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창작
시, 수필, 소설은 각각 사용하는 용어가 다릅니다. 시는 함축되어 있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구어와 한자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게 되지요. 이는 시의 특성이 함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최소한의 글을 통하여 최대한의 상상과 납득 그리고 감동을 끌어내야 하는 특성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자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수필은 풀어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어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자를 많이 쓰면 딱딱한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한자도 풀어 사용하게 되지요.
소설은 길게 이야기한다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한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 소설의 맥락에서 그 한자의 의미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하게 됩니다. 한자의 의미와 소설의 맥락이 겹치거나 절충되어 있기 때문에 한자를 도입하여 뜻을 길게 풀어주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물론 표현을 더욱 정확히 하기 위하여 한자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한자를 사용하면 이야기가 끊어지기 때문에 한자를 사용한 후에 다시 풀어내 주어야 합니다. 곧 소설에서의 한자 혹은 함축된 용어 사용은 뒷문장를 불러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집니다. 이 기법은 프로가 사용하는 고급언어사용의 기법입니다.
다음에서는 소설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조론 (뼈대 세우기)
문학, 특히 소설을 공부했다면 이 부분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플롯(plot)이라고 하지요. 여기에서는 구조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조란 그 소설의 특성을 사실상 결정하는 뼈대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것입니다. 소설은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인데요. 길게 이야기를 하려면 길게 늘일 수 있는 밑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하고 거기에 구체적인 뼈대가 필요합니다. 고무줄을 길게 늘이려면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고무줄과 기둥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요. 아무리 긴 이야기라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면 줄거리에 일관된 통일성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긴 이야기에서 통일성은 아주 중요합니다. 장편소설을 쓰면서 제각각의 단편소설을 뭉퉁거려 합쳐 놓고 페이지 수만 늘인다고 해서 장편소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이야기를 길게 써야 장편소설이 되는 것이지요. 이야기의 통일성을 놓치지 않으려면 뼈대 세우기를 잘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통상 귀납법이나 연역법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장편소설의 경우에는 귀납법적인 요소와 연역법의 요소가 복합되어 있기도 하며 잘 복합하여 사용하면 소설의 격을 신선하고 신비스러운 감동을 줄 수 있음으로 프로작가들의 작품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귀납법
통상 귀납법적인 구조(결론을 앞에 두고 1.2.3의 형태로 풀어 나가는 방법)가 소설의 형태로 가장 적합합니다. 귀납법은 경험과 사실에 기초를 두고 풀어 나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소설을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쓰려는 모든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1. 특수 명제로 결론을 세웁니다.
한국말은 소리, 뜻 및 어법의 3요소로 이루어진다.
2. 계속 특수명제로 부연 설명합니다.
가. 일본말도 그러하다.
나. 영어도 그러하다.
다. 중국어도 그러하다.
라. 아랍어도 그러하다.
마. 러시아어도 그러하다.
3. 다시 결론으로 일반명제로 강조합니다.
일반 명제: 그러므로, 모든 언어는 소리, 뜻, 어법의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한국말이라는 특수명제를 결론으로 세워 놓고 계속해서 다른 나라의 말을 특수명제로 부연설명하면서 마지막에 가서는 일반적인 명제로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주인공에게 다른 이름이 주어지지 않고 ‘나’라는 일인칭을 사용하고 있다면 귀납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가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의 일대기를 순차적으로 그려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방법입니다. 귀납법의 구조를 가진 소설은 전체적으로 가장 무리가 없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됩니다. 지극히 소설다운 소설의 구조입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 혹은 전기를 쓰는 것과 같은 구조로서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무리가 없고 읽는 독자에게도 무리가 없습니다. 아마추어 작가에게 적격인 구조입니다.
2) 연역법
소설을 보면 주인공의 회상하는 장면이나 혹은 추리나 추론을 요구하는 장면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추상적인 장면을 논리적인 구조로 풀어 서술하는 형태의 글을 연역법이라고 합니다. 이는 추리소설이나 환타지, 드라마에 적합한 구조입니다. 이성에 기초를 두고 추리되는 혹은 상상되는 이야기를 논리로 풀어나가며 설득을 강요하는 형태입니다.
연역법은 삼단논법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하면,
(가) 모든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 [대전제 : 일반 명제]
(나) 우리는 인간이다. [소전제 : 매개 명제]
(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결론 : 특수 명제]
작가가 한 사람의 주인공을 내세울 때, 즉 주인공의 이름이 따로 설정되어 있고 주인공이 내가 아닌 작품이라면 연역법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묘사되는 연역법의 기술은 작가의 상상력과 추론에 의하여 주인공의 과거를 추적하여 주인공의 현재모습을 변호합니다. 주인공이 현재 불행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왜 불행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여 독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지요. 어지간히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며 표현기법도 능수능란해야 합니다. 사실도 아닌 허구적인 사실을 사실보다 더 사실같이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조입니다.
섣불리 아마추어 작가가 연역법의 구조를 가진 작품을 쓴다면 큰 벽에 부딪칠 것이며 결국 자신은 소설가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아마추어 작가에게는 장벽이며 프로작가에게는 밥 벌어 먹을 수 있는 ‘밥벌어먹기’ 기법이 연역법입니다.
2. 서술
이야기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 하는 내용 채우기 작업에서 작가의 색채가 확실히 나타나게 됩니다. 표현의 관용구 사용이나 전치사 사용 특정 형용사 사용 등의 어구와 어법을 적용하여 내용을 채우는 작업에서 작가의 실력이나 경륜 그리고 색깔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어떤 분은 연대별로 서술해 나가는가 하면, 어떤 분은 도치법을 사용하듯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면서 회고나 현재진행형으로 혹은 추론을 통해서 미래완료의 형태를 띠는 언어의 연금술사도 있습니다.
1) 주인공과 동기화
주인공의 등장을 현재로 설정했을 때에, 주인공의 성장배경과 현재와는 아주 큰 시차가 생깁니다. 주인공의 현재가 40세라면 20세 때가 있을 것이지요. 당연히 배경도 다르고 언어구사의 폭도 다릅니다. 당시의 유행이 다르듯 유행어도 다르지요. 따라서 당시 역사를 배경으로 문화권인 언어도 당시 사용하던 언어로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작가가 주인공의 입장이 되지 않고 3자의 입장을 취할 때에는 시차의 장벽을 메우지 못합니다. 독자는 괴리감을 느끼게 되지요. 작가는 독자가 괴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시차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당시대의 언어와 문화적인 배경설명을 함께 사용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동기화라고 말합니다. 독자 중에는 그 시대의 문화권에 익숙했던 분들이 있거나 아니면 그 시대의 문화권을 이끌어 나갔던 주역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에 의하여 객관적인 냉정한 평가가 따르기 때문에 작가는 이면에 대해서도 깊이 배려해 두어야 합니다.
2) 설정
소설은 역사책이 아니며 문중의 족보도 아닙니다. 그 시대의 역사 혹은 사회상을 소개하는 것은 주인공이 어느 시대를 살았고 어떤 생각을 품을 수 있었느냐는 보충설명이지 당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상 아마추어들은 이 함정에 곧잘 빠져 듭니다. 역사책과 같이 길게 설명을 하든지 아니면 약해 버린다는 맹점이지요. 만약 역사의 한 사건이나 한 장면을 크로즈업해서 강조하려고 한다면 아주 세밀하게 해야 합니다. 물론 글로 표현하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을 눈에 보듯 세밀히 설명해 주거나 하는 정도로 구체적이지는 못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소설의 중간 중간에 한 장의 중요한 사건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이 사진을 두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통상 작가는 이 지점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합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질기고 구질구질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흥미의 도는 큰 차이를 가집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성장과정 중에서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장면을 서술한다면 그 장면 하나 하나를 한 컷의 사진으로 설정을 해 놓고 빠짐없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구체적이며 사실적으로 묘사를 했는가에 따라서 소설이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인가 아니면 수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인가가 확정이 되어 집니다. 따라서 작가는 이 장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묘사를 해 주어야 합니다. 독자는 이 장면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가에 따라서 계속 이어질 주인공의 행보를 확장 혹은 축소해야 하기 때문에 장편소설을 기대하고 쓰고 있다면 이런 호재의 장면에서는 도사견처럼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상세한 설명은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프로작가와 아마추어 작가가 갈립니다. 아마추어 작가는 표현에 대하여 옹색한 편입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얼굴이 있는데 남우세스럽게 뭐 좋은 일이라고 구체적으로 쓰나 다들 알고 있는 것인데’ 하는 생각에 작가가 먼저 부끄럽게 생각하며 넘어간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얼마나 세밀하게 작업해 주었는가에 따라서 독자에 대한 충성심이나 독자를 배려하는 친절까지도 생각하며 점수를 매깁니다. 누구나 첫 경험이 있기 마련이고 이제 첫 경험을 앞둔 독자들도 있습니다. 작가가 아름답게 표현한다고 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평가합니다.
첫 경험의 장면은 살갗이 가렵다고 느낄 정도로 쫄깃쫄깃하게 표현해 주어야 합니다.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파트너가 음부의 털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야비하게 추적해서 표현해야 합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나와 있는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지독하게 묘사해 주십시오. 이 장면을 클라이맥스가 되도록 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표현하십시오. 이 작업을 잘 해내면 작가가 다음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에 가서 묘사하는 부분이 치밀해집니다. 소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오감에 대하여 글로 묘사를 해 주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한 장면에서 오감을 다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소설은 감동의 도에 비례합니다.
소설은 손에 들면 도무지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천편일률적인 등식적 배분으로 클라이맥스를 절묘하게 배치해 두는 것은 아니나, 독자가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클라이맥스 부분이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클라이맥스로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니 좀 더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3) 클라이맥스
내용 중에 클라이맥스라고 인정되는 장면은 삶의 일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일을 클로즈업해서 세밀하게 묘사하여 작가나 독자가 ‘휴우’하고 한숨을 내어 쉴 수 있는 정도의 감동을 주는 부분입니다.
통상적으로 첫 경험이나 사고, 비극 등 주인공의 신변이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합니다. 이런 부분은 치밀할 정도를 지나 허벅지에 무엇이 치득치득 하게 자꾸 발라지는 것같이 소름이 돋을 정도의 느낌이 올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작품을 읽어 주는 독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간혹 일상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때에는 감정의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경우이지요. 주인공의 감정의 기복이나 혹은 주인공과 밀접한 어떤 조연의 감정을 클로즈업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빚쟁이를 피해 다니다가 빚쟁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고 합시다. 작가는 이 주인공을 구출해내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 쓸 것이지요. 그렇다고 빚쟁이가 순순히 물러나겠습니까? 빚쟁이가 동의할 수 있는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지요. 아니면 냅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던지 말이지요. 독자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장면을 원치 않습니다. 당당하게 맞서서 위신을 추락시키지 않으면서도 빚쟁이와 타협을 할 수 있는, 독자도 그 타협에 동의할 수 있는 묘수를 보여 주기를 원합니다. 물론 타협까지 가는 동안 구질구질하고 질긴 묘사를 필요로 하지요. 하다하다 안 되면 ‘죽사발 나게 얻어 터졌다’로 맺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작가가 묘수를 못 찾아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독자에게 판정패를 당합니다.
작은 일상의 일이나 사건을 살이 떨리는 감동으로 끌어내는 작가야 말로 성공이 보장되는 작가입니다. 이것을 작가의 혼이라고 부르지요.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작품의 내용에서는 언제나 작가의 살아 있으며 운동력이 있는 작가의 혼이 느껴지게 됩니다.
4) 작가의 의도
어떤 작가는 욕을 실컷 하고 싶은데 욕을 해댈 수가 없어서 글을 통해 실컷 욕을 하려고 소설을 쓴다는 분도 있습니다. 세상(정치권)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박쥐와 같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있는 사상의 경계인과 경제의 경계인들에 대하여 가래침을 뱉어가면서 욕을 하고 싶다. 그렇다고 혼자서 욕을 해댄다고 그런 위인들의 귀까지 들리겠느냐? ‘옳다 내가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았노니 책으로 쓰자. 소설로 써서 빗대어 욕을 직사하게 하면 걸릴 것도 없고 쌓인 스트레스도 풀려지고 또 내가 주장하고 싶은 주장에 찬동하는 이들도 생길 것이 아니겠나.’ 하고는 소설을 통해 직설을 하며 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을 펼치기 위해 필을 잡은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바르지 못한 정신세계에 충격을 주고 정신적인 문제를 문제화 시키거나 의식화 시키고 싶은 의도를 담고 소설을 씁니다. 모든 소설가의 출발은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자신합니다.
모든 소설가들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뛰어난 감수성으로 자신의 사회와 구성원들의 모난 작태에 대하여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단계를 지나면 이윽고 분노하게 되는데, 분노하게 되면 그 분노의 에너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지점이 소설가로서의 출발점입니다. 국가 사회 경제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결정물인 가치관으로 세상을 평가 혹은 비판합니다. 그 평가와 비판의 내용이 길면 길수록 그 내용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필은 날카로워지고 분노의 에너지를 가지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힘 있는 필체가 나옵니다. 절박한 정도에 따라서 죽기 살기로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쓰면서 자위를 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작가의 내면의 세계는 작품 속에서 작가가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작품을 쓰고 있느냐 하는 정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을 내세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자신의 의중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작가의 필중 의도에 따라 그 의도에 찬동하는 독자와 그렇지 못한 독자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꼭 쓰고 싶었던 작품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혼을 통해서 작가의 의도가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5) 치밀한 구성(완성도)
전체 작품의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쓰여 졌다면, 작가는 작품에 대한 완성도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초기에 설정한 시간대나 주인공의 성격에 일관된 통일성이 있는지 자칫 놓친 것이나 빠진 것은 없는지에 대하여 면밀히 검토를 하며 수정작업에 들어가지요.
문맥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어야 하고 그 흐름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풍부하던지 아니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지 할 것입니다. 곧 주인공의 성격을 규정해 주는 설명이 각 사건 혹은 중대한 강조점에서 약화 혹은 과장되었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하여 검토하며 수정해야 합니다. 이 수정작업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얼마나 치밀한지의 정도를 가늠하게 됩니다.
우수한 작품은 일관된 통일성과 함께 사건마다에 큰 감동을 줍니다. 곧 클라이맥스로 설정되어 있는 부분은 언제나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명작품은 언제나 독자와 함께 호흡합니다. 독자의 호흡을 놓치는 적이 없습니다. 독자는 그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듯 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어야 합니다. 주인공의 말 짓에도 충분히 공감을 해야 하며 그 말 짓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 라는 공감을 충분히 끌어내야 합니다. 주인공의 비극에는 주인공과 함께 독자의 눈물도 함께 빼야 합니다.
작가가 의도한대로 충분히 글을 써서 완성단계에 들어갔다면 이제는 냉정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검토해야 합니다. 이 작업이 상당히 고된 작업이지만 얼마나 고민하면서 독자에게 충실했느냐 하는 완성도를 결정해 줍니다. 혹 공모에 응모할 작품이라면 더욱 더 고민하면서 수정작업에 임해야 합니다. 작품을 선별하여 선정하는 심사위원은 최초의 독자입니다. 그것도 작품에 대하여 흠과 틈을 찾아내려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샅샅이 살펴보는 예리한 최초의 독자입니다. 과연 최초의 독자인 심사위원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져 있는지 작가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미리 추측하며 수정작업을 해내야 합니다. 심사위원은 프로작가이며 프로작가의 예리한 눈은 작품이 얼마나 프로다우냐에 따라 점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프로란 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마침내 감동이라는 동의를 끌어내는데 익숙한 필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물 하나를 가지고 묘사할 때마다 프로 같은 정신으로 임해야 합니다. 심사위원은 거기에서 작가의 혼을 발견합니다. 작가의 혼이 빠진 소설은 죽은 소설이며 끄적이다가 만 휴지통에 들어갈 습작에 불과합니다.
6) 머리말 쓰기와 제목 수정
수정작업을 통해서 작품이 완성이 되면 마지막으로 작가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깁니다. 그 말을 머리말이나 혹은 작가의 말 아니면 에필로그로 가져가는 것이지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구조로 쓰려고 했는데 저런 구조로 완성이 되었다. 라는 것이나 아니면 작가가 의도하던 대로 작품이 완성되었다거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면 그 작품에서 작가가 어떤 자세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썼는지 속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능구렁이 작가들은 꼭 하고 싶은 말은 소설의 내용 속에 넣어 두고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광고성 멘트로 때우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기교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흉내 낼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이름에 익숙해진 독자들도 완성도 높은 작품에 대하여는 기대 이상의 찬사를 보내주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곧 신인이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을 펴냈다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가슴에 책을 두게 되어 있으며 다음 소설을 기다리게 됩니다. 작가도 독자의 한 사람입니다. 작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요. 그 동안에는 훌륭한 독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지요. 자신의 작품을 냉정하게 판단할 정도의 시각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목 선정은 초기에 잡은 제목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제목을 수정할 것인지에 대하여 나름대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머리말 쓰기까지 끝이 났다면 적어도 3 개 이상의 제목이 머리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바야흐로 과연 어느 제목을 쓰면 판매고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작가는 대개 5자 이내의 제목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최근의 경향이 어떤 제목을 요구하는지에 대하여 훤히 꿰어 뚫고 있습니다. 좋은 출판사를 만나게 되면 작가가 붙인 제목으로 출판하는 것이 유리한지, 아니면 다른 제목으로 할 것인지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려 줍니다. 이는 그 출판사에서 작가의 작품을 완전히 소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출판사 부담으로 책을 내는 경우라면 출판사에서는 제목까지 일일이 지적을 하게 되어 있으며 출판사의 의도를 따르면 90% 이상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자비로 출판하는 경우에는 출판사에서는 맞춤법이나 자구 수정 정도의 일만 해 줄 뿐, 제목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습니다. 특히 제목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하면 작가와 출판사와의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도 있음으로 출판사에서는 제목에 대하여 조언을 구해도 작가가 붙인 제목으로 유도하지요. 이는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작가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판사를 잘 선정해야 하고 잘 되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야 합니다.
강조합니다.
위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자신의 작품을 자비로 출판하게 되면 출판 작가로 불립니다. 작가가 되는 길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등단한 작가이거나 출판하여 작품을 발효한 출판 작가이거나 둘 중의 하나의 과정을 거쳐야 작가로 인정을 받습니다.
작품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 작품에 대하여 평가 혹은 비판을 각오하고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발표한 이상 프로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작품을 써냈어도 발표하지 않으면 작가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작품을 공모에 응모하였으나 수상되지 못하여 등단되지 못했다면 여전히 아마추어 작가일 뿐입니다.
요즘 추세는 출판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입니다. 평생에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한 권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열망은 지식층이든 아니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열망입니다. 그리하여 습작으로 완성한 원고를 여러 번 수정 끝에 탈고하여 전혀 생소한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고 가격과 일정을 타협하여 책으로 출판합니다. 그리고 그 출판이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는 입문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비평가는 출판 작가들에 의하여 문학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비평가는 출판 작가들의 열심에 의하여 문학에 대한 열의와 꺼져가는 출판업계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왕 쓴 원고라면 출판하기 전에 작가의 혼을 불어 넣어서 작품을 일어서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치밀한 구성과 지긋지긋한 질긴 표현력으로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으로 길을 들인다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될 것입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을 놓고 그 사진의 정경을 빠짐없이 글로 표현해 내는 작업을 하는 버릇으로 고착화 시킨다면 어떤 작품을 쓰던지 작품성을 인정받을 것입니다.
많은 프로 작가들은 한 장의 사진과 같은 풍경을 묘사하기 위하여 자신의 글에 등장하는 장소에 가서 텐트를 치고 씨름을 합니다. 이외수 작가는 한 겨울의 추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앉아 있다가 벌벌 떨리는 몸으로 나와서는 얼마나 매섭게 추운지에 대한 묘사를 해냈습니다.
프로의 정신. 자신의 작품에 혼을 불어 넣기 위해 프로작가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소멸되어 가는 시간을 정지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노숙자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3개월 동안 노숙자와 함께 노숙자로 지낸 소설가도 있습니다. 어떤 여성 르포 작가는 자신의 책에 등장하는 성매매여성들과 친밀해져서 언니 동생으로 호칭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되기까지 수도 없이 집창촌을 드나들며 집창촌의 실태를 빼곡히 글로 표현했습니다. 만약에 그 내용을 현직 성매매여성이 썼다면 더욱 신랄했겠지요. 그렇다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성매매를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작가의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실을 사실처럼 써야 한다는 프로정신은 여성르포작가의 경우와 같이 경험이라는 벽을 만나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추론의 형태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보다 더 사실답게 기술을 해 나가기 위해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데요. 그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진력소모 또한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한계를 뛰어 넘는 길은 치밀한 상상력이며 그 상상력을 그대로 원고지에 적어 넣을 수 있는 필력뿐입니다.
적어도 저명한 소설의 대가들은 작품 하나에 진력을 다했고 작품 하나를 구로하며 자식을 낳듯 낳았습니다. 거저 만들어진 작품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질기고 전력을 투구하는 프로근성(정신)만이 대작을 탄생시키는 법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한 컷 한 컷의 사진을 놓고 그 사진의 전경을 빠짐없이 글로 표현하는 버릇. 이 버릇을 길들이십시오. 끊임없이 담금질을 하십시오. 정상에 서 있는 대작가들이 작아 보일 때까지 담금질을 멈추지 마십시오. 오늘 정상에 서 있는 작가들은 최소한 붓을 서너 번 씩은 꺾었던 이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나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명심하시고 자신의 붓을 담금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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