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시 모음

능금씨앗

도제조 안형식 2009. 9. 23. 14:58

능금 씨앗


하늘 바람을 타고

흘러내린 능금나무 씨앗 하나이

내 심장에 살폿 담겨

싹을 틔웠구나


작은 날의 작고 어여쁜 꿈

하나 둘 나래를 펼 때

가지를 뻗어

잎을 만들어냈구나


잘 자라주렴

기도하는 마음

돌보는 손으로

물을 주고 손길을 주었어


이제 잎이 무성하게 자라났구나

네 몸으로 작은 그늘이 만들어지면

그 때 네 잎사귀에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실연의 아픔이 예리하게 살을 저미는 날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눈이 얹혀 있고

파랗게 질린 몸통에는 겨울이 둘렸다

너도 시리니, 나도 시려


,

흰꽃 잎이 바람에 나부끼며

눈꽃이 되어 떨어지는구나

이제는 말하고 싶어


들어주렴

지난겨울 춥고 시렸던 아픔의 이야기들을

긴 겨울을 이겨낸 길고 긴 이야기들을

꽁꽁 감추어 두었던 그 비릿한 이야기들을


지난여름

태풍이 휩쓸어 갔던 그 밤

하늘이 찢기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던 모진 그날 밤



들려주렴

슬픔의 이야기들을

모진 태풍을 온몸으로 받으며

이겨냈던 그 긴 이야기들을


내 안에 너, 네 안에 나

오랜 세월 마주하며 길고 긴 설움의 이야기이며

기쁨과 환희의 노래를 함께 불렀던

내 영혼아


말없이 들어 줘 고마워

비밀 이야기를 들어 줘 고마워

흘린 눈물을 하나 둘 주워 모아

탐스런 능금을 내어 주니 고마워


한입 가득 베어 문 능금에는

영혼의 열매이며

세월의 열매이며

추억의 열매이며, 그리고

'아침이슬·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09.09.23
소쩍이 우는 밤  (0) 2009.09.23
해금이 울어 예는 밤   (0) 2009.08.17
가끔 우리는 자주  (0) 2009.06.19
은반위의 세레나데  (0)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