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드라마] 연애시대, 이 시대의 색고운 사랑이야기

도제조 안형식 2006. 10. 28. 19:36
아기손단풍처럼 색고운 사랑 이야기
 
근래에 들어 발칙한 드라마 한편에 정신을 쏘옥 빼앗겼다. SBS의 드라마 “연애시대”가 그것이다. 이혼한 전부부가 친구사이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연애시절로 되돌아간다는 발상이다.

참으로 발칙하고 스토리의 전개가 고소한 것이 오장육부를 살살 뒤집어댔다. 두 주인공의 마음이 엇갈려 가는 대목을 보면서 운명이 비켜갈 것 같은 아슬아슬함으로 간이 조린다.

주인공 감우성의 속이 뻔히 보이는 배짱에는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쫓아가 말리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비릿한 아픔이 위장까지 전달되었다.

손예진의 놓지 못하는 사랑에는 도무지 못 당하겠다. 손에 무엇도 안 잡힐 만큼 싸아한 괴로움의 막막함으로 그대로 허공이 된다.

비켜가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에 묶인 두 사람. 하루하루가 칙칙하게 휘감기듯 두 사람의 종아리에 감겨들며 또 하루가 지난다.

한 발자국 물러나 서로를 바라볼 때면 함께 있을 때 못 다한 사랑으로 미안함과 쓸쓸함이 교차되고 살을 저미는 아픔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저토록 처절하게 사랑하면서도 선뜻 다가가 안기지 못하는 심연의 절벽이 뭐란 말인가.

절벽 앞에 서 있는 듯 죄다 포기한 나른한 절망감은, 살아 있으나 죽은, 껍데기만 살아 있는 허망한 실존이었다. 마치 흰개미가 속을 다 파먹어 버려 껍질과 밑둥만 남아 있는 고목처럼, 어느 순간에 무너져 바스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의 아린 슬픔이었다.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다가 간신히 부여잡은 나뭇가지 하나에 명줄을 걸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오직 나뭇가지에 매달려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고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온몸의 세포로 자각하는 절망감이다.

끝 간 데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서로의 자존심 대결은 마치 뇌 속에 자리 잡은 종양처럼 두 사람의 영혼을 갉아 먹었다.

둘 중의 하나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끝이 나는 운명이건만, 둘은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며 아픈 마음과 아린 가슴에 분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분노가 일어나면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주고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침내 자학까지 하게 되었는데도, 이들은 서로가 잡고 있는 줄을 끝내 놓지 않았다.

내면의 빗장을 끌러주었던 동기가 결국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에야 은호는 동진을 향해 추슬러 두었던 감정의 빗장, 내면의 빗장을 겨우 풀었다. 하지만 동진은 결혼이라는 마침표로 은호의 늘어지는 태도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대못에 박힌 상처로 망가지고 허물어지는 허탈감에 동진이 결혼했다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몇 날 동안 은호는, 생애의 가장 아픈 아픔의 비련을 맛보았다. 현실의 아픔보다 더 아픈 것은 동진을 사랑하는 은호의 영혼이었다.

영혼의 사랑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현실의 사랑은 떠나보내야 한다는 모순의 갈등에서 은호는 무너져내렸다. 자신이 아팠던 날만큼이나 붙잡고 싶었던 날들,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 노래방의 마이크를 잡고 통곡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용렬함을 꾸짖고 영혼을 쥐어박았다.

자신의 영혼에 자리 잡고 있는 동진의 영역은 비우지 못할, 아니 비워서는 안 될 자신의 또 다른 영역이었음을 알아챘을 때, 은호는 차마 동진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동진은 자신의 숨결이었다.

마침내 다시 찾은 동진. 동진과 결혼했던 유경은 껍질만 남은 동진의 허공을 보며 갈등했다. 동진과 은호의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공유하는 권역을 가지고 영혼까지 교류되는, 헤어지면 안 될 사람들임을 알았을 때, 유경은 현실에서 비켜났다. 가지 말았어야 할 길에서 유경은 다시 돌아 나온다. 그 아픔의 상처가 얼마나 되었을까.

은호는 아침에 눈을 뜬 옆자리에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동진의 천진스런 얼굴에서 가슴이 터질듯 한 행복을 맛본다. 어떻게 해서 찾은 사람인가. 눈에 넣고 다녀야지. 오늘 저녁은 동진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에 갈비찜도 올릴거야. 여보야 사랑해.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잊은 듯 눈 감아도 난 너를
아닌 듯 돌아서도 난 너를
조금만 솔직해도 나 너를
그렇게 아파하도록 너를
이렇게 바라보도록 쓸쓸한 눈으로...

짙은 색으로 채색된 색 고운 아기손단풍 잎처럼 색고운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다.
이 가을에 색고운 사랑을 하고 싶은 목마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