙주가 되어 충성을 다했다. 5.18 사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되었다. 대통령의 권좌에 오른 김대중은 5.18 재단을 세워주고 무려 8차례의 보상과 승격 끝에 5.18을 민주화 운동의 최고봉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이것도 모자라 북한의 혁명과업 수행영웅에 준하는 “5.18 유공자”로,국가유공자의 지위와 명예를 주었다. 그 수가 무려 4800명에 달한다. (광주 뉴시스, 2004-05-12) 이는 5.18 사건이 구체적으로 김대중에 의해 조종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조정래의 친북사관에 대한 비판은 현재 뉴라이트 계열인 ‘월간 시대정신’을 통해 서서히 가속도를 내고 있는 중에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이야기-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의 서평회를 2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개최했다. 이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라는 부제처럼 2006년 2월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해설판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좌파적 민족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역사의 주체로 자리 잡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걷어냈다. 걷어낸 이유는 단지 어떤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차용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주, 여기에서 단지 어떤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차용한 단어라는 뜻은, 김일성 부자와 친북자들이 북한지원을 위한 이론으로의 차용을 의미한다.)


또 이 교수는 선량한 조선을 강포한 일본이 유린했다는 민족주의 사학도 동의하지 않았다. 일본 치하의 역사는 근대화를 불러 온 나름대로의 가치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교수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식민지 근대화론자' 혹은 '식민지배 찬양론자'로 불리며 매도당하고 있다.


서평회 개회사에서 이 교수의 스승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설가 조정래 씨가 이 교수를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답다'고 비판한 사실을 언급하며 "남의 인격을 모독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조 씨가 문화인이라면 문화인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 문화인이라면 제기된 문제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대응해야지 멀쩡한 남의 인격을 비난하는 것으로 면책하려고 비겁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조 씨의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 재단이 발행하는 '시대정신'에 조정래 씨의 소설 '아리랑'이 상당한 역사 왜곡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조정래 씨는 최근 동국대 강연에서 "이 교수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7-06-28 09:16)


안병직 교수는 공산주의 멸망 후에 자신의 좌파적 사상노선에서 돌이켜 사상전환을 하고 현재까지 뉴라이트 운동을 하고 있다. “월간 시대정신”을 통해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고 있는 안 교수는, 좌파 역사가들에 의해 편향된 역사관으로 저술되어 있는 중. 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 실린 근. 현대사의 수정작업에 착수하여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교과서를 내놨다. 안 교수는 “친북좌파들에 의해 저술된 근. 현대사에는 좌파들의 운동인 민주화운동을 동학운동과 연결시켜 성역화 시켜 놓았다. 이는 억지 꿰어 맞추기이지 진실된 역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대정신을 이끌고 있다.


좌파들이 성역화 시켜 놓은 좌파운동사인 민주항쟁사는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로 채택이 되어 더욱 많은 좌파들을 생산해 내는 매개체가 되어 있다. 여기에는 저항정신과 함께 혁명이론이 깔려 있다. 박노자가 "대학생이라면 저항정신이 없으면 죽은 대학생이라"고 선동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공회대의 교양학부 교수인 한홍구는 “대한민국사”에서 민주항쟁의 원류를 김일성으로 말하며 김일성은 김산으로 둔갑되고 김산이 부른 “아리랑”은 저항정신을 담은 사상의 노래로 포장된다. 조정래 역시 마찬가지로 아리랑에 집착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민족”, “아리랑”, “저항정신” 등 선동적인 단어에 집착할까. 저항정신을 운운하고 있는 박노자는 러시아인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의 문화 특히 민주화 운동의 문화와는 접해 본 적도 없는 한국 민주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런 그가 무엇 때문에 대학생을 선동하여 저항정신을 운운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의식화 과정이다. 의식화 혹은 이념화 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자. 1단계에서는 친북좌파들이 깔아 놓은 중, 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서를 통해 민주항쟁사는 고귀한 것으로 그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할 것이 강조된다. 2단계인 대학생이 되면, 대학생은 저항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박노자의 선동이 이어지며 태백산맥이 추천된다. 3단계에 와서는 민족의 정신이라는 미명 하에 아리랑이 불려진다. 여기에서 아리랑은 김일성이 민족을 위해 불렀던 노래이며 김일성의 혁명정신은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남북통일을 염원한 정신으로 포장된다. 그는 인민의 태양이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김일성 장군이라고 한홍구는 말한다. 현재는 박노자가 대학생의 저항정신을 말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임헌영을 비롯한 모든 좌파 교수들과 좌파 작가들이 대학생의 저항정신을 애국정신으로 묘사하며 강조해 왔던 단골메뉴였다.


현재의 조건에서 학생 한 명이 좌파가 되어 나오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현재의 역사 교과서로 공부하고 논술을 위한 교양서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1단계), 대학에 들어와서 박노자의 책을 읽고(2단계)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으면(3단계) 그대로 김일성 찬양자인 주체사상파가 되어 나온다.


기실 한총련, 전교조, 민주노총의 NL주사파 등, 남한에 기생하고 있는 좌파들과 의식화된 좌경자들 중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는 조정래가 좌파의 숙주가 되어 있다는 말이며 그의 작품인 태백산맥은 좌파의 정신적 자양분이라는 뜻이다.


4. 조정래의 역사관과 민족관


조정래는 자신의 편향되어 있는 친북사관을 버리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문인으로서 역사의 심판자로 역사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남아 있겠다고 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조정래가 대한민국 역사의 심판자이자 문단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을 이유란 손톱만큼도 없으며 오히려 역사와 문학에 의해 심판 받아야 할 자이다. 그는 “권력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조정래가 매일경제뉴스 2004년 1월 29일자로 보도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조정래의 편향된 역사관과 민족관 그리고 불온사상의 정도가 나온다.  


1) 조정래가 말하는 진실의 의미


“작가는 글로써 지켜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모든 권력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마련이죠. 문학인에게는 이런 오류를 감시ㆍ감독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있습니다. 신성한 책무를 버리고 정치에 가담하는 일은 평생 없을 겁니다."


조정래가 말하는 진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필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작가를 비판할 때에는 어떤 의도와 어떤 목적으로 글을 썼느냐 하는 점을 첫 번째로 살핀다. 작가란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글을 쓰게 되어 있고 작가의 시각이 좌로 편향되어 있으면 좌익 사상의 글이 나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글의 내용에 담겨 있는 작가의 사상은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가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조정래의 작품에서는 미군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본색이 나온다. 이 증오와 혐오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증오이며 동시에 미국과 동맹하여 반공정책을 펼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증오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조정래의 글에서는 좌우 수평추가 정확하게 중앙에 있는 진실은 나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리인가? 조정래의 양심에는 이역만리까지 들어 와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준 유엔군 15만 명의 목숨은 다만 침략군으로서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란 것인가. 고마움도 모르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혐오와 증오를 남발하고 있는 조정래에게 김일성과 북괴군은 오히려 해방전사로 포장된다. 미군의 죽음은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 깽판을 치다 죽은 것에 불과하다.


조정래의 시각이 왜 이렇게 비뚤어졌는가? 그는 어린 시절 겪은 6.25 때에 자신의 집으로 미군이 군화발로 들어와 총부리를 들이대는 통에 심히 놀라고 두려웠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물론 그것이 중대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자신보다 7살 많은 빨치산 박현채를 스승과 같이 존경하고, 자신보다 2살 많은 남민전 출신의 간첩이었던 임헌영과 호형 호제하면서 함께 어울렸던 일을 무엇으로 말할 것인가?


초록은 동색이다. 박현채의 중심에는 신앙과 같이 김일성이 있었다. 박현채는 김일성을 그로 표현하며 그를 위해 준비해야 하고 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방법은 박현채가 김경추(가명)에게 주었던 “세 단계의 싸움에 주는 격문”에 있다. 그를 위해 합리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투쟁하고 동양의 사상인 중용으로 처신해야 할 것을 지령했다. 세 단계의 싸움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당시와 연결해 보면 책과 문서 그리고 비라 등을 통해 남한의 국민들을 선동하는 책략을 사용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현채는 공자의 중용을 동양의 중용으로 말했다. 이 의도적인 용어 사용에는 오직 김일성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존경심을 바치지 않는다는 박현채의 충성심의 표현법이다. 조정래는 박현채의 지령에 따라서 책을 통해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가는 길을 닦았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진실이란 있을 수 없다.


2) 조정래의 근황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아름다운재단 100인 발기인, 친일파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인데요. 특히 친일파사전 편찬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국민모금을 통해 일주일 만에 5억 원을 모았어요. 총 3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나머지 25억 원은 국민발기인을 모집해 모을 예정입니다. 편찬은 실무자들이 일을 거의 마쳤지만 (친일파사전을)책으로 만드는 기금을 모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조정래의 동선을 보면 그의 사상적 궤적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파악이 된다. 참여정부 시절 참여연대는 좌파들이 청와대에 진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통로였다. 한국경제는 유석춘 연대교수의 분석을 보도했다. 참여연대 출신 150명이 공직에 진출했다는 내용이다.


1994년 창립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자리 잡은 참여연대의 전·현직 임원 416명(전체 531명 중 직업 정보가 확인된 인물) 중 36.1%에 이르는 150명이 청와대와 정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 등 313개의 정부관련 직책을 맡았었거나 현재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22개(7%) 자리에 불과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113개(36.1%),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158개(50.5%)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드러 났다.이 같은 사실은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 12년간 참여연대의 전직 공동대표, 감사, 사무처장, 정책위원, 운영위원, 집행위원 등을 지낸 임원 531명의 정부기관 진출 현황을 분석한 '참여연대 보고서'에서 확인 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연대 출신이 맡은 313개 직책 중 57.5%에 달하는 180개는 참여연대 활동 이후에 진출이 이뤄진 경우였다. 참여연대에서의 임원활동이 공직진출의 발판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경제, 유창재 기자, 2006.9.2.10:21)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변호사는 민주화 운동, 간첩전력자를 변호했던 소위 민주화 운동 민권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박원순 변호사와의 연결은 임헌영의 역사문제연구소를 통해 이뤄졌다. 임헌영은 “그 울음의 의미를 우리는 안다” (코리아포커스-전집발간위 공동기획) 박현채와 나 ⑦에서 1986년 박원순 변호사와 원경스님, 이호웅 의원을 비롯한 몇이서 역사문제연구소를 하자는 권유를 받고 박현채와 상의 끝에 역사문제연구소를 창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임헌영은 저명인사들을 대폭 자문위원으로 추대했으며 한길사를 통해 역사기행과 심포지움을 통해 리영희, 박현채, 김진균, 임헌영, 조정래로 연결되는 좌파 문인의 사상지도가 만들어진다. 임헌영은 “1988년 한길사는 월간 <사회와 사상>을 창간했는데 그 편집위원에는 강만길, 고은, 김진균, 박현채, 이영희(이 때는 이렇게 표기했음), 임헌영이었다. 회의 때마다 박(박현채) 선생은 나(임헌영)에게 문학예술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친 언급과 기획을 강요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3) 서정주 등 친일파 문인들에 대한 시각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용서'는 잘못한 자가 속죄할 때 이뤄지는 것이죠.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역사의 비판대 위에 서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선배들이 잘못한 모든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돼야지요."


-엄격히 말하면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느냐는 항변도 있을 법한데요.


"그런 논리는 바로 친일파들의 자기변명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에 들어 온 일본인은 80만 명인데 이들에게 빌붙은 친일파가 160만 명이에요. 바로 이들 때문에 36년이라는 식민지배가 있었던 겁니다. 이들 외에는 친일파가 없어요. 무기를 든 적극적인 독립투사, 군자금을 지원한 소극적인 독립투사, 일제에 징용된 정신대나 징용 노동자 등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끝없이 부른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친일파입니까."


조정래는 용서와 속죄를 하나의 등식으로 말한다. 속죄가 있어야 용서가 된다는 말이다.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역사의 비판대 앞에 세워서 비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렇다면 이미 죽은 친일자들에 대한 비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비판은 학문적인 비판과 촌철살인적인 비판, 이 둘로 나뉜다. 조정래가 말하는 비판은 후자이다. 즉 이름을 죽이는 것이다. 뛰어난 업적 혹은 빛나는 업적을 남겨 이름이 높았던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과거를 파서 죽이는 것이다. 이 사람이 과거에 친일파였습니다라는 명단 발표로 단숨에 업적을 희석시키고 명예를 죽이는 촌철살인이지 업적의 공과 과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조정래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이 한 일이 바로 촌철살인이다. 


4)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


"민족주의를 폐쇄적 공격적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건 히틀러의 민족주의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게르만을 제일로 취급하고 다른 민족을 탄압 했지요. 우선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논리를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모두 세계에서 강대국이라 불리는 제국주의 국가들 아닙니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를 경제ㆍ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런 시각을 심어놓은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일어선 제3세계 국가들이 저항하면 안 되니까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개방적, 공생적 건설적인 신민족주의입니다. 우리가 통일에 동의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 민족주의뿐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와 히틀러의 민족주의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데 연결을 시키고 있는가. 한국이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던가? 아하 있구나. 김일성이가 전쟁을 일으켰구나. 그래서 지금 히틀러의 민족주의 운운하면서 김일성을 변호하고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라고 했는데 그 우리란 누구,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겠다.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개방적 공생적 건설적인 신민주주의라니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자주성이 없고 독립되지 못한 민족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뭐를 방어하고 개방적이며 공생적이고 건설적인 신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방어해야 한다는 뜻인가? 개방을 말하는데 이건 어디를 겨냥한 말인가. 북한에 남한을 개방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공생을 해야 하는 것이고 건설적으로 퍼 주는 것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통일로 가자는 말이 아니던가. 같은 민족이라 동질감이 있다니 그래서 민족주의를 말한다? 그렇다면 결국은 임헌영의 말과 박현채의 말과 본질은 같다는 말이 아닌가. 다만 이리저리 비틀고 꽈배기를 만들어 놓아서 이게 뭔가 하는 쪽으로 위장하고 있음이 아닌가. 같은 민족이라 동질감이 생기다니 그래서 박현채는 빨치산이 되어 동족에게 총을 겨누었던가.  그것이 조정래가 말하는 동질감이며 민족주의인가. 


5)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의식은 저항(혁명이론)


"역사정신이란 치열한 시기에 솟아올랐다가 잦아들 듯, 물이 솟아올랐다 다시 잠복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그런 위기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역사정신이) 다시 응집돼서 솟아오를 것으로 봅니다. 지금 표피만 보고 요즘 젊은이들이 치열하지 않다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지금보다 10년 전에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때 도 대학생들은 힘껏 저항했습니다. 돈 받고 표를 찍는 이는 노인들이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역사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의식 있는 저항세력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리랑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읽을 이유가 없죠.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된 아리랑을 보면 표지가 너덜너덜합니다. 그들은 그걸 읽으면서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의식이 깨어난다는 말은 의식화가 되어 친북자가 만들어져 나온다는 뜻이다. 6.25의 역사를 남침으로 보느냐 북침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식이 달라진다. 조정래는 친일자를 숙청하기 위한 해방군으로 북한군을 묘사하고 있다. 남침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대체 빨갱이들 외에 북한군을 해방군으로 보는 자가 남한에 누가 있느냐.


조정래는 자신이 쓴 태백산맥의 의도를 명확히 해 주고 있다. 의식화용으로 저술했다는 뜻이다. 의식화된 박현채의 빨치산 줄기들이 총이 없으니 각목과 화염병을 들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것이 민족주의이다. 민족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항하라. 조정래는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다.


과연 조정래 따위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표하여 민족을 운운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만큼 따라 주는 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정래의 말이나 글에서는 단 한 번도 애국과 애족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친북자의 전형이다. 이 점을 명백히 보아야 한다. 


6)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 가치


"물론 인류의 행복, 평화는 우리 모두의 이상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와 행복이 보장되려면 일단 각 단위 민족의 다양성이 인정돼야 합니다. 맹목적인 세계화가 위험한 것은 이것이 강대국의 논리, 강대국의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세계의 언어는 강대국의 몇 가지로 통일될 겁니다. 지구상의 수천 가지 아름다운 언어들이 말살되고 없어지는 거죠. 우리가 세계를 여행하는 건 다른 민족의 다양성을 보기 위한 겁니다. 이 획일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9ㆍ11테러를 겨냥해) 20세기를 문화의 세기라 치장했던 인류에게 2001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래도 세계화를 부르짖는다면 21세기에도 이런 비극이 계속될 겁니다. 작위적인 세계화, 강압적인 무역개방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께서 '탐욕이 너를 망칠 것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대국도 그들의 편의만을 위해 약소국을 개방시키고 강압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도 정치인, 기업인들은 계속 강대국의 논리를 답습해 세계화를 추진할 것으로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게 우리 문인들의 임무, 조정래의 임무입니다."


조정래가 앞에서 말한 "방어적"에 대한 의미가 어떤 의미로 채용되었는지 여기 강대국의 논리를 말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조정래가 말하는 강대국의 논리는 세계화로 보고 세계화란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강대국의 논리로 보고 있다. 무역을 통해 이뤄지는 통상을 착취로 보고 있는 조정래의 내면에는 북한으로 가득 차 있다. 조정래에 의하면 북한과 김정일은 우리의 동포이자 우리의 형제라는 개념이다. 6.25를 도발하고 450만명이나 되는 인명이 처참하게 죽었으며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발생시킨 김일성을 아버지쯤으로 보고 있는 조정래의 시각이 뚜렷하게 보이는 대목이다. 조정래에 의하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은 세계화 논리로 한국을 착취하는 적이다. 그래서 미군이 철수를 해야 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깨뜨려야 하고 북한과 친교를 해야 한다. 이것이 조정래의 내면의 시각이다. 그런데 바로 아래에서 말하는 조정래의 통일론은 이율배반적인 이중성을 드러낸다.


7) 조정래의 통일론


"민족의 대과제이지만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대결과 갈등 속에서 50년 세월을 살면서도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화해와 통일로 큰 방향을 잡은 상황입니다. 부산 아시안게임 때 300명이 넘는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먹이고 재운 것 같은 일들이 작은 통일 아니겠어요? 유니 버시아드 대회, 올림픽의 단일기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게임 때 2등 하는 것보다 민족의 협력을 알리는 게 작가와 언론의 몫입니다.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전쟁통일도 안됩니다. 50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50년은 왜 기다리지 못합니까. 대명제임을 기억하고 노력하면서 기다립시다. 삼국시대가 있었듯 분단시대가 있었음을 훗날 기록하면 됩니다."


통일이 아니었나? 앞으로도 50년 이상은 넉넉히 기다릴 수 있다니 앞으로 50년 이후면 조정래가 살아 있을 시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눈으로 보지도 못할 통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시안 게임에서 선수 300명을 데려다가 먹이고 재우고 한 것이 작은 통일이라는 조정래의 말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자신은 통일과 무관하지만 북한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것이 작은 통일이기 때문에 자꾸 퍼주기를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통일이 된단다. 그러면 퍼주기는 국가에게 맡기고 조정래 자신은 무엇을 하려는가. 글을 쓰고 있겠단다. 북한에게 자꾸 퍼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쓰고 있겠단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황석영이 북한에게 버림을 받았는가를 다시 한 번 새김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황석영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자들, 즉 조정래와 같은 부류들은 북한에서는 쓸모가 없는 반동 부르주아에 불과하다. 저들은 ‘위대한 지도자 동무의 위엄에 눌려 무서워서 북한에 퍼주기를 해야 한다고 말로만 지껄였던 자들’로 말한다.


뿐만 아니다. 통일을 자신의 사후쯤에 가서 되어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내심에는 통일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심이 품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전쟁통일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일면 무척이나 북한을 측은히 여기고 남한에 대해서는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본질로 들어가면 다르다. 조정래는 남한에서 이룬 베스트셀러작가라는 명예와 분단조국의 상처를 모질게 후벼 파서 이룩한 부를 지키며 누리고 싶을 뿐이다. 


8) 조정래의 문학 위기론에 대한 항변


"(그런 시각에)동의하지 않아요. 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지난 60~70년 간 수없이 나왔습니다. 라디오, 영화, 흑백TV, 컬러TV, 컴퓨터ㆍ인터넷이 나올 때마다 계속된 얘기예요. 하지만 문학의 위기보다 TV가 나왔을 때 같은 영상매체인 영화의 위기가 더 컸다는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다시 TV를 압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매체는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은 여러 매체를 공유하지 하나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다른 매체의 등장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면서 내용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일궈 왔어요. 18~19세기 문학의 독주시대에 비해 오늘날 독자는 숫자도 많고 계층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60년대만 해도 10만부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100만부가 넘어야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인터넷이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 있지만 언어가 있는 한 문학은 존재할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가가 더욱 정진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지 독자가 없다는 핑계를 대선 안 됩니다."


여기에서 조정래는 자신이 10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 작가임을 각인시킨다. 자기와 같이 성공한 작가가 있으면 나와 보라는 자랑으로 들린다. 조정래의 글을 읽고 의식화된 청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단조국의 상처를 깊이 쑤셔대며 생살을 도려내며 현 정부가 일제의 잔재이며 심판 받아야 할 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호의호식하고 있단다. 호의호식은 대물림 되고 있고 이들에게 붙은 자들이 정치인이 되어 수족노릇을 하고 있는 소굴이 정부이기 때문에 저항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항이 없는 젊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동해왔다.


조정래, 임헌영이 붙어 있는 박현채 라인은 리영희를 비롯해 김대중과 노무현까지 연결되어 있다. 교수급의 학자들은 학교와 학문으로 좌파들을 양산해 내고 문단에서는 조정래, 임헌영 등이 좌파를 양산해 내고 있다. 김대중 이후의 세상은  좌파들의 천국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좌파들이 학계와 문학계의 상좌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에 한국의 문단은 위기를 넘어 사멸상태까지 내몰렸다. 실제로 대학에서의 인문학과는 상당수가 폐과되었고 현재에도 폐과가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조정래는 작품이 문제이며 작가들의 책임이라고 물타기를 하고 있다. 문단의 실태를 보라. 이데올로기나 상업적인 의도가 없는 순수문학을 하는 순수작가의 경우 경제적 자립도가 제로에 가깝다. 이들에게 있어서 10년 세월이면 다 굶어죽었던지 아니면 아내를 직장에 내보내고 간간이 용돈과 원고지 값을 얻어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안 되면 필을 꺾어 버리고 작가의 길을 떠났다. 그런데도 작가 탓이며 작품 탓인가?


애국심과 조국애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조정래와 같이 분단조국의 상처를 후벼파는 작품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것은 아비의 아랫도리를 들추어 후비는 것이며 어미의 치마를 들추고 치부를 으깨는 짓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조정래는 어린 시절에 미군이 군화발로 방안까지 쳐들어 왔기 때문에 한이 맺혔다고 하지만, 내 부친의 말씀에 의하면 인민군에 부역을 했던 보도연맹자들은 죽창을 들고 죽창의 끝에 지주의 머리를 꿰어 들고 다녔다고 했다. 그 지주의 자식들이 부역했던 자들과 인민군에 대한 원한은 얼마나 되겠는가. 현재 50대 이하의 연령에 속한 작가들은 먼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50 후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민군에 의해 형과 누나를 잃은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이름 앞에서면 가슴에 물기가 촉촉해지는 여린 가슴으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모진 작품을 쓸 수 없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 천성이 모질게 악랄한 자만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조정래가 전투적으로 써내려간 태백산맥을 보면 이것은 김일성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헌사만 없을 뿐, 김일성과 박현채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간파해 낼 수 있다.


9) 조정래의 경제관


"대선관련 비자금은 기업의 돈이 아닙니다. 이 돈은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것이죠. 껌을 만드는 회사라면 부정한 돈을 정치권에 주는 만큼 소비자들의 껌은 얇아지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져 수천억 원이라는 돈이 생기는 거죠. 기업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이런 비자금을 주는 겁니다. 정치인이 요구해서 줬다기보다 자발적으로 주는 경우가 많아요. 기업이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을 때 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되고 부가 제대로 분배되는 사회가 오는 겁니다. 기업을 존중하고 신임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죠. 우리가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기업 활동과 관련해서는 본받을 미덕도 많습니다. 빌 게이츠가 재산의 반을, 조지 소로스도 수입 중 30% 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합니다. 기업인에 대한 존경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건 국가ㆍ기업의 역할 도 있었지만 국민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국민의 노력에 대해 기업의 사회 환원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정경유착'의 반세기 역사는 결코 인간다운 역사가 아닙니다."


열개의 변 중에서 단 하나 이 내용만 제대로 풀이가 되어졌다. 그러나 이 말도 내용을 좀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가 나온다.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것이라는 풀이가 그것이다. 껌의 얇기가 줄어들었다면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 작아진 것이지 노동자와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만약 노동자의 몫이 비자금 안에 들어 있다면 마땅히 경영주의 몫도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 노동자의 몫만 거기에 들어 있는가. 월급을 주지 않고 비자금을 만들어 냈다는 말인가?


이 사람의 말과 글은 늘 이런 식이다. 반드시 편을 가른다. 편을 가르고는 약자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약자들을 충동하여 사업가나  정부와 맞서서 싸우게 만든다. 저항논리가 이 사람의 뼈골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통해 저항논리가 튀어 나오게 되어 있다. 


10) 조정래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변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도 나왔으니 언젠가는 문학상도 받게 되겠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작품의 번역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독자들에게서 너무 많은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미 노벨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민족작가회에서 6.25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분단문학으로 규정하여 별칭을 붙여 주고 있는 이면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숭상하는 좌파 성향자들의 토양이 있다. 그리고 좌파 정권에서는 이들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은과 조정래의 작품은 선정되지 못했다. 이 문제로 인해 민족문학작가회는 서둘러 간판을 내리고 한국작가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러나 이웃 일본은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냈다.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1994년 이후부터 일본은 경제동물이라는 별명에서 벗어났다. 이에 더하여 일본의 대표적 3대 문화라 할 수 있는 만화, 게임, 스시를 각각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하여 수출했다. 해외에 수출된 문화산업이 견인차가 되어 일본의 10년 동안 이어진 경제침체를 단숨에 끌어 올렸다. 이제 일본은 경제동물이 아니라 문화국민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문화국민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노벨문학상 2회 수상에 있다.


노벨수상자는 1968년과 1994년에 각각 배출되었으며 1968년에 받은 노벨문학상은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Yasunari Kawabata) 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전통적인 일본의 아름다움 속에서 자기의 감성을 닦아 독자적인 문학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6년 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오에 겐자부로의 고향인 산골마을에서 100년 전에 일어난 민란을 소재로 채택하였는데 작가가 유년시절에 고향 마을의 할머니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특히 작품 속에는 조선인을 다룬 내용도 나온다. 마을의 자립을 부르짖으며 조선인 기업가에게 지배를 받아 온 마을의 힘을 결집하여 마을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는 인물을 잘 묘사하여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의 두 개의 작품을 보면 한국의 문단이 노벨문학상과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내용에는 한국 문단의 좌파들이 숭상하고 있는 소위 분단문학 따위의 소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조정래의 작품이 아무리 대작이라고 떠벌려도 해외에서는 좌익사상이 담겨져 있는 조정래의 작품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제부터는 독자들의 몫이다. 한국이 노벨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들에게 주목해야 하고 정부는 좌파 작가회와 좌파 문인에게 지원하고 있는 지원금을 돌이켜 순수문학 작가들에게로 돌려야 한다. 수출기업들은 일본이 경제동물이라는 별명을 떼어낸 이유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에 있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한국의 작가들에게 투자개념으로 지원과 배려를 해 준다면 얼마 못가서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 근거는 5000년 역사를 가진 선비문학에서 유전된 한국인의 유전자에서 찾아진다. 한국인은 이야기를 좋아 하는 수다문화가 있으며 이는 세계 최고의 문학성을 타고 났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한 인구가 4800만 명인데 각 개인의 사상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남한에 살면서 북한을 찬양하는 친북파가 있는가 하면, 6.25 동란을 일으킨 전범으로 김일성부자를 지목하는 반공주의자들도 있다. 이 경우 친북주의자들은 왜 자신이 친북주의자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 설명에는 역사적, 문화적인 근거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마땅하다.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자신의 사상적 근거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어야 주적인 북한을 비호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친북자들은 다만 단군의 자손이며 배달의 민족이기 때문에 한 형제라는 동포애를 주장하는 것으로 근거 제시의 책임에서 빠져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까? 북한이 6.25 동란을 일으켜 적화통일을 획책한 역사적 사건은, 한 핏줄이니 동포애니 등은 나약한 반편들의 우스꽝스런 감상일 뿐이라고 웅변한다. 여기에 북한은 남한의 햇볕정책을 조롱하여 선군정책을 펼치며 결국은 핵실험까지 해치웠다. 그 동안 북한은 남한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지속하면서 팀스피리드 훈련을 계속한다면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언을 해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난 이후, 남한 불바다론은 핵폭탄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전면적인 경고였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북을 주장하는 좌파들은 김정일에 의한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엄연한 역사적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친북과 반공은 사상과 가치관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친북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북한에 거주하면서 친남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체적으로 이들의 특징을 보면 남한의 친북주의자들은 주체사상에 오염되어 있는 자들이며 6.25 동란의 역사적 사실마저 부인한다. 반면 북한의 친남자들은 6.25 동란의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자들과 자유를 갈구하는 자들이다.


작가 현기영은 그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 제주4.3 사건과 그 이후에 대하여 조명하고 있다. 사건의 결과로 인해 ‘숟가락은 위로 들리고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있다고 말함으로 이 비극이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한다. 물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말해진다. 현 작가는 제주 4.3 사건의 원인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제주의 남로당원들이 무장하고 정부와 맞서 벌인 전투였다는 사실을 비켜간다. 다만 무장폭동을 일으켰던 남로당원들이 열세에 몰려 한라산 속으로 도망하여 암굴 속에 은신하고 있다가 주살 당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남아있던 남로당의 가족들이 경찰과 군부에 의해 연행되고 일부는 남로당원에게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 보복을 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 책에서 폭동을 일으켰던 남로당원들이 경찰과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정부군을 학살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굴속에 숨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힘없고 가련한 동물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들 작가들의 수평을 놓아버린 동정심이 어디에서 출처된 동정심인지를 알고 싶다. 작가의 절친한 친구 혹은 가족이 남로당원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동정심이 유발된 것인지 아니면 주체사상에 당한 것인지를 알고 싶다. 단순히 친북사상을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 문단, 특히 한국의 인문학이 사멸되어 가고 있는 이면에는 좌파들이 문단을 점령하고 난 이후부터 급속히 쇠락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가치를 조명해 주는 학문이기 때문에 좌익 혹은 우익으로 편향될 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개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주의 색채를 띈 작품이 나오게 되어 있다. 1990년까지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했고 공동체 지상주의를 지향하며 공평한 세상을 펼칠 때에 유토피아를 이루는 것으로 찬양했다. 구라파의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던 카톨릭 문화나 기독교 문화는 거부당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공산주의 사상으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가치를 부여해왔다. 결국1991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에 공산주의가 멸망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이 분석되기 시작했다. 규명된 원인은 인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공산주의 체제로 억압하며 제한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제 과거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유경쟁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학습하고 있다. 세계 시장과 자국에서 살아남는 노하우를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 중에 많은 여성들은 과거 일본과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외국 여성들의 경우 대개가 공산주의를 했던 국가 출신자들이다. 한국과 일본은 전쟁에 패한 패전국이었다는 원인이 있었으나 이들 공산국가들은 스스로 몰락했다. 내전을 통해 공산화 되고 난 이후 세계 시장에서 외면을 당한 결과이다.


세계는 공산주의를 하면 멸망당한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는데 한국에서는 2대에 걸쳐 친북대통령이 권좌에 앉는 것을 시작으로 공산주의자들과 친북자들이 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 좌파들이 한국의 각계각층을 점령한 결과  좌파적 성향자들이 개혁적 인물이라는 이름으로 우대를 받은 반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 그들의 작품은 냉대를 받고 사멸 위기까지 내 몰렸다.  


이제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좌우 수평을 맞추어 주는 일이며,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가치를 되찾아 주는 일이다. 인문학을 부흥시키는 것은 물론이며 좌파 성향자들에 의해 눌려 있던 각계각층의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여 제자리를 찾아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은 너무 길었다. 이미 좌파 세상의 10년 세월 동안에 유능한 보수주의 인물들은 10년이라는 세월을 분루를 흘리며 보내야 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김정일의 식탁을 배불려 주는 일이라면 세금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의 철학의 대가로 엄청난 과태료 부담만 짊어지고 말았다. 친북좌파 세상에서 잃어버린 10년 세월은 어떻게 보상해 주어야 하나? 잃어버린 10년 세월을 뒤로 돌려주어야 한다. 공직 진출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보수주의자 인재를 골고루 등용을 해 주어야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장래를 밝히는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이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밝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 사상을 외롭게 지켜낸 분들의 잃어버린 10년 세월에 대한 보상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상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