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통일론에 대한 코드적 접근
1. 박노자는 공산주의의 전도사
박노자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산주의 사멸(1991년) 이후,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며 2006년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나를 배반한 역사>,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 열패의 신화> 등이 있다
(1) 박노자의 오만과 붉은 사상
1) 박노자는 제2의 레닌
박노자는 현재 홍세화, 한홍구와 함께 삼대트로이카를 결성하고 외면상으로는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며 강정구의 천막강의에 동참함으로 강정구 구하기에 나섰다. 내면으로는 좌파 교수들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의 사상적 자유와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친북노선을 따르고 있는 제2의 송두율이다.
박노자의 책과 논문 등의 글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상은 레닌-마르크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글에서는 두 가지의 특징이 나온다. 첫째는 레닌에게서 영향을 받은 미국에 대한 지독한 경계심과 증오이며, 둘째는 마르크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자본주의의 해체이다. 그가 지표하며 표현상 지향하고 있는 평화사상은 미국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파멸이 완성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주장된다. 이 주장은 레닌과 마르크스가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주장의 복사판이며 공산주의가 멸망직전까지 골(goal)로 가지고 있던 지상목표 중의 하나였다.
박노자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공산주의자 중 가장 색깔이 짙으며, 그 맥은 북한의 주체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는 박노자가 한국학을 공부할 때에 자신의 성향에 따라 공산주의적 북한학은 보존의 가치를 가진 학문으로, 자유민주주의적 남한학은 척결의 대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박노자는 학자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의 혁명주의 사관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의 찬양자이다. 그가 한국인으로 귀화한 목적은 남한을 통해 공산주의를 설파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박노자는 마르크스-레닌의 혁명 사상을 원천으로 삼고 있다. 박노자의 글에는 마르크스의 변증법과 유물사관이 드러나고 있으며, 레닌과 마르크스가 프랑스 사회주의를 채용하여 레닌-마르크스 사상을 발전시킨 원류를 따르고 있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사상과 학설의 체계에는 19세기의 3가지 정신적 주조(主潮)가 결합되어 이론화 시킨 것으로 보았다.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및 프랑스의 혁명적 학설과 결합된 프랑스 사회주의를 그 원천 또는 구성부분으로 채택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완성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세밀히 분석해보자. 마르크스주의의 체계에는 3개의 기둥이 놓여 있다. 첫 번째 기둥은 G.W.F.헤겔, L.포이어바흐 등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과 유물론을 차용해 세운 기둥이다. 두 번째 기둥은 영국의 고전경제학 중, D.리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차용해 왔다. 마지막 세 번째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채용하여 이를 수용하고 이론으로 체계화 시켰다. 레닌은 이렇게 탄생된 마르크스주의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약간의 비판을 통해 혁명논리로 발전시키고 이 논리로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1917년 10월 혁명)에 성공하여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논리는 공산주의의 강령으로 채택되어 지구촌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레닌은 경제학의 전체를 근본으로부터 개조하는 일, 즉 역사. 철학. 자연과학. 노동계급의 정책과 전술 등, 사회의 전 분야에 유물론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분석했다.
마르크스의 논리적 방향을 보자. 마르크스는 자연과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한다는 변증법적 견해를 사회구조에 적용하여 등식으로 풀었다. 다음으로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는 일정한 반복이 있다는 일반적 법칙을 설명하는 유물사관(唯物史觀)으로 가지고 가서 여기에 공산주의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심었다.
마르크스는 유토피아적(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도덕적 감정을 근거로 삼았던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것 가지고는 사회적 변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마르크스는 경제학의 논리를 차용하여 소득차이에 따라 구분되는 사회의 계층을 계급으로 나눠 갈등구조를 만들었다. 계층을 계급으로 구분하니 당장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이라는 맞대결의 갈등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마르크스는 갈등구조를 필연적 구조로 만들기 위해 노동의 가치를 크게 부각하고 잉여가치론을 살포했다. 생산자가 노동시간을 늘임으로 인해 노동자의 잠재경제력 부분까지 착취하는 이중착취라는 잉여가치론의 살포는 노동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나머지 시간이란 가정생활을 뜻한다. 노동이란 가정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뿐, 노동이 가정생활을 뛰어넘는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만약 자본주가 임금을 이유로 가정생활까지 위협한다면 파업으로 맞설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 파업의 당위성이 부여되고 있다.
잉여가치론으로 인해 파업의 정당성을 부여하여 인정을 받은 마르크스는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그것은 파업으로 인한 결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필연적 붕괴를 초래하고 그 위에 노동자 중심의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설명원리로 삼고 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을 분석장치로 삼아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힘으로써 그 필연적 멸망을 증명하는 데에 반생을 바쳤다.
박노자는 레닌-마르크스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 받은 제2의 레닌으로서 근본적 공산주의자이다.
2) 박노자의 특징
박노자의 글에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멸망을 소원하고 있다는 항거정신과 둘째는 대한민국에 레닌-마르크스 주의를 파급하는 일이다.
박노자는 한국인의 정신을 미국을 사대하는 사대주의와 미국의 우월주의에 편승하여 미국의 제도와 정신을 모방하는 열악한 정신으로 폄하한다. 이어서 한국인의 주체사상을 가져야 할 것을 주장하며 동시에 평화 통일을 주장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자신의 논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의 징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 할 것과 병영문화의 비애를 들추어내며 선동에 열심을 내고 있으며 한국의 정신문화를 비난하는 일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열정을 뿜어내고 있다. 박노자는 자신의 논리에 흡수되어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로부터 비판정신이 살아 있는 학자로 추앙을 받으며 좌파들과 소위 민주화 세력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박노자의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소개하고 있는 서평은 박노자를 대단한 학자로 평가한다. 어느 정도로 박노자를 찬양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 서평이 박노자의 책은 물론하고 한국의 젊은 층들, 특히 군입대자들과 군 입대를 앞에 두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주목하며 살펴보자.
"동서양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와 성역 없는 비판으로 박노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두 번째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 중략 -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지배자들의 담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지배와 복종의 권력 관계가 얼마나 야만적인 모습을 띄고 있는지, 사회가 주입해온 '애국주의' 담론이 얼마나 많은 연대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지를 말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폭력의 고통이 '남'의 아픔 아닌 '나'의 아픔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지은이의 목소리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전쟁 이외에 자본주의 세계에 내제돼 있는 폭력 장치들은 무수하다. 예컨대 사회적 자원(신분상승, 위신)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인간의 폭력화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제도적 폭력의 형태다. 학교에서의 성적 경쟁도 '남들은 다 잠재적인 적'이라는 폭력적 의식을 주입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하는 대항적인 스포츠도 경쟁이라는 형태의 규범화된 폭력을 내면화한다.
운동이야 신체, 정신적으로 필요하지만, 왜 꼭 남과 싸워서 승패를 가리는 운동을 정상적인 것처럼 가르쳐야 하는가? 몸의 움직임 자체와 과정을 즐기고 경쟁을 생각지 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회는 신체적 경쟁을 당연지사로 가르칠 뿐 아니라 대자본의 돈벌이인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국가 대 국가의 상징적 대항전을 전 지구적 볼거리로 만든다. '싸워서 이긴' 자가 영웅이라는 허구를 어릴 때부터 진리인 양 착각하게 된 사람들이 폭력을 아파하는 어린아이의 본성을 간직할 수 있겠는가? 우리 팀이 이기기 위해 코치의 말을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는 제도권적 스포츠의 법칙에 익숙해진 사람, 즉 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당장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본능화된 사람이라면, 저 놈을 쏘라는 장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높을 수 있을까? - 본문 89쪽"
귀화인 박노자가 과연 대한민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대한민국의 문화는 귀화한 이국인이 뼈골 깊이 비판할 수 있는 정도로 얕은 문화권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문화권의 각 분야별로 형성되어 있는 양식들은 수많은 갈래로 형성되어 있고 각 갈래마다 무수한 줄기가 뻗어내려 오늘의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가 되어 있다. 적어도 한국인의 정서를 알지 못하고는 지극히 단편적인 것이라고 해도 비판을 할 수 없다. 이는 그 비판에 대해 비판이 뒤따라 붙기 때문이다. 겨우 한 꼭지에 불과한 내용을 기초로 한국인 전체의 정체성을 단정한다거나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라고 발표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외국인이 한국학을 전공했다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한계 때문에 학적인 단정 혹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한국인이 한국인은 이렇다 하고 내리는 결론과 외국인이 한국인은 이렇다 하고 내리는 결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학문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삶의 자리, 혹은 역사의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비판은 그것이 과거의 궤적이 되었든 현재의 행적이 되었든 간에, 현재라는 삶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각은 비판이 비난으로 흐르지 않도록 중심무게 추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문화란 역사가 지난 발자취이기 때문에 문화를 비판하는 것은 반드시 역사를 살펴 주어야 하고 그 역사에서 이 문화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정서와 그 시대의 가치까지 판단해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작업은 적어도 3대의 문화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조상을 판단하는 일과 남의 조상을 판단하는 일은 근원부터 다르다. 학자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충분한 근거에는 자신의 경험과 정서도 포함되기 때문에 역사의 허와 실을 따져 주어야 하고 자신의 주장은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을 비난하기 위해 쓴 책, 한국인의 고도로 절제되어 있고 훈련되어 있는 순종의 미덕과 인내력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도 되지 않고 비판과 비난 일색의 이 책이 한국인이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에서 인정을 해 주었다니 기가 막히다.
박노자가 러시아의 문화를 비판하고 러시아의 역사를 비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귀화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의 정서나 한국인의 문화적 배경이 없는 박노자의 시각으로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난도질하는 행위와 비난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주고 있는 학계와 사회는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박노자로 인해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와 미덕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박노자는 한국인의 정서와 정신이 무가치 한 것이며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다. 레닌의 혁명이론을 가슴에 담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시각이다. 박노자가 한국인을 귀화하고 한국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면 오산이다. 박노자는 공산주의를 한국에 전파하기 위해 귀화한 자에 불과하다. 그의 한국학에는 조금도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 선동적인 비난의 어조와 지극히 저급한 공산주의 혁명이론이 결합되어 레닌의 추종자일 뿐이다. 그의 글에 의미를 두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학자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인은 못났고 불쌍하며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니 고통을 받아도 싸다 하는 한국인이야 말로 심히 불쌍한 자들이다.
모름지기 학문이란 비판의 정도가 있어야 하고 그 비판을 통해 학문이 발전되는데 기여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문이란 비판과 비평을 하나의 단어로 취급하고 있으며 반드시 그 책, 혹은 그 주장이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인지의 여부와 어떤 영향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하여 서술하게 되어 있다.
한국인을 비난하고 있는 박노자의 책을 잃고 그 내용에 영향을 받아 같은 한국인을 있는 대로 씹어대는 책이라면 이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책이다. 이따위의 책이 학문에 무슨 기여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2)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2”
박노자의 이 책은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한민국을 열등한 국민으로 묘사하며 미국 그리고 전통에 항거하지 못하고 있는 민중에 대한 성토와 비난으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는 대한민국의 정신과 전통성을 보호하고 보존해 주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 특히 사상과 이념에 관한 내용의 책에 대해서는 그 내용의 정도에 따라 안보적인 차원의 관점에서 냉철히 판단해서 가치를 평해주어야 한 입장에 놓여 있다. 문광부에서 박노자의 책이 레닌주의를 답보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내용이 공산주의의 원론적 시각으로 접근되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가? 한국민의 전통성과 한국인의 정신 그리고 사상에 대해 레닌의 시각으로 비판해대며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박노자가 물고 늘어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비난은 한국의 구조로부터 노동자까지 총 망라하면서 전통성 거부와 체재전복까지 선동하고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과연 한국은 죽어버린 러시아 공산주의자에 의해 해부되고 비난 받아야 할 만큼 수치스러운 국가이며 정신인가?
한국인의 사상과 정신을 공산주의화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귀화하여 본격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레닌주의자에게 비난을 허락하고 이에 더하여 국민이 읽어야 할 우수도서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인가?
박노자의 책은 목차부터 섬뜩한 선동문구로 채색되어져 있으며, 학문적 가치가 전혀 없는 선동적인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1) 목차
(당신들의 대한민국 2)
서문· 세계화의 향연,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자들
1부 / 한국사회의 초상
일상 속의 권위주의
한류, 자랑스럽기만 한가 / '대한 남아'의 멍에 / 제복을 강권하는 사회 / 성형수술, 혹은 욕망의 노예화 / '개미허리'의 굴레 / '도덕'은 지배의 위장술인가 / 10대는 키스하면 안 되나 / 사회의 첫 경험 '알바' / 체력이 국력이다? / 부끄러운 짝사랑
숭미(崇美)주의에 희생된 예수
대학 영어 상용화는 국제 표준? / '유일사상 체제'의 그늘 / 우리도 한번 미국인처럼? / 다시금 희생된 예수와 성모 / 하화중생(下化衆生)이 없는 한국 선(禪) / 일본 승려 우치야마의 '죽을죄'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
'학력 과잉'이라고? / 마음을 파괴하는 사회 / 30여 년 전을 생각한다 - 전태일과 시간강사 / 한국 학계에서 벼슬을 박차기 어려운 이유 / 교수라는 이름의 '황금 우리' / 한국 대학 - 착취 공장이자 지식 시장의 명품 백화점
2부 / 병영국가 대한민국
합리화된 폭력의 사회
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증 / 너무나 비슷한 두 지옥 / 유승준을 보는 우리의 일그러진 눈 / '국적' 마녀사냥을 중단하라 / 이회창 아들과 민중의 아들 / 폭력에 대한 또 하나의 역사적 성찰
진정한 강국은 무엇인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 데자뷔, 어디서 본 듯한 맹종 / 한국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참을 수 없는 허약함 / 용미(用美)론, 위험천만한 허구 / 극미로 가는 더 큰 길 / 유일 초강대국 영원할까 / 보수 정치권이 '반국가 단체'인 이유
3부 / 또 다른 대한민국
이방인들의 나라, 대한민국
'노동' 빠뜨린 우리의 역사 왜곡 / 외노(外勞)인가 외노(外奴)인가 / 자본 세계화...
2) 책의 댓글에 달린 박노자에 대한 찬사.
▼한국인이자 세계인, 박노자
얼마 전에 방송한 <키워드별로 선정한 올해의 책>편이었다.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뒷 편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현재 그가 머무르고 있는 노르웨이, 그의 고향인 러시아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담고 있다. 아무리 한국학 교수라지만 이 책의 글을 보면 한국의 역사에 대해 고대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박노자의 해박한 지식은 토종(?) 한국인들이 울고갈 정도다. 노르웨이를 비롯하여 사회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있는 북구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을 제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제3세계의 고통에 기반해 있음을 말하며 한계도 밝히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 글을 통해서 미국에 대한 비판, 민족을 뛰어넘은 연대의 정신 등 우리에게 던지는 귀중한 메시지들이 있지만 북한에 대한 그의 글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체제 경직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도 그렇다고 북한이 후진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를 밝히는 박노자를 보면서 진정한 한국인이란 국적이나 민족의 허울을 벗어던진 세계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전 권보다 확실히 저자의 대안과 전망이 많이 나타나 있고 재미있는 건 글투가 좀 더 전투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첫 권에서는 다소 온건한 말투로 사회를 재인식하게끔 하지만 상처를 드러내놓고 치료하지 않는 격으로 대안이 부족했었다. 한 마디로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번에는 좀 더 격정적으로(어디까지나 전 권에 비해서 말이다) 사회를 해부해 놨다.
노자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아프다. 정말 이 나라가 요 꼬라진가...하고 한숨이 나온다. 게다가 노자가 너무 이상적인 것 같아 그것과 지금 현실 간의 메워야할 간극이 너무 큰 것 같은 느낌에 더욱 절망적이다. 사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불법과 편법을 서슴치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양심이든 뭐든 일단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내가 노자의 책들을 비롯하여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쳤었지만 원하는 대로, 좀 더 이상에 가깝게 세상은 돌아가질 않는다. 오히려 점점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러한 현실을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가슴 아픈 책이다. 뭐 지금은 무뎌져서 거의 체념에 가까운 상태이지만 그러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서 무지에 가려졌던 현실을 직시하고 나 하나라도 제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다.
▼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강함은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성숙된 분위기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름'을 원천봉쇄하는 국가보안법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제를 만들 생각도 안 하는 한국 정치인들은 과연 한국을 진정한 의미의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규율국가를 이상시하는 그들은 이념적으로 일제의 '부국강병'이상으로 진전한 적이 있는가. '반국가 단체'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이다. (167)
▼ 외세 침략과 같은 외부적 모순들은
박물관의 전시에 반영되지만 '우리' 역사의 내부적 모순들은 주로 은폐된다. 예컨대 '민족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는 불상의 조성이 사찰 노비의 강제된 노동과 국가라는 폭력 조직의 보시로 이루어졌다면 그건 부처의 가르침으로 보아 심각한 모순이다. 그러나 박물관은 비판의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름다운 우리 역사'는 감상용이지 반성용이 될 수 없다.
위의 글들은 박노자의 붉은 사상에 대한 분별력이 약한 한국의 젊은층들이 박노자의 책에 반응을 하며 남긴 글들이다. 박노자의 이 책은 문광부에서 추천한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박노자의 책을 우수도서로 판정하고 국민에게 추천한 대한민국 정보인 문광부의 식견도 의심스럽거니와 박노자의 글에 대하여 반응하는 청년들의 사상과 이념도 붉다. 모름지기 사상이란 책을 통해 전파되거니와 붉은 사상이 통제되지 않고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널리 퍼지고 있음은 심히 우려할 만한 수준에 와 있음을 입증한다. 한국인의 사상은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다.
2. 참을 수 없는 박노자의 선동
1) 대학의 문화는 대듦에서 찾아야 한다는 박노자
연합뉴스의 김승욱 기자는 창비 가을호(통권 137호)에 실린 박노자의 글을 평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다루었다. "박노자, 저항정신 실종 한국 대학사회 비판"이라는 제하이다.
"'이 라운지는 이명박 교우님의 고귀한 뜻과 정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팻말을 보자마자 한동안 그냥 멍하게 서 있기만 했다"
박 교수는 "1991년 고려대에서 언어실습 과정을 수료할 당시 고대는 신라사 강의와 향가ㆍ시조관련 수업부터 안암골 뒷골목에서의 막걸리 폭음과 지하 운동권 모임까지 지적도전과 '대듦' 그 자체로 느껴졌다"고 회고하면서 그러나 오늘날 고려대를 포함해 신자유주의에 물든 한국 대학사회에서 저항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많은 대학처럼 기업의 기부를 유치해 건물에 기업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해도 현역 정치인의 이름을 딴 대학 라운지라니? 정치인 이명박 교우를 혐오하는 교직원이나 학생도 있을 텐데 이들에게 '이명박 라운지'를 보면서 사는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박 교수는 또 2005년 고려대가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일과 2006년 고대 재학생 7명을 출교 조치한 것도 대학 저항정신의 실종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건희가 경영자로서 라면 모를까 철학자로 알려진 일이 없음에도 '정당한 대듦'이라고 봐야할 학생들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폭풍을 불러왔으며 시위학생들은 너무나 아프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2006년 4월 보직교수들의 귀가를 물리적으로 제지했다는 이유로 출교 조치된 재학생 7명 가운데 6명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반대시위에 가담한 경력자였다는 것. 박 교수는 "출교당한 7명 중 6명이 바로 이건희 명예박사학위 수여 반대시위에 가담한 경력자였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는 이어 자본에 포섭된 대학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거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행위 자체를 성공 내지 명예로 여기는 듯한 눈치"라고 개탄했다.
박 교수는 "현실적 힘의 도덕적 정당성이나 사회ㆍ정치적 함의에 대한 고민의 싹이 '대기업의 투자를 받을 만한 명문대 학생의 신분'에 대한 자긍심에 깔려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그는 "'대듦의 정신'의 정신이 증발되는 날에는 관악골도 신촌골도 안암골도 죽고 만다"며 서울의 명문대보다 학벌구조에서 불이익을 받는 지방대에서 저항의 흐름이 싹틀 것으로 예측했다.1)
박노자가 말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문화는 관악골, 신촌골, 안암골에서 폭음에 절어 기성세대들에 대한 반항과 지하운동권 모임을 통한 저항을 대학사회의 지식으로 말하고 있다. 학생들이 주도하고 학생들에 의한 저항정신이 한국사회의 정신적 동력이라고 말한다.
고대의 성공한 동문으로서 후배 양성을 위해 기부를 한 이명박 씨의 선한행위가 영원한 공산주의자이며 영원한 이방인인 박노자에 의해 다만 추악한 가진자의 사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세계1위의 반도체 생산국으로 끌어 올린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 대한 박노자의 맹렬한 증오심은 그 정체가 무엇인가? 한국의 대학은 특성이 있다. 법관은 고대, 의사는 서울대, 외교관은 연세대, 이공대는 한대라는 특성이 있다. 이는 출신자들의 분포가 그만큼 유능한 인재를 배출해 냈고 한국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증표이다.
특히 삼성은 고대출신들을 우대하고 있으며 고대출신들은 삼성에서 중요한 구성원들이 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에서는 이건희 삼성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대기업의 직원으로 채용되는 것이 심히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도 반영되어 있다. 대학에서 재벌총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 때, 이건희 삼성회장에게 걸 맞는 감사의 표시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일밖에 없다. 대학 당국의 입장에서는 이를 통해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더욱 밀접한 연결고리를 갖는 것이며, 삼성에서는 고대에 삼성장학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다. 누구든지 특히 한국인은 성공을 하게 되면 사회와 국가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기과시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서상 본능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8.15 해방을 거쳐 4.19를 경험하고 6.25 동란을 거치면서 한국인은 그야말로 생존과의 질긴 싸움을 해야 했던 피 빛 과거가 있다. 그것은 그대로 한이 되어 한쪽으로는 생존에 대한 전투적 삶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측은히 여기는 측은지심이다. 먹고 살기 위해 죽도록 싸우며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에는 악으로 살았던 한국인이다. 다행히 박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선견지명으로 산업화와 근대화에 총력을 다한 결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6.25 동란으로 인해 사상자만 400만 명이며, 이산가족이 1000만을 헤아렸다.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석기 시대인처럼 움집을 짓고 살았다. 꿀꿀이 죽과 옥수수죽을 배급받아 겨우 목숨을 연명하던 대한민국이 전쟁 후 50년 세월 동안 악으로 버티며 살았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달러를 벌어 들였다. 대통령이 뚫어 준 돈줄을 따라 사막의 땅 중동에까지 가서 악착같이 달러를 벌어왔다. 개인에게는 종자돈이 되어 가난을 털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국가는 그 달러로 경제부흥을 일으키는데 사용했다. 박정희 정권은 중동에까지 가서 벌어들인 국민의 땀과 피를 헛되이 쓰지 않고 고스란히 국가 발전에 쏟아 부었다.
이제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고 자식들을 잘 길러 놓은 자수성가 세대가, 자신들이 못 먹고 못 입고 악으로 버텨내야 했던, 가난의 시절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이들의 눈에 들어 온 것은 가난하나 최선을 다하며 공부하려는 학생들이다. 하여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에서 아낌없이 떼어내 돕는 것이다. 재벌은 재벌답게 돕고 콩나물 장사는 콩나물 장사답게 도왔다. 못 먹고 못 입고 시절, 못 배웠던 것이 한이 되어 그 한만큼은 자식세대에게 물려 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평생 모았던 땀과 피를 바쳤다.
박노자는 이런 한국인의 정서를 전혀 모르는 채로 레닌과 마르크스의 주장을 떠벌리고 있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인심도 좋다. 이런 자를 귀화자로 받아들이다니 말이다.
2) 홀로코스트와 미국의 핵공격을 대비시키는 박노자의 악랄한 선동
박노자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것은 홀로코스트 산업화에 대한 이해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박노자는 핀켈스타인의 “홀로코스트 산업”의 추천의 글을 통해 이스라엘을 나치의 홀로코스트(인종 대학살)로 인한 희생자 집단이라는 탈을 쓰고 미국의 불평등 무역과 친미독재적인 독재 권력을 방조하며 다국적 기업의 착취와 환경파괴에 의한 제3 세계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자본주의에 편승한 범죄국가라고 비난한다. 이어서 박 교수는 인류 문명이 환경파괴의 홀로코스트나 미국의 핵공격에 의한 홀로코스트로 인해 멸망당하기 전에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를 본격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이어 “‘홀로코스트 신화’와 같은 허구적인 담론을 통해 이념적으로 뒷받침되는 이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은, 바로 중심부의 패권주의자들이 여태까지 만들어낸 온갖 신화들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다.”라는 말로 미국의 역할에 대해 패권주의로 규정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한 적개심과 증오심을 드러내고 있다.2)
3.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에 대한 비판
(1) 한홍구의 수평을 잃은 사관에 대한 분노
1) 대한민국 사(史)1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1권 목차
머리말/역사를 보는 자신의 눈을
1부 승리의 짜릿한 감격은 없었다
단 한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유산된 민주혁명
왕정은 왜 왕따 당했나/입헌군주제는 논의와 공화제의 도입
대한민국의 법통을 말한다/다시 생각하는 임시정부의 정통성 계승론
태극기는 정말 민족의 상징인가/외세의 의한 탄생과 파란만장한 역사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인가/단일민족 신화의 허상
'장군의 아들', 신화는 없다/황당한 그러나 미워하기 힘든...
2부 우리는 무덤 위에 서있다
민주국의 그림자/대한민국의 교과서?
'친일파'에 대한 명상/일재잔재 청산의 몇 가지 편향에 관하여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고문치사로 본 친일과 군사독재의 계보
우리는 무덤 위에 서있다/민간인 학살, 그 '죽이는 이야기'
'박멸의 기억'을 벗어던지자/민간인 학살, 그 '죽이는 이야기'
3부 또 다른 생존방식, '편가르기'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똥과 된장'만큼 다른 수구와 보수의 차이
누가 '좌우대립'이라 부추기는가/만경대 방명록 소동
딱지는 달라도 수법은 의구하네/다시 도진 '사회주의 모함' 병
수시로 되살아나는 연좌제 망령/조선시대도 이렇지는 않았다
기구한 참으로 기구한/분단이 할퀴고 간 독립운동가 집안의 가족사
4부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맥아더가 은인이라고?/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
정전협정의 '저주 받은 유산'/대미 예속의 강화, 이남의 군사주의화
주한미군, 뻔뻔할 자격 있다?/사실상의 치외법권, SOFA의 역사
반미의 원조는 친일파였다/후천성 반미결핍증의 웃기는 역사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광화문 촛불시위 거리에서 느끼는 감격
5부 병영국가 대한민국
찬란한 '병영국가'의 탄생/'신성한 국방의무'는 어떻게 시작되고 유지되었나
그들은 왜 말뚝을 안 박았을까/아직도 요원한 군사문화로부터의 해방
이제 모병제를 준비하자/국민개병제 아닌 '빈민개병제'
정약용도 두손 두발 다 들다/병역기피의 사회사1
상아탑은 병역비리탑?/병역기피의 사회사2
2) 대한민국 사(史)2 (아리랑 김산에서 월남 김상사까지)
목차
1부 평화를 사랑한 백의민족?/ 그 감춰진 역사
호떡집에 불난 사연/ 반중국인 폭동과 화교들의 수난
학살은 학살을 낳고…/ 결코 참전하지 말았어야 할 베트남 전쟁
누가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가/ 베트남 파병의 대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님께/ 마음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당신!
2부 박정희, 양지를 향한 끝없는 변신
기회주의 청년 박정희! / 남자의 변신은 무죄?
동네보스, 왕보스에 투덜대다 / 박정희와 한-미관계
독재정권이 더 악랄했다 / 서대문형무소, 일제의 만행만 기억할 것인가
빨갱이에게도 인권이 있다 / 강제전향의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 '비전향 장기수'
3부 김일성이 가짜라고?
미완의 '아리랑'을 위하여 / 잊혀진 혁명가 김산의 발자취를 찾아서·1
'아리랑'의 최후를 아는가 / 김산의 발자취를 찾아서·2
'김일성 가짜설' 누가 퍼뜨렸나 / 이남사회를 지배해온 터무니없는 이야기들
"일제 순사가 돼지처럼 꿀꿀" /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든 보천보전투
가랑잎으로 압록강을 건너시고… / 식민지조선을 강타한 '김일성 전설'
4부 군대의 역사, 병역기피의 역사
거지 중의 상거지, 해골들의 행진 / 이승만과 우익청년 테러집단의 '국민방위군 학살 사건'
'녹화사업'을 용서할 수 있는가 / 프락치짓까지 강요한 가장 비열한 국가범죄
소집해제 대상 '예비군 제도' / 예비군은 우리의 국가안보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
인민군도 무작정 처벌 안 했다 / 다시 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역사
5부 쇠사슬에 묶인 학원, 그리고 지식인
학교가 원래 니꺼였니? / '개인왕국'으로 전락한 비리사학의 역사적 뿌리
이젠 개천에서 용 안 난다 / 대학입시, 갈수록 약화되는 계층 이동의 기능
자기성찰, 하려면 조용히 하자 / 반성의 계보학, 그 요란함에 대하여
일제시대엔 떼먹고 변명 안 했다 / 만주동포 의연금 부정 사건과 숨겨진 야담들
6부 역사를 통한 세상읽기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 나이에 관한 역사적 명상
'자객열전'에서 배운다 / 조양자의 눈물을 미국에 기대할 수 있을까
신문고는 원래 '폼'이었다 / 군대 시절 소원소리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 앞 대고각
서울, 40년 전부터 만원이었다 / 서울 변천사에 대한 서울 토박이의 넋두리
3) 대한민국사(史)3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목차
반전의 드라마
1부 똑바로 살아라-변절의 역사, 변질의 역사
2005년의 박정희, 박정희의 2005년/그를 이제 편안히 장사지내주자
범사에 감사하라, 군국 소년 한승조/한국 우익들, 독도 문제로 “음메 기살어”를 외치고 있는데
허공을 가른 명패의 슬픔/이재오, 김문수 의원은 왜 ‘오버’를 거듭하는가
남한 주사파의 비극과 희극/아무나 붙잡고 마녀 사냥의 ‘주사’를 부리지 말라
뉴라이트는 ‘품성’을 갖춰라/‘업그레이드 자유주의 486’은 수구 뺨치는 소아병 수구행각
2부 과거 청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60년 만의 대청소가 두려운가/진정한 과거 청산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
‘국가 위의 국가’를 벗긴다/정보기관의 과거청산은 왜 중요한가
죽은 자의 영혼까지 강제징집하는 군사시설 야스쿠니/전범으로 사형당한 조선인 23명은 천황의 품에서 평화로울까
한, 일 수구파들의 공동성폭행/망언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자들이여
‘우리는 국정 교과서가 그리워요’/우리는 언제쯤 깨어 있는 역사를 가르칠 수 있을까
3부 ‘탄핵시대’의 수구와 진보
마술피리 소리가 들리는구나/‘1920년대 이승만 탄핵’과 정반대였던 2004년 3월
배꼽을 뽑아 그들에게 던져라/발랄한 보복과 유쾌한 응징의 정치풍자 변천사
‘강도당한 지갑’을 기억하라/민주노동당의 성과는 소박하기 짝이 없다네
판사님, 판사님 길들여진 판사님/가장 깨끗하고 똑똑했던 사법부가 가장 처절하게 망가진 이유
‘관습형법’는 더 죽여주셨다/‘사인무지’국방경비법, 법관님들에게는 ‘관습적으로’ 법이더라
4부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 간첩의 추억
잡고 싶었으나 못 잡은 간첩/기대에 비해 너무나 ‘시시했던’ 그들(간첩의 추억1)
간첩은 오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재일동포 간첩사건이 급격히 늘어난 사연(간첩의 추억2)
유신정권에 피맛을 알려준 최종길 교수 사건/80년 광주학살의 씨앗 뿌려지다(간첩의 추억3)
‘간첩’도 민주주의를 지켰다/의문사위를 물어뜯는 간첩 사냥을 보며
밥을 흘려도 죽였다/‘중국공산당의 조선인 간첩사냥’ 민생단 사건
5부 대립을 넘어 화해의 역사로 – 분단 조국의 남쪽에서 바라본 군대와 북녘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었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북한연구의 큰 별이 떨어지다/김남식 선생이 남겨놓고 간 것
대한민국 사병은 똥개인가/언제까지 “까라면 까”라고 강요할 것인가
한국군은 인해전술을 원하는가/국방부. 병무청은 대만에서 배워라
‘여호와 증인’앞에서 부끄럽다/혁명가들보다 더 비타협적으로 군대를 거부했던 그들...
4) 대한민국사(史)4권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목차
1부 주권은 아직도 불온한 꿈인가 / 노근리 폭격에서 FTA 공세까지
주미대사도 외면한, 아아, 노근리 / AP통신의 취재로 세상에 알려진 그날의 끔찍한 학살
광주가 김세진과 이재호를 낳았다 / 미 문화원을 불지른 극적인 전환과 반미운동
대원군이 MH보다 나은 이유 / 한미FTA 추진파의 ‘쇄국망국론’에 답한다
광해군을 죽인 그들이 돌아왔다 / 뛰어난 외교적 안목과 실용외교를 사대주의로 짓밟은 조선의 사대부들
2부 국가보안법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들자마자 12만 명을 삼킨 국가보안법 / 고양이가 호랑이로 거듭난 변천사
내 학생은 과제물로 잡혀갔소 / 국보법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작두로 잘라 불태운 시집 해직기자와 교수 그리고 운동권이 출판에 뛰어들다
현대사 공부하지 마, 다쳐! / 1970, 80년대 ‘한국사 연구’의 추억
황우석과 인혁당, 조작의 재생산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는 폭력, 국가보안법의 본질
3부 기억하지 않는 자와 고백하는 자
‘돌대가리’로 박정희를 들이받다 / 독재자의 단순·무식·과격한 분신, 김형욱
그는 언론이 탐나서 몸부림쳤다 / 부일장학회와 경향신문사 강탈
조국이 일본에 남긴 38선 / 철저히 이용당한 재일조선인의 역사
나는 지금 ‘고백’을 기다린다 / 국가폭력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는 유일한 길
국립묘지를 보면 숨이 막힌다 / 계급별로 차별받으며 묻히는 사람들
4부 그때 그 사람들 ― 신영복, 김형률, 유시민 그리고 386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한다 / 한국 현대사와 통혁당 사건의 내막을 듣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자기 개조 / 신영복 교수의 20년 감옥생활과 ‘대학시절’
김형률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피해자 2세의 죽음이 우리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
철들지 않고 사는 즐거움 너무 빨리 /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형님들에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가고 있는 사람들 / ‘전사’의 시대를 살다 일찍 시들어버린 세대
5부 왜곡된 역사의 고리를 끊고
민주화돼서 행복하십니까 / 도청사건을 통해 본 시민들과 기득권 세력의 팽팽한 ‘힘겨루기’
자유당의 저주는 풀리지 않는가 / 왜곡된 역사를 끊을 줄 알았던 열린우리당의 생일에
박정희가 때린 사학, 딸이 달래나 / 사학의 기형적 성장과 족벌사학
최일병, 김일병, 그 다음은? / 병역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
18만 감군, 낯간지럽다 / 소극적인 감군과 예산 증액은 문제
(2) 한홍구의 사관에 대한 비판
한국일보의 오미환 기자는 한홍구의 "대한민국 사(史) 1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겨레출판사)에 대한 서평을 실었다. 2003.2.22일자로 미디어리뷰에 올려 진 글 내용에서 가장 두드러진 글 내용은 보는 그대로 충격이었다. "… 두 사람은 동학군을 때려잡자고 주장한 봉건주의자였지만, 이건창은 동학군을 봉기하게 만든 학정을 맹렬히 비판했고, 황현은 나라가 망하자 자결했다. 반면 오늘날 보수를 자처하며 진보 세력을 적대시하는 무리는 ‘참된 보수주의의 덕목인 도덕성ㆍ일관성ㆍ책임감ㆍ지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가당찮은 족속들’이라는 것."
진보세력을 적대시하는 무리는 참된 보수주의의 덕목인 도덕성, 일관성, 책임감, 지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가당찮은 족속들이라는 한홍구의 정의 앞에 잠시 자제를 잃을 뻔 했다. 한홍구는 왜 대상의 경계도 분명히 말하지 않고 보수주의자들을 싸잡아 욕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당찮은 족속이라는 말은 쉽게 내어 놓을 이야기가 아니다. 존재의 가치가 없는 종자라는 말이기 때문에 알고 듣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욕이다. 나는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자처해 왔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으며 존경심이 있으니 분명 나를 향한 욕이리라. 하여 뒤로 미루어 두었던 한홍구에 대한 비판을 앞당기기로 했다.
한홍구의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마치 에세이와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다. 정통 책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마치 작품과 같은 형태로 쓰여 있다. 기존의 형식에서 탈피하는 글의 형식이나 목차에 올려 있는 글의 전개방향 모두가 틀에서 벗어나 있다. 1권의 책 단군에서 김두환까지에는 자신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에 대하여 한정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독자의 눈은 자신과 같은 눈높이를 가져야 할 것을 강요한다.
한홍구는 자신이 역사학 교수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생각에 불과한 내용의 에세이를 역사책으로 출판했다. 역사책이란 후대를 위하여 쓰는 것이지 자신의 기분풀이용으로 써재끼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자에게서 고르게 나타나는 중대한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들은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로서 국민은 마땅히 자신들을 알아 모셔야 한다는 우월감과 자아도취의식과 특권의식이 있다는 점이다.
한홍구는 그의 역사책 1권에서 단군에서 김두환까지를 말한다. 단 300페이지의 분량의 책으로 단군에서 펄쩍 뛰어 김두환까지 단숨에 달려 왔다. 축지법을 쓴 모양이다. 그는 고구려의 역사로부터 조선시대의 역사까지 단 한 번도 민중에 의하여 왕의 목을 친 적이 없는 민족일 뿐이라는 형편없는 민족이라는 책망으로 책머리를 장식한다. 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법통이라는 것이 권력층에 의한 농간에 불과한 것이며 태극기 또한 그러하다. 특히 태극기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친일행적을 감추고 국민을 억압하는 수단으로서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한홍구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세운 인천시민들을 향하여 침을 뱉었다. 외세와 사대주의 망령에 사로잡혀 미국의 전쟁광의 동상을 세웠다는 이유이다. 연세대에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이 서있다. 감리교신학대에는 아펜젤라 선교사의 동상이 서있다. 일본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서있다. 동상이란 상징성이며 그 시대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한홍구는 자신의 책을 시대의 문화를 제거해야 선진국 국민이며 자주민족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1.4 후퇴 때에 수많은 북한에 살고 있던 피난민이 목숨을 걸고 후퇴하는 미군과 국방군의 뒤를 따라 피난했다. 북한에서는 도무지 살 수 없었던 북한의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거처와 재산을 다 버리고 후퇴하는 미군과 국방군의 뒤를 따랐다. 그 때 피난했던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 생존해 있다. 미군과 국군의 뒤를 따라 피난했던 피난민들이 부산과 추풍령 산지 등에 숨어 있던 동안 낙동강 전선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풍전등화의 위기까지 내 몰렸다. 만약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북한군의 참살로 인해 대다수의 피난민들이 학살을 당했을 것이며 국군 또한 마찬가지의 꼴을 당했을 것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이역만리 먼 나라까지 와서 국가와 국민들을 구원해 준 메시야와 같은 존재였다. 국민은 이를 고마워하며 6.25전쟁과 같은 참변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굳은 각오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세워 놓고 자유공원이라 이름 했다. 한홍구는 지금 맥아더 장군의 동상에 줄을 걸어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 미군이 실패하고 북한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그의 책에서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이 주장을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학자라는 이름으로 외치고 있다.
한홍구는 다시 태극기에 눈을 돌린다. 태극기는 박정희의 권위를 대신하는 상징적인 도구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태극기에 대한 맹세는 곧 박정희에 대한 맹세를 충동하는 강요로 해석했다. DJ 전 대통령 시절 느닷없이 아세안 게임에서 튀어나온 한반도기가 이제야 설명이 되었다. 아하 이 자가 DJ에게 물을 먹었구나 그래서 이런 식으로 물 타기를 해서 DJ와 MH의 한반도기에 당위성을 부여해 주려고 하는구나. 나는 지금 어금니를 깨물고 있다.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2권이다. 2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되던 그 평가들을 하나 둘 도륙을 내버리기로 작정한 듯 본격적인 물 타기에 돌입되어 있다. 한홍구는 백의민족? 웃기지 마라로 시작한다. 이어서 그것은 다 박정희가 국민을 길들이기 위한 초달법이었으며 월남파병은 전쟁에 미친 박정희의 근성을 대변해 준다로 몰고 간다.
한홍구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베트남 여성들과 아이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파병된 한국인의 잔학한 학살의 참상을 그려낸다. 이어서 학살의 가해자인 월남파병 군인들을 피해자라고 동정한다. 다음으로 나올 이야기는 친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불행히도 2권에서는 친일파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김일성이 김산으로 둔갑되어 나왔다. 한홍구는 김일성을 진짜배기 혁명가로 둔갑을 시켰다. 아리랑의 주인공으로 국가와 민족을 끝까지 사랑하여 혁명가로 나서야 했던 운명을 서사시로 그려낸다. 그래도 한홍구가 진실된 역사학자라면 끄트머리쯤에 가서 남로당의 박헌영이 토사구팽 당한 역사를 단 한 줄이라도 넣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했다. 한홍구는 필을 돌려 다시 박정희 때려잡기에 나섰다.
결국 한홍구는 박정희를 죽이기 위해 역사학자의 양심을 내버렸다. 3권에서 박정희 죽이기와 함께 과거의 역사를 땅속에 묻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역사에서 지워서 편히 쉬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독이 묻어 있는 필 끝은 박정희 대통령을 추억하는 모든 자들을 향한다. 60년 동안 친일로 인해 잘 먹고 잘 살았던 자들을 발본쇄본하여 도육을 해야 한다는 공적인 주제로 몰고 간다. 박정희 대통령을 추살하기 위한 마지막 행보로 무덤에 60톤짜리 돌 뚜껑을 덮으려 한다. 그는 함부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을 친일 수구꼴통으로 한데 묶었다. 이유는 한국인으로서 전범으로 희생된 23인의 영혼을 달래 주어야 한다는 이유를 붙였다.
한홍구는 "5부 대립을 넘어 화해의 역사로/분단 조국의 남쪽에서 바라본 군대와 북녘"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상에 대한 정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는 김일성을 20세기의 민족주의자로 포장하며 찬양한다. 김일성이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었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홍구는 지금 자신의 책을 통해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받들고 있다. 이어 다시 한국의 군대를 향해 독설을 날린다. 대한민국 사병은 똥개인가? 라는 독설을 통해 국방의 의무를 다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욕보이고 있다. 이토록 충성스러운 김일성의 충복이 어디에 있을까. 그는 자신의 신분이 성공회 신학교 교수라는 신분도 망각한 채로 여호와 증인 앞에서 부끄럽다고 기염을 토한다. 거기에 더하여 양심적 병역기피가 용감하다는 찬사를 덧붙여주고 있다. 혁명가들보다 더 비타협적으로 군대를 거부한 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한홍구의 책을 통해 변신한다.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었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북한 연구의 큰 별이 떨어지다/김남식 선생이 남겨 놓고 간 것.
대한민국 사병은 똥개인가/언제까지 "까라면 까"라고 강요할 것인가.
한국국은 인해전술을 원하는가/국방부, 병무청은 대만에서 배워라.
‘여호와 증인’ 앞에서 부끄럽다/혁명가들보다 더 비타협적으로 군대를 거부했던 그들..."
한홍구의 논지는 단 몇 줄에 불과하다. 아니 논지는 단 하나이다. 박정희 죽이기이다. 한홍구는 친일파의 명상으로 시작해서 박정희를 죽이고 김일성에 대한 잘 못된 인식을 고치고 친일파를 색출하여 친일의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 유산된 한국인의 항거정신을 이야기했다. 비겁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홍구는 박정희를 죽이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변신을 붙잡고 늘어졌다. 일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했고 독재를 위해 반공애국자로 변신을 했다는 과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박정희 죽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홍구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변신의 귀재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죽인 학살자이며 유신이라는 독재를 통해 민주주의의 정신까지 말살한 악령에 불과할 뿐, 추억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했다.
역사학자가 역사를 죽이는 일에 팔을 걷고 나섰다. 박정희의 60년 역사를 말살하자고 외친다. 친일파였으니 기억의 뿌리마저 뽑아 버리자고 외친다. 한홍구의 글에는 그 흔한 민주화 운동의 역사인 5.18 항쟁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왜 5.18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5.18을 통해서 소위 민주화 운동 전력자들이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에 대해여 일절 함구하고 있다. 수평을 잃은 지극히 왜곡된 역사학자는 지금 자신의 책을 통해 국민을 대상으로 의식화 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평화라는 단어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 김일성은 총.칼로 6.25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평화를 외쳤다. 강홍구는 총과 칼이 없는 대신 그가 들고 있는 독필을 쥐고 평화를 외치고 있다. 가치관의 파괴를 위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지금 한홍구에 의해 역사책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린, 한홍구의 축지법과 장풍이 난무하는 무협지를 읽고 있다. 한홍구의 책에 소개되어 있는 목차를 그대로 실었다. 비판의 근거가 된 목차이기 때문이다. 웬만큼 책을 읽어 본 독자들은 서설과 목차를 읽어 보면 논지가 어떻게 흐르고 전개되어 가는지에 대하여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무리 한국말이 뒤집기 좋은 언어라고 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게 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울컥울컥 분노가 치미는 것을 어쩌지 못하겠다. 한홍구에게서는 국가관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애국 애족이라는 단어, 그리고 명예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단지 망상과 허구에 가득 차 있는 민주주의자로 위장한 위험한 친북자의 사상을 보고 있다. 한홍구의 책에서 대한민국은 죽었다. 역사도 문화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도 죽었다. 오직 학문의 자유라는 대한민국의 법을 농락하는 주사파의 혀만 보인다. 한홍구를 통해서 6.25 남침의 원흉인 김일성은 20세기의 위대한 수령이자 한홍구의 태양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400만 명의 전사자들의 혼과 넋과 그들의 가족들만 불쌍해질 뿐이다. 평할 가치도 없는 책이나 이 책을 통하여 한홍구의 사상에 감염될 수도 있을 몇 사람을 위해서라도 비판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3) 한홍구의 좌익사상에 대한 분노
한홍구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신학대의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박노자, 홍세화와 함께 삼대트로이카를 구성하고 강정구의 천막강의를 직접지원하며 강정구 구하기에 힘쓰고 있다. 박노자의 한국의 병영문화 비판과 뜻을 함께 하는 한편, 성공회신학대에 교과목으로 군대와 사회라는 교과목을 설치하여 병영문화 개혁론을 주창하고 있다.
1) 역사가의 수평
역사를 공부하면 역사에 대한 눈이 떠진다. 현재부터 과거까지의 역사를 더듬어낼 수 있는 눈은 영웅의 일어섬과 무너짐, 국가의 일어섬과 무너짐 속에 담겨져 있는 교훈과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이 떠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영웅의 무너짐으로 인해 한 시대가 어떤 종말을 가져 왔는지 와 한 가정의 무너짐이 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하여 깊이 살펴지는 눈이 떠진다. 이를 혜안이라고 부른다.
정통한 역사학자의 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를 넘나들 수 있는 혜안이 열려져 있다. 이는 역사의 일어섬과 무너짐에 대한 관찰과 성찰로 인해 논리가 생겼음을 의미하며 이것으로 학자로서의 논리 체계 즉 학문의 체계를 세웠다는 평을 받는다.
역사는 단 하나의 사건을 말하지만 하나의 사건 속에는 여러 갈래의 다양한 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다양한 문화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깃들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의 역사를 추적할 때, 하나의 사건 속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의 생각과 이야기를 추출해내고 이를 근거로 역사를 재평가해 내고 미래를 예측한다. 이 작업은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미제사건을 재수사하는 수사관의 작업과 같다. 미제사건을 처리하려는 수사관이나 역사를 추적하여 재평가 하려는 역사가나 작업의 공정은 동일하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분석과 추적은 기본조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수사관은 사건의 중심인 범인을 증명해내면 되는 일이나 역사가가 밝혀내야 하는 작업은 그게 단순하지 않다.
역사가는 근 현대사에 접근할수록 정권이라는 정치적 변수와 만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정권과 정치를 변수라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에 그 정권과 정치적 상황이 어떤 중심인물과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가를 말하는데, 연구자 역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 주인공일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해부할 때, 자신의 치부거나 혹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중심을 해부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때에 후대와 역사를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사정없이 비판해 낼 수 있는 중심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수평감"이라고 말한다.
만약 역사가가 자신의 사상을 방어하거나 혹은 그릇된 논리를 비호하려고 한다면 이미 수평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 역사가가 서술한 역사는 한쪽으로 치우친 반쪽짜리 역사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 한홍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역사가란 불안한 미래와 싸우는 사람이다. 현실에서 과거를 살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해내는 사람이다. 진단되어진 현실의 문제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예측해 내서 수평을 잡아 주는 사람이다. 역사가의 생명은 수평감에 있다.
역사에 대한 비판 및 고찰은 현실의 문제와 가장 가까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예로 들어 근거로 제시된다. 동일한 상황에서 좌로 간 나라의 역사와 우로 간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결과물이 나와 있다. 통상 몇 개의 예가 제시되는데 제시되는 예는 결과까지 가는 동안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일어난 중대한 변수들은 어떤 것이었는지가 관찰되어지고 연구되어진다. 이렇게 연구가 되어진 연구물이 근거로 제시되어 현실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타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역사가란 미래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상적인 안경을 착용하고 역사를 보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굴절되어 있는 시각으로 사건을 보면 역시 굴절되어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측이 나오게 되어 있다. 역사가의 불안은 현실을 이대로 끌고 갈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다. 진보주의 역사가는 진보주의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고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 있다.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 있고 자유민주주의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결국에 대한 불안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평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수평감각이 있는 역사가만이 역사를 써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민주화운동자들은 민주화운동의 계승을 위해 민주화 운동사를 쓴다. 공산주의 역사가는 공산주의 사상 전파를 위해 역사를 쓴다. 종교가들은 해당 종교의 전파를 위해 해당종교의 역사를 쓴다.
역사서란 교과서적이 되어야 하고 교과서적인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는 수평이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사관과 같은 우직함과 오직 후대를 위해 사실을 기록한다는 사명감에서 온 수평이다. 현재의 역사는 미래에 가서 그 시대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과거의 거울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수평감각을 잃은 역사가의 글에서는 착시현상이 보인다. 기술된 내용이 어떤 운동이나 사상전파의 목적을 가졌을 경우 편향되어 있는 시각이 드러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 수평감 상실시대를 만드는 좌파 역사가와 학자들
한국에서 소위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역사가치고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는 수평이 있는 역사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에는 4.19 운동에 참여했던 주역들이 있으며 그 주역들은 386세대의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역사가들이 극히 좌로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의 논리로 가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로서의 수평심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안병직 교수를 위시하여 최문형 교수(한양대 명예교수, 역사학), 유영익 교수(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한국사), 신복룡 교수(건대 교수, 정치학), 강규형 교수(명지대 교수, 현대학) 는 한국 근.현대사가 좌파들의 운동사로 요약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수평감각을 잃은 역사가들의 교과서 집필로 인해 오히려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대목인 갑오경장과 러시아와 일본의 침략 배경에 대한 기록은 약화되었거나 취급되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유영익 교수는 [동학십이개조폐정개혁안] 차용의 오류를 지적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어떠한 공사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동학십이개조폐정개혁안]을 인용함으로 동학혁명을 반봉건 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커다란 오류로서 믿을 수 없는 사료임을 지적했다.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통해 [동학십이개조폐정개혁안]을 집강소를 통해 실현하려고 했다는 이른바 [12개조 폐정개혁안]은 1940년에 출판된 오지영의 "역사소설 동학사"에만 실려 있는 사료이다. 오지영이란 인물은 역사학자가 아니고 천도교계의 아마추어 역사가이자 역사 소설가이다. 그는 한국에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졌던 1938년에 "역사소설 동학사"를 탈고했는데, 그의 소설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곧 사료로 채택할 수 있는 사료를 채택하여 고교 교과서로 출판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내용은 금성출판사의 근, 현대사에 실려 있다.
민주화운동의 전력이 있는 역사가가 민주화운동의 결말에 대해 불안해하며 민주화 운동의 항거정신을 애국정신으로 포장하여 기술하면, 현실과 후대에서는 정권에 대한 항거의 논리를 갖게 된다. 민주화 운동자들의 안목에서는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나,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생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가치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시위현장에서 난무하는 항거의 독설이며 정부의 권위를 박살내려는 폭력이며 국론이 무너지고 있는 불안을 야기 시킨다. 교통은 통제되고 사상자가 발생하고 이런 내용들이 뉴스 화 될 때마다 말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괴롭고 아프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민주화 운동자들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직장이 보장되고 정부의 지원금이 보장되는 등의 유익을 얻는지 모르나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창한 미명하에 장사를 하는 이들은 손님을 놓치고, 택시 운전사는 힘든 길을 돌아가야만 한다.
노동운동의 파업도, 민주화 운동도 국민을 인질로 잡고 벌이는 시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길거리를 막는다. 뉴스거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에 대한 폭력시위를 벌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올리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한다.
문제는 또 있다. 파업과 민주화 운동을 업으로 삼고 사는 자들의 과시욕과 자리보존 욕구에 의하여 더욱 폭력적이고 더 큰 규모로 확장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시민은 항상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어디에 하소연을 할 데도 없이 고스란히 매를 맞는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시위와 파업은 경제활동을 막는다.
노조의 년 중 행사로 인해 직장이 있는 자의 더 달라는 요구와 직장이 없는 자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교는 없는 자의 무력감을 유발하고 있다. 현재 무력감으로 인해 그냥 놀고 있는 대학이상 학력자만 100만을 넘었다는 통계발표까지 나왔다. 국가적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의 파업으로 인해 납품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어쩔 수 없는 손해로 인해 이중고를 당한다.
손해를 감수하며 죽을힘을 다해 외국 수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현대자동차는 노동파업으로 인해 러시아 자동차 수출국 1위의 자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유럽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죽을힘을 다해 정상까지 올려놓은 해외의 현대자동차 시장과 판매상들은 어이없는 현대자동차의 파업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노동운동으로 인해 국가의 장래까지 말아 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판매 전략은 내수는 고가, 수출은 저가 전략으로 판매 전략을 집행해왔다. 제품 개발에 소용되어진 일체의 연구비와 마진을 더해 국내에서 고가로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수출단가를 낮춰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구조였다. 삼성이 세계시장에서 고가의 판매 전략을 내놓기까지 국민은 내국에서 수출품의 판매 손실까지 보존해 주는 가격으로 대기업의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해야 했으며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수출우선정책으로 인한 내국인의 손실이었다. 이후 삼성은 세계시장에 고가전략을 내어 놓았고 이를 통해 내수와 수출상품의 연구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경우 아직도 해외시장에서 저가의 경쟁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내수를 통해 연구비를 조달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노조가 파업을 통해 임금을 올리게 되면 올리는 만큼 원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높아진 원가는 내수시장에 반영되어 내국인에게 상대적인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태에서 현대의 정책은 내국민에게 수혈을 강요하는 한편 가격 경쟁력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 일본에서 수출 전략 차원에서 한국으로 수입되고 있는 저가형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가격 경쟁 면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정도까지 낮추어져 있다. 이런 이유에서 현대의 경영진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축적되어 있는 기술력과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해 인건비를 낮추어 낮춰진 만큼 내국인에게 그 이익을 돌려주려던 현대의 경영진의 자신감은 강성노조의 등쌀에 밀려 내국민에게 돌려줄 몫을 노조에게 주었다. 이는 결국 내국인의 불신을 초래했고 국산품애용이라는 가치관마저 실종되어 있는 판국에 애국심을 충동하여 국산품을 팔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경영자의 고민은 더 깊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노조는 강성파업으로 유도하고 있어 이제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는 국민들에 의하여 한국형노조운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4)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민주화 운동
파업으로 연결되는 노동운동은 이미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한 요구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전국 규모화 되어 있는 민노총이나 한노총의 동반파업 혹은 연결파업으로 이어지는 파업행위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파업을 통한 투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시위를 하며 시위 중에는 어떤 단체라도 받아 들여 함께 시위해 왔다.
민주화 운동자들은 노동운동이야말로 민주화를 측정하는 바로메타로서 노동운동이 보장되어야 민주국가라는 논리를 세우며 슬며시 이들 노동운동에 합세하여 반미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시위를 주도하며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 죄 없는 시민은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 중에 민주화 운동과 전혀 상관이 없는 국민의 국민성은 어떠한가.
연합뉴스 1월 14일자 보도에는 "아들 살려준 은혜 35년 만에 갚습니다."라는 제하의 가슴 훈훈한 감동의 보도가 전해졌다. 부산연합뉴스의 조성미 기자에 의하면, 한 70대 할머니가 지난 11일 오전 부산대학교 병원 원장실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그리고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히며 병원장에게 사죄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1972년 부산 중구 영주동에서 식당일을 하던 최 씨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간 어느 겨울날 한 살 바기 아들이 얼굴이 시퍼레져서 숨도 가누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를 들쳐 업고 달려간 부산대 병원 응급실에서 급성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 달 간의 입원치료 끝에 완치가 됐지만 그의 마음은 다시 걱정으로 가득 찼다. 남편 일이 여의치 않아 최 씨가 번 돈으로 입에 풀칠하던 처지에 당시 큰돈이었던 치료비 20만원을 내기가 너무나 버거웠기 때문. 순간적으로 '독한' 마음을 품은 최 씨는 아이를 등에 업고 몰래 병원을 빠져나왔고 이후로 35년 동안 마음에 커다란 짐을 안고 살아왔다. 그 때 죽을 고비를 넘긴 아들이 장성하고 집안 형편도 나아지자 더 늦기 전에 빚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한 최 할머니는 11일 아침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대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병원 관계자들 앞에서 감사함과 죄스러움에 눈물을 훔치던 그가 내민 꼬깃꼬깃한 봉투 속에는 35만원이 들어있었다. 당시 내지 못한 치료비 20만원에 조금의 성의를 보탠 것.
김동헌 병원장은 할머니의 손을 맞잡으며 흔쾌히 봉투를 받았고 35년 세월을 지나 돌아온 치료비는 병원발전 후원금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기로 했다는 보도이다.
자식의 생명을 구해준 병원과 의사에 대하여 고마움과 병원비를 내지 못하고 도망을 쳐야 했던 슬픈 사연은 35년 동안의 마음의 짐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국민은 고마움을 알고 선행에 대하여 칭찬을 할 줄 아는 국민이다. 남에게 손해를 끼친 일에 대하여는 평생 마음의 짐으로 생각하며 죽기 전에 반드시 갚아야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가들과 파업을 일삼고 있는 노동운동을 지휘하는 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가련한 국민들의 애달픔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무식하고 무지한 가치가 없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이들이 죄 없는 국민을 담보로 잡고 폭력시위를 벌일 수 있는 근거는 항쟁의 논리에서 나왔다. 이들이 기본적으로 외치고 있는 투쟁이니 항거이니 쟁취 등의 구호는 특정대상과 싸워서 빼앗기 위한 것이다. 상식으로 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길을 막으며 혹은 경찰과 대치하여 공권력과 폭력으로 맞서는 행위는 기본질서를 도륙 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개인의 폭력은 폭력처벌행위로 처벌한다. 기본질서에 반하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체가 공권력에 대항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철저히 관대하다. 왜 그러한가? 공권력(정부)이 봐주고 있다거나 혹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파업과 민주화 운동자들의 폭동을 두려워하는 것이던지 양자 간에 답이 있다.
1) 민주화 운동의 정체성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과 폭력시위에는 북한의 대남공작에 포섭된 간첩 및 주체사상자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사실 노사 간의 갈등은 하나이다. 더 달라는 노조의 요구와 사정을 봐 달라는 사측의 입장이다.
민주화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혼자서만 해먹지 말고 골고루 해 먹자는 요구이다. 여기에 반미가 들어갈 이유가 없고 친일파제거니 국보법폐지니 이런 유형의 주장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원칙은 그러하나 그동안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의 구호에는 어김없이 반미와 친일파제거, 국보법폐지, 평화가 주창되어왔다. 그 원인은 주사파 운동의 핵심멤버였던 강길모 씨의 전향으로 그 이유가 설명되었다. 여기에 386 간첩단 사건과 남, 북, 해외 3자연대 통일운동단체인 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의 고문이었던 강순정의 구속으로 민주화 운동의 정체가 밝혀졌다.
문화일보 1월 10일자 보도(2007년)에는 "통일운동 빙자해 간첩 활동 강순정 前범민련 간부 구속" 사건이 보도되었다. 내용은 통일운동을 위장,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해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전 부의장 강순정(76)씨가 9일 구속 기소됐다는 내용이다.
일심회와 강 씨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북한이 과거와 달리 간첩 을 통해 국내외 정보를 수집 보고토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친북 성향의 재야단체들을 배후 조종해 국내 정치개입, 반미 운동 강 화, 연방제 선전활동 강화 등 국내 정치 사회 문제에 직접 개입 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주목된다. 또 간첩 침투와 활동에 있어 해외교포나 해외체류 인사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지는 대목이라는 강조점을 두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정병하 부장검사)는 2001년 11월부터 지난 해 3월까지 128차례에 걸쳐 북한 공작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야단체 내부 동향, 2002년 대선 및 2004년 총선 동향 등 국가기 밀 16건을 포함해 133종 329점의 문건 등을 북측에 전달한 강 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강 씨는 국방예산 규모가 담긴 문건과 미국의 군사전략 및 주한미군 철수 문건 등 을 북측에 전달했다. 강 씨가 전달한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고 사진화보는 북한 노동신문에 4차례 게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북한은 강 씨에게 이적단체인 범민련보다 통일연대 등을 활용하고 진보정당으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약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선전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령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또 ▲2002년 대선과 관련, 보수언론 반대시위를 하고 ▲재야인사 동향을 파악, 국보법으로 구속하거나 여성을 알몸으로 조사하는 사례가 있다면 인터넷신문을 이용해 여론화하고 ▲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을 하고 ▲8·15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라는 등 구체적 인 지령을 내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일보)
이 사건에 대하여 법민련 남측본부는 즉각적인 기자회견을 내고 석방을 촉구했다. 뉴시스 1월 11일자 보도를 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11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첩혐의로 기소된 강순정 선생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검찰이 지난 9일 강순정 선생을 국가기밀 유포 등 간첩혐의로 기소하고 이를 언론에 발표했다"며 "그러나 강 선생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 혐의는 법원 판례나 객관적 사실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밀의 개념과 그 판단기준에 대한 법원 판례는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 물건. 지식에 속하지 않은 것,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를 갖춘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검찰에서 문제 삼은 자료들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조선노동당 창건55돌 경축 비디오테이프 배포'에 대해 "해당 테이프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방북해서 관람했고, 이미 TV를 통해 많이 소개된 것"이라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민련의 아버지격인 남로당의 원흉인 박헌영이나 남한에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몽양 여운형도 학자였다. 학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았으나 공산주의 안경을 쓰고 굴절된 사상을 말하며 현실화시키려고 했다. 이들은 이것이 진리이며 공산주의를 실현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줄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1917년 레닌에 의해 2월 혁명과 10월 볼세비키 혁명으로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게 되었으나 1980년 후반부터 공산주의는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1991년 고르바초프의 공산주의포기와 1992년 러시아연방독립국가 선언으로 공산주의는 소멸하고 말았다. 만약 박헌영과 여운형이 살아 있어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현재의 모습과 핵실험까지 간 북한의 공산주의 정체를 보았다면 자신들이 외쳤던 이론에 대해 반성했을까? 대한민국 안에서의 공산주의는 6.25 동란과 함께 사라져야 했을 악이다.
한홍구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고 했다. 평화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붙잡힌 강 씨에게 내려졌던 지령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북한은 강 씨에게 이적단체인 범민련보다 통일연대 등을 활용하고 진보정당으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약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선전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선회할 것을 지령했다"는 내용과 일치된다.
연방제 통일론이니 하는 말은 DJ 시절에 나왔었던 이야기이다. DJ는 드러내놓고 연방제 통일론을 말했었다. 북한이 거부 반응이 많은 연방제 시행 등의 구호를 버리고 통일연대 등과 연합하여 효력이 있는 다른 구호로 바꿀 것을 지령하고 난 후에 남한에는 유난히 평화라는 구호가 판을 치고 있다.
한홍구도 평화를 말한다. 그리고 병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홍구의 역사적 시각에 대한 주문에 의하면 지금까지 해 왔던 역사공부를 다 버리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하는 이단교주의 말과 흡사하다. 과연 그래야 한홍구의 역사책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의 단순한 사건을 연구하여 기술하는 역사학자의 말치고는 광오 하다. 그것은 자신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눈으로 봐야 한다는 말일게다. 다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구원한 구원자가 쓴 책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거부감 없이 봐야 한다는 말일게다.
2)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3대 요소가 있다. 첫째는 햇볕정책이요 다음은 노조요 다음은 민주화 운동이다. 하나의 면면을 따지고 본다면 위의 3대 요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각각의 개체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따져보면 다른 면모가 나온다. 속을 살피면 하나가 다 연결이 되어 있다. 그것은 주체사상이다.
햇볕정책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에서 나왔다. 노조운동은 노동자 중심에서 나왔다. 민주화 운동은 친북좌파 교수들과 전교조가 중심이 되어 사회각층에서 나타난다. 특히 386간첩단 사건에서 보여주듯 민노당도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노조는 하부조직으로 친북좌파들의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먼저는 민주국가의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운동이란 무엇을 하자는 운동인지 그 정체를 규명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화 운동이 한국 역사에 어떤 바람직한 영향을 끼쳐 왔는가의 문제를 따져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민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대하여 살펴져야 한다. 이어서 한국의 노동파업과 민주화 운동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으며 협력하는 이유의 근본은 어디에서 출처되었는지를 고찰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들 운동이 한국인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살펴져야 한다.
한국의 경제는 IMF 시대보다 더 환경이 열악한 구조로 떨어지고 있다. 먼저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공무원 외에 전문직이 아니고는 정년까지 보장 받는 일자리가 없다는 문제이다. 이로 인하여 서민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있다. 소위 민주화 운동 전력자라는 DJ와 MH가 정권을 잡은 이후 서민의 삶을 피폐로 이어지고 있으며 두 정권이 발행한 국채의 부담으로 인해 국민은 없는 일자리에서 과도한 세금부담으로 이중고를 당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통해 거둘 수 없는 세금을 유류세를 통해 거두고 있다. 유류세를 통해 거출하는 세금은 그대로 한국 경제발전의 동력을 막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숨통이 터질 기미가 없다는데 질식한다. 한국은 지금 위기의 시점이며 한계의 마지노선에 도달되어 있다.
학자의 건강한 양심과 학자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은 국가와 민족의 빛나는 장래를 위해 쓰여 져야 한다. 그것은 학자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6.25 동란 이후 지금까지 골수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유 민주국가에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공산주의의 정체를 민주운동이라는 애국 애족의 표현으로 둔갑시켰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헌법을 악용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발판이며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 발판과 무대를 통하여 끊임없는 북한의 김일성의 공작은 2차적 공산주의 이상론 자들을 만들어 냈다.
1차적 공산주의자는 공작원(간첩)을 통해 김일성의 지령을 직접 받았다. 1차적 공산주의자는 마냥 공산주의와 김일성을 흠모해서 공산주의와 김일성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들 중에 대다수는 북한에 가족을 둔 피난민이거나 혹은 월북한 월북자의 가족들이었다. 인질로 잡혀 있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인물을 포섭하여 교육시키는 동안에 자기 최면에 빠졌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인 정동영, 김근태, MH의 공통점은 좌파라는 것과 직계 가족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김근태에 관하여 월간조선은 2004년 3월호에서 과거 안기부에서 작성한 ‘김근태 신원 및 배후 사상관계’ 파일을 근거로 “김 장관의 형 3명이 모두 월북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은 “그의 큰형은 서울대 미대출신으로 6·25 당시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한 후 월북했다. 둘째 형 역시 월북 후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월북해 통일선전부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되었다”고 보도했다.
3) 지식인들의 책임
지식인은 자신이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그 지식으로 인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른 지식을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하고 바른 역사를 남겨주어야 한다는 숭고한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다해야 비로소 지식인은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수가 있게 되는데 그 역사란 바로 자식세대를 말한다.
자신이 죽고 나서야 역사가 평해줄 것이라는 말은 예언가가 아닌 이상 망언에 불과하다. 어떤 역사도 10년 혹은 길어봐야 30년 주기로 돌아오는 한 세대를 뛰어 넘을 수 없다. 아버지의 세대에서 추구되었던 모든 가치는 아들의 눈을 피해 손자의 시대로 직접 넘어갈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우리 아버지의 시대에서 가장 가치가 컸던 이슈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가난과의 사투였으며 내 집 문패를 위한 사투였다. 동시에 그 시대의 지식인(대학생 이상)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이슈는 유신철폐와 군사독재정권타도였다. 이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한다면, 내 아버지의 목표와 이들 민주화 운동가들의 목표는 크게 엇갈린다. 내 아버지는 운명에 순종하여 가난도 팔자려니 하고 참고 인내하며 소처럼 일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당시 만약 DJ와 김영삼 둘 중의 한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야말로 집 걱정 없고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고 맑고 밝고 잘사는 세상이 오는 줄 알았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김영삼 씨도 DJ 씨도 대통령을 했다. 만약에 이분들이 당시에 이야기를 했던 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했던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대한민국은 대학교육까지도 의무교육이 되어 있어야 하며 집이 없는 국민은 한 가정도 없어야 한다. 직장은 남아돌아가야 하고 북한은 이미 흡수통일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 대통령이 삼대를 지나고 있는 동안에 삼성과 현대 그리고 엘지는 가장 첨단이라고 하는 반도체 부분을 석권한 반면 대한민국은 북한에 조공을 바치는 형태로 몰락하고 말았다. 3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출산률과 이혼률 그리고 자살률에서 세계 최고 국가가 되어 있다. 이것이 민주화 운동의 결과인가? 똑같이 출발한 경제는 세계 1위가 되었고 똑같이 출발한 민주화 운동의 결과는 지금 뭐란 말인가.
결국 군사독재타도와 유신정권타도를 외쳤던 민주화 운동이란 대통령 병에 든 김영삼 씨와 DJ 씨의 욕심에 불과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민주화 운동을 부르짖었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불과 30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지식적 자아도취에 빠져 들고 뛰었던 반골들이었다는 결론이다.
이제 우리 시대에 들고 뛰며 이루려고 했던 민주화 운동의 정체가 김 씨들의 정권야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이상, 더 이상의 민주화 운동이란 가치가 없다. 여기에서 더 나갈 이유도 없어졌는데 민주화 운동을 노래 부르는 자들이 있다면 그야 말로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이미 3명의 민주화 대통령들의 치적의 결과로 이들 민주화 운동을 거론했던 인사들의 민주화란 자신들이 대통령을 해먹기 위한 수단이며 방편일 뿐 국가와 민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어졌다. 그리고 역사는 공산주의를 심판했다.
결과가 너무도 선명하게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홍구는 민주화 운동은 앞으로 계속 진행되어가야 하는 과제로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인가? 그 끝은, 그 끝은 결국 김일성이다. 한홍구의 책에 의해서 6.25동란의 원흉인 김일성은 민족의 거대한 태양으로 다시 태어난다.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4) 민주화 운동으로 무게중심이 사라졌고 권위를 대체할 어른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필리핀, 대만, 태국 등 한국과 조건이 비슷한 국가들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필리핀의 경우,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정권을 잡은 아르요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필리핀 국민들 역시 경제는 그대로 두고 개혁우선 정책을 추진하는 아르요 정권에 의해 성장은 없고 개혁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대만의 경우도 천수이벤 총통의 비리문제로 인해 정권을 바꾸는 일에는 성공했으나 1만 불 달러의 수준에서 성장이 멈췄다.
연합뉴스는 1월 18일자로 <불신 사회..선진국 진입 어렵다>는 내용의 보도를 취재 보도했다. "사회통합 없이 선진국 도약 어려워"라는 주제 하에서 지적된 내용을 본다.
한국은 6.25전쟁, 급속한 도시화, 권위주의적 근대화 등을 거치면서 상호 불신이 깊어졌으며 근래 들어서는 민주화. 탈권위. 탈이념의 진전과 함께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이 불신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구성원 상호간의 자발적인 협조와 신뢰가 있어야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결합, 아이디어와 자본의 결합이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비전2030 민간작업단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로 부상한 아일랜드는 1987년 이후 5차례에 걸친 사회협약을 통해 노사관계를 안정시켰고 야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등 사회통합에 성공했다.
노르웨이에서도 노동계는 임금인상을 자제했고 기업 측은 실업을 줄였다. 정부는 환율안정에 노력했으며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금융부분을 자유화했다. 반면, 대만은 1992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이후 11년간 정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 후 정치혼란이 지속됐고 노사분규와 지역갈등이 급증했다. 지도력 부재로 국가의 역량을 집결할 구심점도 없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미국의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내부 신뢰가 없으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혈연. 학연. 지연의 범위를 넘으면 신뢰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아시아의 유교문화권 국가들 가운데 일본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한 만큼 한국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에도 근래에 들어와서 민주화, 탈권위, 탈이념의 진전과 함께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민주화 운동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요구는 늘어난 반면 그 요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에 중재할 수 있는 권위가 사라짐으로 인해 요구의 무게중심은 정부와 기업주 쪽으로 기울게 되면서 폭력적 시위와 폭력사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 문제는 국가적 공동체 정신에 상당한 위협이 되며 권위의 상실로 인해 가정으로부터 국가까지 중재할 수 있는 매개체가 사라짐으로 인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켰다. 대가족 제도 하에 있는 가정의 장점은 어른들의 권위 있는 중재로 인해 작은 일이 큰일로 가지 않아 화목을 이룬다는데 장점이 있다. 충분히 무마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법정으로 달려가게 되어 가정은 가정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그만큼 손해가 생겼다. 개인과 국가 간의 소송도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이로 인해 서로가 불만족한 결과로 불만하는 사회적 풍토까지 생겼다.
법원은 법원대로 가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과 단체에서 일어난 일들을 법정으로 끌고 오는 바람에 법원의 판단은 더욱 날카로워야 하고 업무는 폭주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결국 법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판사를 석궁으로 쏘는 석궁사태까지 불러 왔다.
가정과 단체 그리고 기업에서 중재역할을 할 수 있었던 어른들이 오히려 밀려나고 폐품화 되는 세태에서 어른은 어른대로 설 곳이 없고 어른의 중재로 잘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가 이제는 양보 없는 싸움으로 발전하여 전국은 싸움터로 변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5) 한홍구의 김일성 찬양에 대한 분노
1)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역사서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
이 책은 한겨레지에 실린 에세이의 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 책이다. 따라서 가볍게 터치되어 있고 일관적인 역사성은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을 대한민국사로 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사의 사료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은 의식화 교육에는 다소 유익을 줄지 모르나, 역사의 흐름에 대한 사료는 심히 빈약하여 객관적인 역사책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책이다. 한홍구의 기술은 네가티브적인 운동사에 매달려 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야 했던 배경에 대한 서술은 극히 제한적이며 주관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사관의 보편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운동사에 대한 변호와 공격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역사서로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대체적으로 역사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정확한 사료와 정직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된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 저자는 정통사관의 입장에서 교과서를 저술하는 자세로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에는 최소한의 기본도, 역사서로 볼 수 있는 양식조차도 없다. 역사가의 양심은 쥐꼬리만큼도 찾아 볼 수도 없다.
한홍구는 백의민족? 중국과 일본에 침략을 당해 훼절된 여인의 자식들이 한국인의 조상이 되어 있는데 무슨 백의민족이며 단일민족이냐?는 폭언으로 한국민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며 그의 책 "대한민국사"를 출발하고 있다. 이어 단 한 차례도 왕을 자리에서 몰아내지 못한 국민성에 무슨 정의가 있느냐며 저항이 없고 행동이 없는 역사는 죽은 역사일 뿐이라고 성토하며 대한민국 왕조의 역사 전체를 부정한다. 한홍구에 의하면 장군의 아들 김두환이 등장하고 난 후부터 대한민국의 진정한 역사는 시작되고 있다. 한홍구가 보는 진정한 역사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부터 시작된다.
한홍구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장군의 아들 김두환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자신의 사관을 드러내면서 왜 장군의 아들 김두환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느냐는 자신의 내적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김일성 장군을 내어 놓는다. 아리랑과 김산을 절묘하게 연결시키며 한편의 서사시를 완성한 한홍구는 이때부터 김일성의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의 단편들을 서술한다. 좀 더 들어가 보자.
2) 한홍구가 정의하는 보수주의자와 보편적 보수주의자 와의 차이
한홍구에 의하면 해방 이후의 보수주의자로서 함석헌 (평북 용천), 장준하 (평북 의주), 문익환 (만주 북간도), 계훈제 (평북 선천) 정도나 보수주의자 축에 끼지 나머지는 죄다 가당찮은 족속들이다. 그 이유는 이들은 민족분단의 상황에서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려 싸우다 보니 탄압 받고 고통도 당했으나 현재의 보수주의자는 자칭 보수주의자이며, 지켜야 할 것을 위해 기득권을 버린 적도, 희생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한홍구가 지적한 보수주의의 특징을 보면 이북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홍구는 보수와 수구를 가름하면서 함석헌. 장준하. 문익환. 계훈제 정도는 보수로 나머지는 수구로 갈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요즘 보수주의자가 너무 많다는 것도 지적했다. 한홍구에 의하면 이들은 수구들이지 보수주의자가 아닌 것들이 보수로 자처한다고 말한다.
한홍구는 자신의 잣대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척도하고 있다. 한홍구가 보수주의자로 지목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진보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상의 분류에서 진보주의자로 분류된 인물들이다. 특히 문익환 옹은 임수경과 함께 극비리에 방북하여 평양축전에 참여하고 김일성의 묘에 참배를 했던 전력이 있다. 이는 친북운동자이지 민주화 운동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홍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보수로 말하지 말라 했다. 이승만은 후천성미국결핍증에 걸린 환자일 뿐이다. 그 이유는 전쟁이 나자 전작권을 서둘러 미국에 넘겨준 것을 꼽았다.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는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편지의 내용을 근거로 했다. 당시의 정황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대한민국의 역사상 처음으로 임시정부에서 민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공산주의자의 친일파 척살 대 친일파의 공산주의자 척살로 양분되어 테러와 암살까지 자행되는 사태를 불러 왔으며 치안은 미군과 급조된 경찰에서 맡아야 했고 군대는 미군의 지원 아래 창설단계에 있었다. 자신의 이름도 못 쓰는 문맹자가 당시 전 국민의 80% 이상이나 되었던 시절이었다. 해방은 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전문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고급인력은 불과 0.2% 밖에 되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이었다. 당시의 인재난은 얼마나 심각했는지 초등학교만 졸업해서 자신의 이름자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은 반강제로 불려가서 면서기를 시킬 정도였다 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행된 민의원 선거에서 0.2% 불과한 지식층들은 선거의 중심자가 되었다. 이들 중에 임시정부에 의해 관리로 중용된 인사들을 제외한 지식층들은 그 불만으로 남로당에 포섭되어 공산주의가 되었다.
불만의 원인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다 미군정에 의하여 임시정부의 수반이 된 이승만 박사가 국내정세와 국민의 정서를 잘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미군정의 지나친 간섭에 있었다. 끼리끼리 해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미군정보부는 친일 전력이 있는 자들 중에도 가치가 있는 자들을 추려냈다. 이 중 미군정에 협력하는 자와 회유의 가치가 있는 자를 선별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추천을 했다. 미군정보부를 신뢰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정에 의해 추천된 인사는 그대로 받아 들여 정보의 요직에 등용했다. 당시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미군정보부의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미군정보부에서 추천되어 중용된 인사들은 내부추천에 의해 자신들의 사람을 끌어들여 정부의 조직을 편성했다. 정부조직을 구성하는 초기단계에서 모두가 과장자리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군정과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의해 관리로 발탁이 된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총선을 치루려 했으나 공산주의자로 돌아선 지식인들은 네가티브적인 방식으로 총선을 막아 결국은 남북한 동시선거는 이뤄지지 못하고 남한에서만 반쪽짜리 선거를 치러야 했다. 투표라고는 해 본 일이 없는 국민들이었다. 자신들의 손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를 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었다. 문맹자는 자신의 이름만 간신히 쓸 뿐, 투표용지에 누가 몇 번인지조차도 모르고 표를 찍었다.
박헌영은 남로당을 세워 임시정부에 들여보냈고 여운형은 남조선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이들에 입장에서 보면 미군정에 의해 세워진 임시정부와 임시정부의 수반인 이승만 박사는 괴뢰정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야 말로 애국이며 애족인줄로 착각했다
3) 사록과 평에 대한 명백한 구분
역사가의 사록은 사실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라는 가치가 있다. 사록은 검증의 단계에서 평가를 받게 되어 있는데 얼마나 진실하며 사실적인가에 대한 평이다. 평가란 사록에 대한 평일뿐 근원적으로 역사자체에는 가치를 부여할 권한이 없다. 역사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전대의 역사가가 기록으로 남겨놓은 사록을 근거로 비평한다. 후대의 역사가에 의하여 하나의 사건을 중심한 역사가 다시 재구성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는 경우, 기존의 역사에 대한 사록은 다시 검증을 받고 평가를 받는다. 이때의 경우 새로운 일차적인 자료의 발견은, 기존의 세워진 역사를 검증하게 되고 검증을 통해 가설이 정설로 둔갑한 경우라면 ‘역사적 사료’라는 일차적 지위를 박탈한다. 다만 참고할 가치로 인정받는 이차적인 자료로 떨어지게 된다.
오래된 역사일수록 일차자료는 빈곤하며 일차자료가 빈곤할 경우 이차자료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평가하여 근접되어 있는 경우 정설로 받고 있다. 고대사와 상고사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대개의 경우 평은 2차 자료로서의 가치는 가지고 있으나 일차자료와 같은 권위는 가지지 못한다.
로마시민이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교회사나 역시 유대인으로 로마의 시민이 되었던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는 유대인의 역사를 미화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검증을 통해 당시의 역사와 일치하고 있는 자료들로 평가를 받아 두 유대인의 역사서는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이라는 독특한 입장이 고려되었고, 이들이 서술한 역사의 사료는 사실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한홍구와 같이 자신의 나라에 대한 역사성에 대한 부정과 민족성에 대한 부정에 이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부인하는 이런 역사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한홍구 세대가 교육을 받은 시기는 반공체제의 교육과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학습한 세대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체제부정과 함께 의식화 교육의 선봉에 서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교육은 잘 못 되었다는 것과 역사공부는 국가관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는 역사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는 역사가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편향되어 있다거나 혹은 역사적 사료가 부실한 상태에서 써 갈기듯 교과서를 저술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교과서를 저술한 역사가들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공부한 역사학자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가들은 어느 나라에서 연구를 했느냐 하는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다. 결국 그 나라의 사관을 배우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역사가는 미국식의 접근방식을 배운다. 일본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는 일본식의 접근방법을 배운다.
박노자의 경우가 그러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학을 공부했고 러시아의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식의 접근방식으로 한국의 역사를 보았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다른 문화에 익숙한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 그 역사관은 전혀 다른 역사 곧 한국의 부정적인 면만 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역사는 조용한 역사가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 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고 난 이후에 미처 독립국가의 기틀도 잡기 전에 6.25 동란이 터진 부상당한 국가이며 성숙하기도 전에 이데올로기의 전쟁으로 인해 분단되어 버린 상흔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6.25 동란이 끝나고 휴전했을 당시 한국민의 GNP는 75달러 수준이었으며 당시 아프리카 빈민보다 못한 GNP 수준이었다. 당시의 국제수준으로 100달러는 되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었다. 부족한 25달러는 외국의 원조로 충당되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가를 일으키고 국가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여력조차 되지 못했다. 공무원의 월급을 줄 수도 없는 처지에 어떻게 국가조직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시 국민들은 국가를 잃어 버렸던 식민지 시절의 서러움과 6.25 동란으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고 공무원의 월급은 미국에서 나오는 군표로 대신 받으며 국가재건에 힘을 쏟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전 임시정부의 수반 시절부터 미국의 지원을 끌어냈다. 당시 패전국인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원조를 받지 않고는 무엇도 할 수 없는 빈사상태였다.
남과 북을 비교해도 차이는 현저했다. 남한은 북한에서 공급되는 수풍발전소의 전기를 공급받고 있었고 북한은 이미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통한 교역으로 한국의 부자는 평양에 살고 있었다. 남한은 곡창지대라는 것을 빼고는 자체적으로는 무엇 하나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도 기술력도 물자도 없던 상태였다. 남한에서 생산되는 원자재는 북한에서 가공되어 다시 내려왔다. 그 이유는 북한에 생산 공장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을 식민지화 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국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은 군수물자의 보급창과 단순한 군수품을 제작하는 공장들이 필요했다. 일본은 이를 위하여 수풍에 발전소까지 세웠다. 해방 직후 북한은 그 상태에서 생산 공장을 돌려 일상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설비가 없는 남한은 북한에 기대야 하는 형편이 되어 있었다. 김일성은 실권을 잡고 난 이후에 가장 먼저 남한으로 가는 전기, 통신, 철도를 끊었다. 당시 남한에서 자력으로 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가동하는 일은 당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한으로 가는 동력을 끊고 난 후에 김일성은 남로당 등 남한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통해 빈사상태에 빠져 있는 남한을 적화통일 하기로 작정했다. 박헌영을 통해 민의원 선거운동을 벌여 13명의 남로당원들이 의원으로 들어가 미군철수를 이끌어 냈다.
1949년 6월 29일 미군이 철수하자, 김일성은 1949 년 7월 중순에 북한전역에 18~22 세까지 강제 입영 령을 내렸다. 이듬해 1950 년 6월17일 부 터 18일까지 휴전선까지 부대이동 을 명령하여 90% 완료 후, 남침 [정찰명령] 제1호를 하달했다. 1950 년 6월23일 인민군 38선 돌파 침략을 지시하고 3.8선을 돌파한 후 전열을 정비하여 1950 년 6월25일 새벽 남침을 감행했다.
전쟁발발 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지원요청과 UN안보리소집을 요청하여 미국의 즉각적인 수락과 함께 UN안보리를 통해 UN군이 파병되었다. 당시내용을 보면, 1950 년 6월27일 유엔안보리 북한군 군사제재 결의. 결의내용 1항. 즉시 전투 행위를 중지 할 것 2항. 북한군은 38선 이북으로 군대를 철수 시 킬 것, 3항 모든 회원국은 이 결의안을 시행하는데 유엔을 도울 것이며 북한을 돕지 말 것 등을 결의하였다. 1950 년 7월7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 출전 UN군 사령부 설치 및 UN기 사용을 가결하고 그 관할권을 미국에 이양 했다. 미국은 즉각 일본 동경에 UN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맥아더 장군을 총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회원국 중 32개국이 한국원조를 결정했다.
휴전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전 세계를 향하여 한국의 참혹한 실상을 널리 알리고 원조를 요청했다. 미국을 중심한 기독교 단체들의 마음에 호소하였고 한국을 살리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가히 거지 외교에 비견될 만큼 눈물로 한국의 지원을 요청해 도움을 이끌어 냈다. 한 가정이 망가졌다가 일어서는 일도, 한 회사가 망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일도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러한 눈물의 외교와 지원요청이 없었다면 한국은 6.25 동란의 폐허에서 일어설 기력을 잃고 주저앉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6년간의 의무교육을 실천하여 문맹국의 오명에서 탈출시켰다. 당장에 부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꿈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그 혹독하고 어려운 시기를 꿈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공산주의자들의 남은 불씨는 이승만 정권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학생들을 선동하여 오히려 외국 원조의 힘으로 생긴 힘을 4.19 혁명으로 바꿔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이 반골문화와 연결이 되어져 있고 그 사상의 뿌리는 공산주의의 혁명논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향에 따라 구분하면 모든 행동적 민주화 운동자에게서는 고르게 네가티브적 발상이 근저 되어 있고 나이와 연륜 등에 따라 비판적 혁명논리를 채용하거나 비평적 만하임주의를 채용하게 되어 있다.
어떤 역사가이든지 역사가가 그 역사에 대하여 애정이 있고 가치를 둔다면 붓끝에 혼이 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쓸 때에는 아무리 가치 있는 역사라고 해도 단지 차용해 오는 수준에 불과하게 되고 써 먹고는 버리게 된다. 써 먹고 버리는 역사라면 그 어떤 역사라고 해도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다. 적어도 역사가라면 수평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수평을 가지고 있는 역사가라면 역사를 가지고 장난칠 수 없다. 그런데 한홍구는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자신의 지식으로 오만을 부리고 있다.
4) 목적이 있는 한홍구와 박노자의 모병제 타령
한홍구는 박노자가 주창하고 있는 모병제를 지원사격하며 한국의 병영문화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일보의 박종현 기자는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에 대한 서평을 통해 한홍구의 병영문화 개혁론을 극찬하고 있다.
한홍구가 역사책을 독자를 위해 흥미위주로 몰고 가고 있다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 병역기피 문제를 들어 한국의 병역사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칭찬 받을만 하다 했다. 한홍구는 병역사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데 "한 교수는 병영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비판이 한국 현대사의 성숙도를 높이고 역사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도 늘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3년 1학기 성공회대 교양강좌에 한국 대학사상 최초로 ''군대와 사회''라는 과목을 개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병영문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평화기념관'' 설립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먼저 오는 10월에 사이버 평화박물관을 개설해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을 계획이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현명한 삶이 가능할 뿐 아니라 긴 호흡으로 낙천적인 생활을 즐기는 기회를 덤으로 가질 수 있다"고 밝힌다."
뿐만 아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내어놓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화해·협력의 진전에 부응하기 위해 학교 및 사회 통일 교육에 평화교육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장관은 “이를 위해 우선 통일부·교육부·평화교육실시단체 등 유관 기관 간 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그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남북관계는 대결과 긴장 구조에서 화해·협력의 구조로 발전해왔다”고 말해 이런 내용이 담길 것임을 시사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장관이 부임 이후 초·중·고 교과 과정에 통일 과목을 신설하고 평화통일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이 장관의 신년사에 담긴 내용이 아닐까 정도로 추측했다. 이 장관은 신년사에서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평화이고 이를 위해서는 북핵문제뿐 아니라 북한 빈곤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며 대북 지원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장관 지시는 아니라면서 최근 노르웨이 출신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개념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갈퉁은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작년 5월 한국을 방문해 가진 강연에서 “미국은 평화의 개념이 없는 나라. 미 제국주의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책 기관의 한 연구원은 “전교조가 반이라크 전 명목으로 실시한 반전 평화교육이 친북·반미교육으로 전락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혹시 이런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연하청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는 “평화통일 외에 새로 더 어떤 것을 교육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현대사까지 시대를 이끌어간 정신을 구분해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구한말시대부터 현대까지 드러난 몇 개의 중대한 운동을 살피면 정신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필 수 있다. 현재 이들 정신운동들에 대한 연구물은 넘쳐나기 때문에 자료에 대한 문제도 없다.
시대적으로 살피면 왕조시대의 유교주의시대와 이승만 정권부터 천명되어진 DJ 이전까지의 반공주의시대와 DJ 이후의 친북주의시대로 간단하게 구분된다. 시대적 구분에 의해 구분된 시대의 정신은 논리를 담고 있는데, 이 정신들은 유교주의는 양반정신의 논리로, 반공주의는 새마을운동정신의 논리로 친북주의는 민주화운동정신의 논리가 각각 떠받치고 있다.
통전 적으로 모든 정신이나 운동은 그냥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드시 도전되어지고 비판되어지고 난 후에야 받아들여졌다. 유교의 정신은 왕조와 양반들이 주축이 되어 선비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선비정신은 위세 혹은 권위로 대변되기에 묵살문화권으로 인식되고 묵살문화권에 대한 반발로 반골문화권이 일어난다. 현재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 안티문화권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아무리 건전한 문화권이라고 해도 문화권이 뿌리를 내리고 생산을 하려면 삼대가 필요하다.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받아들여진 문화가 아들의 세대에서 비판되고 검증되어 발전해야 손자의 세대에 들어와서 생산을 해 낼 수 있다. 따라서 통상 90년 이라는 시간이 흘러가야 건전한 문화권이 그 나라의 문화로 정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건전치 못한 문화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멸한 경우는 공산주의가 대표적인 예이다. 공산주의는 레닌에 의해 1917년 2월 혁명의 성공으로 뿌리를 내렸으나 1990년 고르바초프의 냉전종식 정책으로 각 공화국들에 민족주의 분규가 일어나면서 1991년 12월 31일 소련이 해체됨으로 공산주의는 종식되었다. 정치적인 수단에 의해 일어나 그 시대에 성공을 거둔 정신운동이라고 해도 반드시 후대에서 검증받게 되어 있고 그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소멸되고 만다는 교훈을 고르바초프가 남겼다.
1) 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2007-08-14 11:55.
2) Norman Finkelstein,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 김병화 옮김, (서울: 돌베개, 2004) 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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