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시 모음

은반위의 세레나데

도제조 안형식 2006. 12. 18. 12:12
 

은반 위의 세레나데

(은반의 여왕 김연아에게 바치는 노래)


               1.

발끝 아래 얼음은

꽃으로 피어나고 

튕겨져 오른 너는 나비어라.


끊어질듯 이어지는 한줄기 백선

곡선을 그린다.

커브를 그린다.

아르를 그린다.

그리고 멈춘다.


높이 튀어 올라

몸 비틀어 사뿐 회전하고

나비처럼 사뿐 내려앉았다

천사가 내렸다

비단 옷자락이 끌린다.


큰 호흡 감추고

실날같이 배앝아 내는

절제된 숨소리

작은 떨림까지

그대로 시어(詩語)가 되고

웅변이 되었다.


발 끝에 힘을 모아

하늘을 날으리라

솟구치고 나래를 펼쳐 웅비하고

도약하는 발끝에는

얼음 꽃이 피어난다.


퉁기듯 솟구쳐 올라

그대로

두 손을 활짝 열어

하늘을 안는다

임을 안는다.


요염한 듯

지친 듯

백치가 된 듯

선율에 따라 흐르는 화려한 동작

섬세한 손끝

유연한 몸은 음악이 되었다

화음이 되었다.


                2.


아아 

내 숨이 막힌다

폐부는 짓눌러

신음은 그대로

얼어붙고

아픔이 된 듯

심장이 쥐어 짜이고

숨은 멈추었다.


고운 아미 살짝 찌푸려

훨훨 날아

얼음은 하늘이 되고

유영하는 대로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는

눈꽃 빙선

밤하늘의 꼬리별처럼


땀이 흐른다

눈물이 흐른다

좌절의 시간

멈추고 싶었던 순간들

마주치는 절벽의 시간

한계의 정점

허리에 조여붙인 몇 장의 파스들

주마등처럼 흘려보내며

나풀나풀 춤을 추었다.


스포트라이트 비추는 곳

고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한 마리의 학이 되었다.


설움의 시간을 뒤로 밀치며

하늘을 향해 박차고 뛰어 올라

그대로 한 마리 나비가 되었다.


음악이 끝나고

몸짓도 끝났다.


꿈이 흐르듯

물이 흐르듯

시간이 흘러가서 멈춘 은반 위에

나풀 내려 앉아 나래를 접고

숨을 고르는구나.


어여뻐라

사랑스러워라

미뻐라

감동의 끝자락

그 끄트머리에서

너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조국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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