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안형식
밤에만 나타나 각시가 되어
만리장성을 구만리나 쌓았는데
날이 밝으면 연기처럼 사라져
고마운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임에게 표현할 살뜰한 마음도 표현할 길이 없는
낮에는...
낮에는 우렁이가 되어 물만 먹고 살다가
밤이면 안개처럼 다시 나타나
뭘 먹고 사니
뭘 입고 사니
뭘 보고 사니
물어도 대답없이 입술만 물고 있는
그녀의 아미에 수심이 걸렸다.
내일 낮에는 멋진 곳에 가서 근사한 점심을 먹고
당신에게 어울릴 아름다운 옷을 골라줄테야
섹시속옷도 세트로 사줄거야
살갑게 속삭이는 그의 말에 상심은 더욱 커가고
속 없는 사람의 간지럼은 살갑기만 하다.
새벽이 오는구나
아침이 오는구나
서럽고 아픈 마음으로
웅덩이를 찾아가는
발걸음의 휭한 자취에
바람이 날린다
아 사랑하는 사람아
아아 사랑하는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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